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아베 회담…1년간 쌓인 앙금 풀기엔 짧았던 '21분'

by이진철 기자
2019.10.24 17:51:52

한일 총리 "북한 문제, 한일·한미일 공조 중요"
아베 "국가간 약속 지켜져야" 기존입장 되풀이
이 총리 "한일청구권협정 존중, 지혜 모아야"
文대통령 친서 전달…정상회담 구체적 언급없어

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오전 일본 도쿄(東京)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이데일리 이진철 정다슬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4일 회담을 갖고 양국의 관계 악화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데에 공감대를 이뤘다. 이 총리는 ‘양국 현안이 조기해결 되도록 노력하자’는 취지를 담은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아베 총리에게 전달했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이후 처음 성사된 이번 양국 최고위급 회담을 계기로 향후 한·일 정부간 채널로 공식대화가 활발히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청구권 협정 문제와 관련해 ‘국가간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고,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 언급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총리실에 따르면 이 총리와 아베 총리는 이날 일본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21분간 회담하고 한·일 관계의 어려운 상태를 방치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이 총리는 회담에서 “한·일 관계의 경색을 조속히 타개하기 위해 양국 외교당국 간 대화를 포함한 다양한 소통과 교류를 촉진시켜 나가자”고 제안했다. 아베 총리는 “현재 한·일 관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 당국 간 의사소통을 계속해 나가자”고 밝혔다.

최근 한·일 관계가 어려운 국면이라는 동일한 인식을 기반으로 두 총리가 ‘소통’을 해법으로 제시한 것이다. 양국 총리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양국간 청소년 교류를 포함한 민간교류가 중요하다는 데도 의견을 함께 했다.

이날 이 총리가 아베 총리에게 전달한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에서도 한·일 양국이 가까운 이웃으로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해 협력해 나가야 할 중요한 파트너임을 강조했다. 양국 간 현안이 조기에 해결될 수 있도록 서로 관심을 갖고 노력해나가자는 취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양국 총리는 특히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도 한·일,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는 다음 달 23일부터 효력을 상실한다는 점에서 이른 시기에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이해관계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은 지난 7월 결정한 수출규제 조치가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무관하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지만 한국 정부는 사실상 경제보복 조치라고 판단, 지난 8월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까지 이어졌다.



양국 총리가 관계 개선을 위한 소통에는 한목소리를 냈지만 한·일 관계 악화를 촉발한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선 입장차가 여전했다.

아베 총리는 ‘국가 간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거듭 밝히고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당국간 의사소통을 계속하자는 언급을 했다. 일본 정부는 징용 배상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이에 따른 경제협력자금 지원 등으로 종결된 사안이라고 본다. 따라서 대법원 판결이 한·일 청구권협정 위반으로 ‘국제법 위반’이라는 주장을 거듭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총리는 “일본이 그런 것처럼 한국도 1965년 한·일 기본관계조약과 청구권협정을 존중하고 준수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며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한·일 양국이 지혜를 모아 난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양국 총리의 회담이 끝난 후 입장은 상반됐다. 우리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번에 총리 회담은 하나의 분기점”이라며 “이제까지 비공식적, 간헐적으로 이뤄지고 시도됐던 대화들이 정부 간 채널을 통해 공식적이고 활발하게 이뤄져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본 정부의 태도는 한·일 양국의 이견을 강조하는 쪽이었다. 오카다 나오키 관방 부장관은 브리핑에서 “이 총리는 서로의 지혜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지만, 일본의 입장은 한국이 먼저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인식의 차이가 있었다”고 했다.

이번 양국 총리 회담에서는 정상회담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이 징용 문제를 두고 입장차를 다시 확인했지만 지소미아 등 현안과 관련한 물밑 조율이 원활하게 이뤄질 경우 다자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이 자연스럽게 머리를 맞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연내에 예정된 다자회의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태국, 10월 31일∼11월 4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칠레, 11월 16∼17일) 등이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 정부는 정상회담에 항상 열려있는 입장”이라며 “어느 정도 실무적인, 정부 간 정지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일본 측은 징용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이 총리를 포함해 앞으로도 정상회담에 응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보도했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