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값이 1000만원인데 2000만원 대출?..금융당국, 중고차대출 제동

by유현욱 기자
2019.05.09 15:52:11

[그래픽=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A씨는 군에서 제대한 아들이 중고차를 구입할 때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해 속이 상했다. 알고 보니 차값이 1000여만원에 불과한데 아들은 모집인을 통해 2000만원 대출을 받고 이를 자신에게는 숨긴 것이었다. A씨는 철부지 아들이 모집인과 짬짜미해 차값을 훌쩍 뛰어넘는 거액의 대출을 받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사실에 황당했다.

금융감독당국이 지난해 역대 최고 실적을 거둔 캐피털사, 모집인의 막가파식 중고차 대출 영업 관행에 메스를 대기로 했다. 이뿐만 아니라 중고차 대출 규모를 키우고 있는 카드사, 은행에도 관리감독을 강화할 전망이다.

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캐피털사의 중고차 대출 잔액은 11조원으로 전년 말 9조5000억원보다 1조5000억원가량 증가했다. 중고차 대출이 늘면서 관련 민원도 급증하고 있다. 인터넷 접수 기준으로 중고차 대출 관련 민원은 2015년 28건에서 지난해 175건으로 6배 넘게 급증했다. 중고차 대출은 엄밀히 말해 담보대출은 아니지만 차량 구입이라는 목적성을 기반으로 한 대출이라는 점에서 담보대출과 유사한 성격을 띤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감원과 여신금융협회는 캐피탈사 10개사와 TF를 구성해 논의한 끝에 ‘중고차 금융 영업 관행 개선을 위한 가이드라인(여신금융협회 자율규제)’를 마련키로 했다. 전산시스템 구축과 내부 절차 변경 기간 등을 고려해 오는 9월부터 시행한다.

우선 금감원과 협회는 차량 구입 비용과 부대비용을 합한 중고차 대출한도를 시세의 110% 이내로 제한한다는 방침이다. 기존에도 중고차 시세의 일정 비율 이내에서 대출을 취급해야 한다는 캐피털사별 내규는 있었지만, 여신금융협회 자율규제로 격상하고 구체적인 기준도 못 박겠다는 것이다.



(그래픽=금융감독원 제공)


중고차 대출한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터무니없이 거액의 대출을 내어주는 걸 막겠다는 취지다. 과다계상된 대출액은 중고차 구입 외 용도로 유용되고 캐피털사나 모집인 간 과열경쟁을 야기하는 바람에 부작용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캐피털사의 중고차 대출은 매매상과 연계된 모집인이 캐피털사를 대신해 대출 상담과 서류 접수 등을 한다.

주먹구구로 매겨지던 중고차값 산정도 손질한다. 중고차 시세 정보를 적어도 분기당 한 번 이상 업데이트해 최신성을 유지하고 최근 실거래가와 비교해 적정성을 검증하기로 했다.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자동차365서비스’ 중고차 시세 조회를 활용해서다.

금감원과 협회는 중고차 대출을 중개한 모집인에게 돌아가는 과도한 직·간접 수수료도 과다대출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보고 개선키로 했다. 그간 캐피털사는 건별 대출금액의 일정 비율로 지급하는 직접수수료 외에 일정 기간의 중개 실적에 연동해 지급하는 간접수수료를 통해 법정 상한 기준을 비켜가 왔다. 중고차 대출 실적 상위 모집인에게 골프행사·해외여행을 제공해온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에 금감원과 협회는 중고차 대출과 관련성·대가성이 있는 비용 모두를 중개수수료에 포함토록 하고, 이를 사전에 점검할 수 있는 전산시스템도 구축하도록 지도한다.

금감원과 협회는 고질적인 대출사기, 불완전판매 문제도 손보기로 했다. 고객 본인 외(모집인) 계좌로 대출금 입금시 문자로 알려주고 모집인의 별도 수수료 수취나 이면약정 요구 여부를 확인한다.

금감원과 여신금융협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다음 달 제정할 예정이다. 자율규제인 만큼 구속력이 없지만 금감원은 가이드라인의 이행 여부를 점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금감원은 중고차 대출을 취급하는 카드사와 은행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검사를 예고한 상태다. 이는 올해 금감원의 업무계획에 포함된 내용이다. 은행권 중고차 대출 잔액은 지난 2017년 2조5800억 원에서 지난해 5조3100억 원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지만 중고차 구입 명목으로 저리로 대출을 받아 자금을 융통한 뒤 바로 중고차를 되파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의 중고차 대출시장 영업확대 등 쏠림을 점검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