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가짜뉴스'가 뭐길래..대통령 공약에서 후퇴하나

by김현아 기자
2018.10.05 16:25:51

①가짜뉴스와 오보의 차이는?…미네르바 무죄 판결
②국내기업은 마구 지우고…③ 유튜브·페이스북은 사각지대
④문재인 대통령의 ‘표현의자유’ 공약에서 후퇴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가짜뉴스’를 막으려는 정부 움직임이 빨라지는 가운데, 별도 법까지 만들어 ‘가짜뉴스’를 규제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밝힌 표현의 자유 신장 원칙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일단 가짜뉴스의 정의를 더불어민주당에서 가짜뉴스 대책단장을 맡은 박광온 최고위원 발의법(가짜정보 유통방지에 관한 법)에 따를 것으로 보인다. 해당 법에선 △언론중재위원회 △법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허위라고 판단한 정보들로 한정했다.

이런 절차들을 모두 거치려면 대법원 확정 판결이 있어야 하고 그 사이에 소위 ‘가짜뉴스’가 퍼질수 밖에 없으니, 민주당 일각에선 가짜뉴스를 판정위원회를 통해 판단하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네이버·카카오는 물론 유튜브·페이스북도 ‘가짜뉴스’ 처리 업무 담당자를 채용하고 가짜뉴스라고 판정된 순간부터 24시간 이내에 삭제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위반행위와 관련한 매출액의 100분의 10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이 과징금으로 부과된다. 박광온 최고위원은 어제(4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삭제를 하지 않을 경우 과징금이 굉장히 세다.한 650억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 대해 ①가짜뉴스의 정의가 명확치 않고(오보와 다른점) ②법안 통과시 정보통신업체들의 개인 게시물에대한 과도한 삭제 남용이 우려되며 ③유튜브 등 해외업체는 규제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④문재인 대통령의 ‘표현의자유’ 신장공약과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박광온 의원 법안에서 말하는 가짜뉴스는 언론사의 오보나 조작뉴스, 또는 언론사가 아닌 개인(유튜버 등)이 뉴스형태로 전파하는 거짓뉴스다.

이는 가짜뉴스에대한 자율규제 가이드라인을 만든 사단법인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와 다르다. KISO는 2008년 ‘사이버모욕죄’ 파동 이후 만들어진 단체로 학계, 시민단체, 법조계 등의 각개 인사들이 모여 인터넷상의 차별·혐오 표현이나 연관 검색어 배제 정책 등을 심의하고 결정한다.

그런데 KISO의 가짜뉴스 가이드라인의 대상은 언론사 뉴스가 아니다. 언론사 명의나 언론사의 직책 등을 사칭 또는 도용하는 등으로 기사형태를 갖춘 허위의 게시물로 정의했다. 가이드라인에서 기존 언론사를 뺀 것은 언중위와 법원 등에서 민·형사 상으로 책임을 물을 장치가 이미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2010년 12월 헌법재판소의 전기통신사업법상 ‘인터넷에 허위 글’ 처벌조항은 위헌이라는 판결 역시 박광온 의원법과 결을 달리한다. 당시 헌재는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돼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32)씨가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1항은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2009헌바88 등)에서 재판관 7(위헌):2(합헌)의 의견으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당시 이강국 소장 등 재판관 5인은 보충의견을 내 “허위사실의 표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의 올바른 정보획득이 침해된다거나 국가질서의 교란 등이 발생한 구체적 위험이 있다고 할 수 없고 허위의 통신 자체가 일반적으로 사회적 해악의 발생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어서 ‘공익을 해할 목적’과 같은 모호하고 주관적인 요건을 동원해 이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국가의 일률적이고 후견적인 개입은 침해최소성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박광온 의원 법안은 가짜뉴스를 24시간 내에 지우지 않으면 포털이나 동영상 업체에게 거액의 과징금을 내도록 한다. 여야 정치권마다 생각하는 가짜뉴스가 다르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가짜뉴스를 대하는 태도도 다른데 IT기업 입장에선 거액의 과징금을 피하기 위해 일단 지우고 보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미네르바 무죄 판결 이후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은 ‘현실적으로 인터넷을 통한 허위 사실 유포로 심각한 폐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대체입법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취했고, 야당인 민주당은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인정한 헌재의 합리적 결정을 환영한다”고 했다. 하지만 9년이 지난 지금 여야 입장은 바뀌었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정보통신망법에서 허위글 논란시 OSP(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면책조항을 둔 것은 기업에만 유리한 게 아니라 영리를 위해 표현의자유를 위축시키지 말라는 취지도 들어있다”며 “인터넷내용규제법은 어찌보면 세상의 역사를 지우는 권한 내지는 기준을 사기업에 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유튜브나 페이스북처럼 해외 약관에 따르는 글로벌 서비스들을 국내 법으로 규제하긴 어렵고 또 설사 규제한다고 해도 실제로 지웠는지확인이 어려워 국내 기업들만 규제받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2017년 4월, 당시 문재인 후보는 중앙선대위에 표현의자유위원회(위원장 유승희)를 만들고 △포털의 임시조치(블라인드) 제도를 개선해 ‘댓글 게시자 이의제기 시 블라인드를 중단’하고 △진실적시 명예훼손에대한 위법성 조각 사유를 대폭확대하는 내용의 표현의자유 공약을 발표했다.

임시조치란 사생활이나 명예훼손 논란이 있는 인터넷 댓글이나 블로그 등의 게시글에 대해 네이버나 카카오 등 인터넷포털들이 삭제처리하거나 블라인드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정보게재자의 표현의 자유와 방어권 보장을 위해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게시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즉시 임시조치를 중단하고, 현행 명예훼손분쟁조정기구를 개편한 ‘사이버분쟁조정기구’의 심의·결정 및 법원의 최종 판단시까지 게시를 허용하겠다고 했었다.

집권이후에도 이런 정책방향은 유지되는듯 했다. 2017년 8월, 방송통신위원회는 문 대통령 첫 업무보고(핵심 정책 토의)에서 특히 포털의 인터넷 게시물 임시조치(블라인드)에 대해 정보게재자의 이의제기 절차를 신설하고, 특히 정치적 표현물에 대해서는 2022년까지 완전 자율규제를 목표로 공적 규제 를 축소하기로 했다.

하지만 2018년 10월, 정부 입장은 180도 바뀌었다. 정부는 가짜뉴스와 표현의자유는 다르다고 주장하나, 미네르바의 인터넷글도 일정 기간동안 허위글(가짜뉴스)이었다.

또, 대법원은 일부 허위의 사실을 게시했지만 고의가 없어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약자에대한 혐오표현과 달리 가짜뉴스 규제는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