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방한…손에 쥔 것은 선물일까 옐로카드일까

by정다슬 기자
2020.07.06 17:10:10

北, 방한 앞서 "대화 없다" 엄포
새 안보라인과의 상견레…한미 워킹그룹 논의 주목
11월 美대선 앞두고 한·미·일 동조체제 '확인' 분석도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조세영 외교부 1차관과의 접견을 위해 청사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총괄하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한국을 방문한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으로 긴박해진 한반도 정세를 완화하고 북한을 다시 대화의 자리로 이끌어낼 메시지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6일 외교가에 따르면 비건 부장관은 7일 한국을 방문해 카운터파트너인 조세영 외교부 1차관과 한·미 전략대화를 갖고 이동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과 만나 한반도 관련 상황을 논의한다.

비건 대표의 방한은 약 7개월 만이다, 마지막 방한은 지난해 12월 17일, 북한이 협상 시한으로 정한 2019년 연말을 앞두고서였다. 비건 대표는 당시 “북측의 카운터파트너에게 직접 말하고 싶다”며 대면 회담을 제안했지만, 결국 사흘 후 ‘빈손 귀국’해야만 했다.

비건 대표의 이번 회담이 알려진 후, 북한 측 협상 대표인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조·미(북·미) 대화를 저들의 정치적 위기를 다뤄나가기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미국과는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고 발표했다. 또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선거 전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미 관계의 현 실태를 무시한 수뇌회담설이 여론화하는 데 대해 아연함을 금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다만 북한이 보복조치로 예고했던 이른바 ‘크리스마스 선물’이 불발로 끝나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자제하는 상황에서 아직 대화의 여지는 남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대북 조치로 한 차례 타격을 받은 북한 경제가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더 큰 타격을 받으면서 식량난 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소식이 잇달아 전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외교 안보 진용을 재정비하면서 북한과 미국 간의 중재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나타낼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이번 방한에서 비건 대표가 청와대를 예방하고 새 안보라인과 만날지도 주목된다.



한·미 워킹그룹 역시 뜨거운 감자다. 북한은 워킹그룹을 “남북관계의 족쇄”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남북이 금강산 관광 등 경제적인 물꼬를 트려고 할 때마다 워킹그룹에서 제동이 걸렸다는 주장이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이날 ‘언제까지 치욕과 굴종의 굴레를 쓰려는가’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의 정치권과 언론, 시민단체가 한목소리로 워킹그룹을 비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워킹그룹의 미국 측 대표가 비건 대표다. 2018년 10월 비건 대표의 두 번째 방한 때 설치됐다. 만약 이번 비건 대표의 방한에서 워킹그룹에 대한 변화가 이뤄진다면 북한에게 건네는 미국의 ‘화해 메시지’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역시 2일 기자회견에서 “미국도 마찬가지지만 외교부로서는 워킹그룹이 (남북사업에) 상당히 유용하게 작동해왔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면서도 미국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운영 방식 개선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비건 대표의 순방은 ‘선물’보다는 ‘견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이번 인사를 통해 남북 협력의 ‘독자노선’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제동을 걸 것이란 분석이다.

마크 피츠패트릭 국제전략연구소(IISS) 연구원은 미국의 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은 항상 일치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비건 대표는 한국정부에 미국을 제외한 채 혼자 앞서 나가질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건 대표는 한국 일정을 마친 뒤 9일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