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아량·패자의 품격 보여준 김동연·김은혜[기자수첩]

by김유성 기자
2022.06.02 15:24:12

빠른 승복과 상대 후보에 대한 축하 메시지
후회없는 승부 벌이고 깨끗한 패배 인정
김은혜 배려한 김동연, 위로의 말 전달
승복없는 정국 속 두 후보 모습 돋보여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2일 새벽 6시40분.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지사의 득표 수가 김동연 민주당 경기지사에게 역전된지 한 시간여 지났을 때다. 수십 표 격차는 어느샌가 3000표 이상으로 벌어졌다. 개표방송 진행자들은 “그래도 아직 모른다”고 했다. 양 후보 모두 200만여표 이상 획득한 상태에서 1000표 정도는 순식간에 뒤집힐 수 있어서다.

개표 결과 불복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진행자들은 “이렇게 표 차이가 적은데 투표 결과에 불복하면 어떻게 하나”고 말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도 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지난달 23일 서울 마포구 SBS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경기도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후보자 토론회 시작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그 즈음 김은혜 후보가 자신의 선거상황실에 나타났다. 실낱 같아도 재역전의 희망이 남아있던터라 그 누구도 ‘패배’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고 있던 때였다. 주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그는 주섬주섬 준비해온 종이를 꺼내고 읽었다. 첫 마디는 상대 후보에 대한 축하였다.

“김동연 후보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경기도 발전에는 여야가 없다. 윤석열 정부와 협치해 경기도민을 위해 일해달라.”



쉰 목소리였지만 덤덤했다. ‘졌지만 잘 싸웠다’라면서 스스로 위로하는 말도 없었다. 패배의 원인은 ‘부족한 자신에게 있었다’고 말했다. 지친 얼굴이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어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리를 떠났다.

김동연 후보는 김은혜 후보의 승복 메시지 이후에도 30분여를 더 기다렸다. 박수는 받았지만 환호작약하지 않고 김은혜 후보에게 “끝까지 선거에 임해줘 고생하셨다는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사상 초유의 박빙 승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 장면을 보면서 지난 3월 대선을 떠올렸다고 하면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거의 석달여간 우리는 반쪽으로 쪼개진 정국을 목도해야 했다. ‘졌지만 지지 않았다’면서 승복하지 않으려는 거대 야당과 ‘거대 야당 탓에 소수 여당으로 힘들다’는 여당 간의 반목이었다.

이런 모습에 질렸던 탓일까, 일찌감치 승복하고 뒤돌아서는 김은혜의 뒷모습과 이를 배려하는 김동연의 모습은 신선해 보였다. 패배 후 승복과 마무리까지 매끄러워야 진정한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뚜렷한 예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