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극 오른 박정자, '기생충' 오스카상에 감격한 이유는

by장병호 기자
2020.02.12 15:39:34

'기생충' 예고편 내레이션 참여 인연
11일 공연서 "큰 위로 됐다"며 감격
연기인생 58년 집대성…대본 그대로 연기
코로나19 여파에도 연일 매진 기록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기생충’의 오스카상 수상, 여러모로 힘든 상황에서 큰 위로가 됐죠.”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1인극 ‘노래처럼 말해줘’로 무대에 오른 배우 박정자(78)가 전날 있었던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4관왕을 언급하며 감격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연극계 대모’로 불리는 박정자에게 ‘기생충’은 특별한 인연이 있는 작품이다. 평소 박정자의 팬이었던 봉준호 감독의 요청으로 ‘기생충’의 1차 예고편에서 내레이션을 맡았다. 예고편에서 박정자는 특유의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그건 엄연한 범죄입니다”라며 영화 속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을 소개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박정자 1인극 ‘노래처럼 말해줘’의 한 장면(사진=뮤직웰).


지난 6일 개막한 ‘노래처럼 말해줘’에는 박정자가 배우로서 자신의 목소리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는 장면에 ‘기생충’ 예고편을 언급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열린 공연에서 박정자가 “제가 ‘기생충’의 내레이션을 맡았다”고 말하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과 관련한 언급은 공연 직전 박정자의 제안에 따라 애드리브로 추가됐다는 후문이다. 박정자는 “내레이션을 녹음할 때 봉준호 감독이 외국에 있었다. 녹음이 끝난 뒤 봉 감독이 국제전화를 걸어와 ‘녹음 잘 마치셨다고 들었다, 감사하다’고 했다”며 “봉 감독에게 농담 삼아 ‘왜 영화를 찍을 때는 안 불렀냐’고 말했다”고 공개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번 공연은 박정자의 연기인생 58년을 집대성하는 무대로 공연계의 관심을 모았다. 박정자는 1962년 데뷔작인 연극 ‘페드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박정자라는 배우에게는 수많은 서랍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1997년 ‘그 여자 억척어멈’의 일본 도쿄 공연, 디즈니가 극찬한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우슬라 역 더빙 일화, 가장 최근에 공연했던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에피소드 등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찬찬히 언급하며 객석을 사로잡았다.

박정자 1인극 ‘노래처럼 말해줘’의 한 장면(사진=뮤직웰).


특히 2007년 정동극장에서 연극 ‘신의 아그네스’를 공연하기 전 부상을 당한 일화를 털어놓는 순간에는 엄숙함이 돌았다. 당시 공연 개막을 하루 앞두고 빙판길에 넘어져 부상을 당한 박정자는 깁스를 한 채 무대에 올라 공연을 감행했다. 박정자는 “대사가 생각나지 않아 2막에서는 대본을 들고 공연했다”며 “나중에 알았지만 티켓 환불 요청이 쏟아졌다”고 회상했다.

이날 공연에서 박정자가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언급하며 ‘힘든 상황’이라 표현을 쓴 이유는 최근 공연계에 불어닥친 코로나19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커튼콜에서 박정자는 “어려운 시기에 공연장까지 찾아와줘 감사하다”며 “마스크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을 자주 씻는 것도 더 중요하다고 한다”고 당부했다. 이번 공연은 코로나19 여파에도 연일 매진에 가까운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11일 공연에는 연극배우 남명렬, 뮤지컬배우 김호영 등이 공연장을 다녀갔다. 남명렬은 “박정자 선생님의 에너지가 대단한 무대였다”고 치켜세웠다. 김호영은 박정자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박수로 객석 분위기를 이끌며 호응을 유도해 눈길을 끌었다. 공연은 16일까지.

박정자 1인극 ‘노래처럼 말해줘’의 한 장면(사진=뮤직웰).
박정자 1인극 ‘노래처럼 말해줘’의 한 장면(사진=뮤직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