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항공사 비틀어 지역 자존심 세운 의원님

by이승현 기자
2020.06.30 16:38:05

'경영난' 대한항공, 만성적자 김포~여수노선 폐지 추진
김회재 의원, 대한항공 임원 불러 노선 폐지 보류시켜
1등 항공사 빠지면 여수공항 위상 떨어진다는 게 이유
업계 "말이 좋아 설득..사실상 기업 희생 강요하는 것"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대한항공(003490)이 경영효율화를 위해 만성 적자 노선인 김포~여수 노선 폐지를 추진했으나 여수 지역 국회의원인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여수을)의 반대로 폐지가 보류됐다. 김 의원이 노선 폐지를 반대하는 이유는 여수공항에 국내 1위 항공사인 대한항공이 들어와야 공항의 위상이 산다는 지역 민원 때문이다. 지역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벼랑 끝’에 몰린 기업의 팔을 비틀어 주저앉힌 셈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김포~여수 노선을 폐지하려던 대한항공이 최근 이를 보류했다. 대한항공이 이 노선 폐지를 추진한 것은 매년 수십억원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어서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여수공항 개항시부터 48년간 이 노선을 운항해 왔으나 수익이 나는 곳은 아니었다. 특히 항공포탈 자료 등을 보면 최근 3년간 탑승률이 60%대에 그치면서 연간 평균 20억원대 적자가 났다.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여수시에서는 대한항공에 연 1억원씩 지원금을 주며 노선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적자를 보전하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경영위기에 처한 대한항공은 결국 자구노력의 일환으로 불가피하게 김포~여수 노선 폐지를 결정했고, 국토교통부에 운항휴지 신고를 제출할 계획이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여수노선은 만성적자 노선이지만 그동안 지역주민의 편의 등을 고려해 유지해 왔으나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 타계를 위해 불가피하게 운항휴지를 결정했다”며 “다른 항공편이나 고속철도 등 대체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있어 폐지해도 지역주민들의 불편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김포~여수 노선은 아시아나항공과 제주항공, 진에어가 매일 5회씩 운항하고 있고 KTX도 하루 14회 운행하고 있어, 대한항공이 노선을 폐지해도 이동하는데 불편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같은 사실을 안 김 의원이 지난 24일 국토부 항공정책관과 대한항공 임원진 등을 본인의 사무실로 불러 면담한 후 노선 폐지를 보류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김 의원은 지난 26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아무리 회사가 어렵더라도 노선 폐지에 대해 지역주민과의 협의도 없이 조급하게 결정해선 안된다고 설득했다”며 “이런 설득을 받아들여 노선폐지 결정을 보류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코로나19로 회사가 어렵고 여수 노선에서 적자가 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동안 많은 국가의 혜택을 받은 대한항공이 지역의 항공편의를 위한다는 공공성 측면도 갖고 있지 않냐”며 “1등 항공사가 빠지는 것에 대한 지역민의 상실감이 크다”고 말했다. 회사가 어렵지만 지역의 편의를 위해 적자를 감수해 달란 요구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말이 좋아 설득이지 국회의원이 국토부 공무원과 기업 임원을 불러 얘기를 하면 사실상 압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 아니냐”며 “기업에게 희생을 강요해 놓고 이를 자신의 치적으로 발표하는 것을 보니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대형항공사 관계자는 “대형항공사의 경우 여수공항 외에도 제주도를 제외하고 대부분 국내선 노선이 적자이지만 이같은 지역 민원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운항을 하고 있다”며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항공사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과 같은 때도 이런 손해를 감수하라고 하는 것은 과도한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