'여순사건' 희생자 71년 만에 다시 재판 받는다

by노희준 기자
2019.03.21 17:01:07

대법, 재심 개시 결정..."군·경 무차별 체포·감금"
수사·증거 기록은 물론 판결문도 없어
진상 규명·피해자 명예 회복 길 열릴지 관심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로 사형당한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재심이 열린다. 전남 여수와 순천을 탈환한 국군이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누명을 씌워 민간인 수백 명을 불법 체포한 뒤 구체적인 범죄 증명도 없이 유죄 판결을 내린 후 곧바로 사형을 집행했다는 의혹을 두고 다시 재판이 열리는 것이다. 71년 만에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 민간인 희생자들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내란 및 국권문란죄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은 장모씨 등 3명의 재심 결정에 대한 재항고심에서 재심 개시를 결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당시 민간인에 대한 군·경의 체포·감금이 적법한 절차 없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음을 알수 있고 이를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도 이에 부합한다”며 “원심의 재심 개시 결정에 관련 법령을 위반한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순천 시민인 장씨 등은 1948년 10월 국군이 순천을 탈환한 직후 반란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체포돼 22일 만에 군사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즉시 사형당했다. 이들이 어떤 절차로 수사를 받았고 재판 과정에 입증된 증거는 무엇이었는지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심지어 법원도 판결문을 남겨놓지 않아 무슨 이유로 사형을 선고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2005년 12월 출범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여순 사건을 재조명했고, 군·경이 438명의 민간인을 무리하게 연행해 살해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장씨 유족 등은 2013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에서는 당시 군·경이 장씨 등을 불법체포·감금한 사실 인정이 적법한지가 쟁점이 됐다.

1·2심 재판부는 “장씨 등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없이 체포·구속됐다”며 “당시 판결문에는 구체적인 범죄사실의 내용과 증거 요지가 기재되지 않았다”고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검찰이 재항고했지만 대법원도 “적법한 절차 없이 체포·감금됐다”며 재심 개시를 최종 결정했다.

대법원의 재심 결정에 대해 유족 측은 대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는 환영 논평을 내고 “71년 동안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계기를 마련한 올바른 결정”이라고 반겼다.

장씨 등에 대한 재심 재판은 조만간 재판부가 정해지는 대로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