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과잉규제로 기업만 옥죄…예방책 강화해야"

by김호준 기자
2020.12.02 15:50:43

중기중앙회·경총, '산재예방 선진화 입법과제 토론회'
경영계, "산재 처벌규정 이미 세계 최고…예방 정책 강화해야"
전문가, "무거운 형벌로 일관…실제 적용가능성 의문"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산재예방 선진화를 위한 입법과제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중기중앙회)
[이데일리 김호준 기자] “산업재해 모든 책임을 사업주에게 넘긴다는 것은 기업에게 큰 불안감을 줄 우려가 있습니다.”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의 의무 규정만 1222개입니다. 산재 원인을 차단하는 예방 중심 정책 강화가 필요합니다.” (서승원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

경영계가 국회에서 논의 중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전 세계 유례없는 과잉규제”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경영계는 사업주에 대한 처벌강화만으로는 산업재해 예방효과가 제한적이라며 예방에 중점을 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산재예방 선진화를 위한 입법과제 토론회’를 공동 개최했다.

앞서 강은미 정의당 의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보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인 중대재해처벌법을 발의했다.

기존 산안법은 사업장 안전·보건 책임을 책임자나 관리자에게 위임하는 경우가 많아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도급·위탁의 경우에도 형식을 불문하고 실질적 사용자인 사업주·경영책임자가 처벌받도록 했다.

영업허가 취소·정지 등 제재는 물론이고 사망 사고 발생 시 사업주에게 최소 3년 이상 징역 또는 5000만∼10억원 벌금을 부과한다. 법인이 안전 의무를 소홀히 하면 매출액의 10%까지 벌금을 물릴 수 있는 가중 처벌조항도 포함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부산운동본부 관계자들이 28일 오전 부산시청 광장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토론회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오히려 기업의 능동적인 안전경영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서승원 중기중앙회 상근부회장은 “중대재해처벌법안은 지나치게 사업주 책임과 처벌을 강조해 과잉입법 논란이 크다”며 “처벌규정은 이미 개정 산안법(일명 김용균법)으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만큼, 사고 원인을 차단하는 예방 중심 정책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용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사망 사고를 효과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선진국처럼 산업안전 정책을 사전예방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은 개정 산안법 적용상황을 중장기적으로 평가한 이후에 논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법리적으로도 문제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발제를 맡은 이근우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형벌은 매우 엄격한 조건에서만 적용해야 하며, 법률 제정 목적이 정당하다는 것만으로는 그 수단의 위헌성이 정당화될 수 없다”며 “중대재해처벌법안은 대단히 무거운 형벌로 일관하고 있어서 오히려 그 적용가능성에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안은 전체적으로 안전원리나 법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재해예방 실효성이나 현장 작동성과도 거리가 있고, 비교법적 관점에서 볼 때도 보편성과 체계성이 결여된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발제 이후 진행한 토론에서는 오영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좌장으로 △이재식 대한건설협회 실장 △박종복 조선해양플랜트협회 부장 △송원근 한국산업연합포럼 소장 △인청식 주식회사 성원 대표이사 △양옥석 중기중앙회 인력정책실장 △임우택 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이 참석해 중대재해처벌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토론자들은 산업재해와 관련 사업주 및 원청에 대한 과도한 처벌위주 대응을 지양하고, 현장 중심의 안전규제 체계 구축과 예방 활동에 힘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양옥석 중기중앙회 실장은 “처벌강화 중심 정책은 오히려 경직성을 강화시키고 현장 안전을 강화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며 “현장에서 산재예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 강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