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돈풀기의 저주…70·80년대 초인플레 도래하나

by김정남 기자
2021.12.15 18:30:07

미국 11월 PPI, 전년비 9.6%↑ '역대 최고'
기업發 인플레, 소비자 판매가격 더 올릴듯
'인플레 부담' 미 연준, 긴축 속도 확 높인다
CNBC 설문…전문가들 내년 6월 인상 전망
일부서는 "내년 3월 혹은 5월 인상" 관측도

1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의 한 레스토랑에서 고객들이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진=AFP 제공)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서 레스토랑 ‘버드 독(Bird Dog)’을 운영하는 로비 윌슨씨.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1년7개월간 문을 닫았다가 최근 영업을 재개했는데, 메뉴 수는 팬데믹 이전보다 절반 수준으로 확 줄였다.

이는 구인난과 물가 폭등 탓이다. 식자재값과 인건비가 오르면서 다양한 메뉴를 제공하는 게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윌슨씨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제철요리를 (계절에 따라) 돌아가면서 내놓거나 새로운 식재료를 통한 실험적인 요리를 줄였다”며 “녹색 커리를 곁들인 닭다리 튀김, 와사비를 곁들인 아보카도 구이는 인기가 많았지만 너무 비싸져서 준비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베트남 식당을 경영하는 아니 마인홀드씨도 비슷한 고충을 갖고 있다. 그는 “고기 가격이 30% 이상 오르고 주방 종업원 4명이 그만 뒀다”며 “메뉴를 줄이고 가격을 올렸다”고 말했다. 마인홀드씨는 과거 24달러에 팔던 쌀국수에 훈제 소갈비를 넣어 59달러짜리 고급 메뉴로 바꿨다.

요식업계 시장조사업체인 데이터센셜에 따르면 올해 미국 식당의 약 60%가 메뉴를 축소했다고 한다. 인플레이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의 한 단면이라는 평가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올해 미국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 추이.


11월 미 PPI 물가, 9.6% 폭등

미국의 인플레 충격이 심상치 않다. 소비자물가가 4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은데 이어 생산자물가는 역대 최고치 폭등했다. 공급망 대란과 노동력 부족에 기업발(發) 물가 폭등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때문에 연방준비제도(Fed)가 움직이는 ‘긴축의 고통’이 머지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14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1월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9.6%를 기록했다. 노동부가 2010년 11월 관련 통계를 산출한 이후 가장 높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이 집계한 시장 예상치(9.2%)를 뛰어넘었다. 1970년대 중반 혹은 1980년대 초반 같은 초인플레 우려가 나올 만하다.

PPI 상승률은 올해 1월만 해도 1.6%에 불과했다. 그런데 2월 3.0%로 오르더니 3월 이후 4.1%(3월)→6.5%(4월)→7.0%(5월)→7.6%(6월)→8.0%(7월)→8.4%(8월)→8.8%(9월)→8.8%(10월)→9.6%(11월) 등으로 급등하고 있다. 특히 11월 들어 에너지(43.6%), 식료품(11.6%), 교통 서비스(13.8%) 등이 큰 폭 올랐다. 팬데믹 이후 노동력 부족이 만연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한 악영향을 그대로 받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재정·통화 확대가 ‘역대급’으로 이뤄지면서 물가 상승 폭은 더 커졌다. 돈풀기의 저주인 셈이다.



전월과 비교한 PPI 상승률은 0.8%를 나타냈다. 0.6%를 기록했던 10월보다 높아졌다.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PI는 전년 동월 대비 6.9%를 뛰었다. 이 역시 사상 최고치다.

PPI는 생산자의 판매 가격에 의한 물가지수를 말한다. 소비자물가지수(CPI)를 소매물가라고 하면, PPI는 도매물가 격이다. 11월 CPI 상승률이 6.8%로 1982년 6월(7.2%) 이후 거의 40년 만에 가장 높았던데 이어 PPI는 역대 최고치 치솟으면서, 인플레 우려는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업이 인플레 부담을 느끼면 소비자 판매가격에 전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악순환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CNBC는 “미국 경제를 괴롭히는 인플레가 지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준 가파른 긴축 불가피할듯

이에 따라 물가당국인 연준이 긴축 속도를 높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아졌다. 연준이 당장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통해 테이퍼링(채권 매입 속도) 규모를 월 150억달러에서 월 300억달러로 늘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런 속도라면 내년 3월 테이퍼링을 끝내고 곧바로 기준금리 인상에 돌입할 수 있다.

CNBC가 시장 전문가 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이날 공개한 설문조사를 보면, 첫 인상 시기로 거론된 때는 내년 6월이다. 9월 설문조사 당시 내년 말까지 인상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였는데, 그 시기가 확 앞당겨진 것이다. 연준이 내년과 내후년 각각 세 차례씩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게 전문가 컨센서스다.

그런데 월가 일부에서는 이미 내년 3월 혹은 5월 FOMC부터 연준이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라는 예상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골드만삭스는 첫 인상 시기를 당초 내년 6월에서 내년 5월로 당겼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경우 3월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있는 상태다.

월가의 한 채권 어드바이저는 “연준은 특히 기대인플레 급등을 눈여겨 보는 분위기”라고 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집계한 10월 기대인플레(향후 1년 기준)는 5.7%다. 통화정책은 기대인플레를 2.0%에 안착하도록 하는 게 본질이다. 현재 물가는 정책적으로 용인 가능한 정도를 넘었다는 평가다.

이에 뉴욕 증시는 이날 약세를 보였다. 대형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0.75%,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1.14% 각각 내렸다. 월가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 변동성 지수(VIX)는 7.78% 상승했다. 투자 심리가 악화했다는 뜻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사진=AFP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