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사라지니 꽃도 버릴수밖에요"…봄소식 없는 고양 화훼농가
by정재훈 기자
2020.02.25 14:52:48
코로나19 사태에 졸업 많은 2월 성수기도 물 건너가
"장미 10송이 1만원 하던 게 4000원"…출하 70% `뚝`
정부·지자체 대책에도 빠른 감염 확산에 `속수무책`
농가들 "봄 앞두고 있지만 마음은 여태 한겨울" 토로
[고양=이데일리 정재훈 기자] “버리는 꽃이 얼마나 많았으면 파쇄기까지 고장이 났을까요.”
한국화훼농협 이사를 맡고 있는 탁석오 장미이야기 대표의 한탄이 끝이 없다. 코로나19 여파로 1년 중 가장 꽃이 많이 소비되는 2월 한 달 동안 사실상 개점 휴업이나 다름 없었던 고양시 원당동 화훼단지 농민들의 한숨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최근 들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화훼 농민들을 살리기 위해 꽃 팔아주기에 나서면서 조금씩 출하가 늘어나는듯 했지만 지난 20일부터 대규모 확진자가 매일 100명이 넘게 줄줄이 터져 나오면서 또다시 침체기가 밀려올지 노심초사다.
| 고양 원당화훼단지 공동선별장의 윤재옥 팀장이 판로가 없어 폐기되는 절단 장미를 야적장에 내다버리고 있다.(사진=정재훈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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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대표는 “코로나19가 있기 전에는 버려지는 꽃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상태가 가장 좋은 최상 등급 절단 장미도 기존 가격에 3분의1 수준 가격에 출하하는 실정”이라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상 등급이 아닌 2~3등급 꽃은 그대로 버릴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경기도 내 화훼 생산의 30%, 전국으로 따지면 15%를 차지하는 고양 원당·주교화훼단지 농민들의 마음이 타들어가는 이유다. 실제 코로나19가 오기 전에는 최상 등급 절단 장미 10송이가 산지에서 보통 1만원에 출하됐지만 지금은 값을 잘 쳐줘야 4000원 수준이다. 출하량 역시 약 70% 가량 감소한 상태다. 이 마저도 정부와 지자체가 꽃 소비에 나서주면서 상황이 좀 나아진 것인데 지난 주말부터 코로나19가 더욱 확산되자 출하 가격은 더 떨어질 기세다.
고양 원당화훼단지 내 공동선별장에서 7년째 근무하는 유재옥(58·여) 팀장은 “내가 있는 동안 이렇게 출하가 안되는 경우는 못 봤다”며 “원래 2~3월이면 공동선별장 인력이 부족해 3~4명씩 아르바이트까지 고용했었는데 지금은 출하되는 꽃이 없으니 기존 인원도 별로 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폐기되는 꽃이 얼마나 많았으면 평상시에 잘만 돌아가던 파쇄기가 고장까지 일으며 지금은 버려지는 꽃을 야적장에 쌓아두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 이재준 시장이 직접 꽃을 구매하고 있다.(사진=고양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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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내 최대 화훼산지인 고양시도 이같은 농민들의 고통을 구경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시는 시청과 3개 구청에 화훼 직거래 판매장을 설치·운영하면서 꽃 판매를 돕고 있다. 또 지역 내 140개의 관공서 사무실에 장미를 공급하고 화정역 등 지역 내 지하철 역사에 화훼 장식물을 설치해 꽃 소비를 견인한다는 전략이다. 발렌타인데이였던 지난 14일에는 이재준 고양시장이 직접 나서 시청 현관에 마련된 곷 판매장을 찾아 직접 꽃을 구매하면서 화훼 소비를 독려하기도 했다.
정부는 물론 지자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가 대규모 확산 일로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꽃 소비가 늘어나는 봄이 오고 있지만 화훼농민들의 마음은 여전히 한겨울이다.
강성해 한국화훼농협 조합장은 “최근 농식품부, 농협, 지자체에서 꽃 팔아주기 캠페인을 펼치면서 어느정도 회복이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코로나19가 더 확산되면서 상황이 악화될지 걱정스럽다”며 “꽃과 식물을 축하의 의미로만 전달할 것이 아니라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하는 정서적 의미는 물론 공기를 정화하는 환경적 측면에서도 활용가치가 큰 만큼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 조합장은 “화훼산업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 앞에 닥친 위기인 만큼 이를 극복하기 위해 화훼농민들도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