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고로 팀이 해체될까봐"…또 다른 '최숙현'들은 운다

by박기주 기자
2020.07.06 16:08:23

실업팀 선수 10명 중 3명은 폭력 경험
"지도자·선배 가혹행위에 수치심…우울증으로 자살시도도"
팀 해체·재계약 공포에…비인기종목은 말도 못 꺼내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그들 앞에서 저희는 사람이 아닌 존재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경주시청에 소속됐던 고(故)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의 극단적인 선택 이후 체육계, 특히 실업팀 선수들의 인권실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진상조사팀까지 꾸리며 해결 의지를 보이기도 했지만, 절대 권력을 가진 감독 등 지도자의 영향력 아래에서 이들의 갑질은 여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 최숙현 선수의 동료들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추가피해를 증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용 미래통합당 의원.(사진= 노진환 기자)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발표한 실업팀 성인선수 인권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3.9%는 감독이나 코치, 선배선수에게 언어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응답자 중 15.3%는 신체폭력을, 11.4%는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조사는 직장운동부를 운영하는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와 40여개 공공기관 소속 실업선수 1251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 조사 과정 중 심층면접조사 결과를 뜯어보면 최숙현 선수에게 행해진 가혹행위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감독과 선배의 권위주의적 행태는 실업팀 전반에 만연했지만, 팀 해체나 재계약 등 현실적 문제에 부딪혀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환경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 선수는 “지도자들이 말로 선수에게 엄청 수치심을 준다”며 “‘야 너 일로와 이 XX’, ‘이 X아’, ‘글러빠진 XX야’ 등 표현을 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질 않는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선수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물건을 집어 던지고,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인생 동안 받지 못했던 모욕감을 느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다른 20대 선수는 “선배가 왕”이라며 “후배가 식사와 설거지, 빨래, 청소 등 일을 도맡아 하는데, 제대로 못 하면 혼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가혹행위와 모욕 등은 선수의 정신건강에 큰 위협으로 이어졌다. 일부 선수는 우울증이 심해져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선수는 “우울증인 걸 몰랐는데 심리상담을 하면서 알았다”며 “전 소속팀에서도 자살시도를 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도움을 청해도 이들 선수에게 돌아온 것은 허무함뿐이었다고 토로했다. 한 선수는 “문제제기를 하고 호소문을 써도 생각보다 변한 게 없고, 나서서 그런 일을 한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이 든다”며 “협회 쪽이 그쪽(같은 종목) 분들이라 도움을 전혀 못 받을 것 같고, 결국 우리가 운동하는 데 있어서 더 제재를 당할 것 같은 불안감이 온다”고 말했다.

최숙현 선수의 비극도 결국 이와 다르지 않았다. 최근 경주시청 소속팀 감독과 선배, 팀닥터가 최 선수에게 강제로 음식을 먹이거나 폭행을 하는 등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최 선수는 생전 경찰과 스포츠인권센터를 통해 문제 제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가해자들이 이를 모두 부정하는 발언을 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숙현 선수가 어머니에게 남긴 마지막 메세지. (사진=연합뉴스)
실업팀 선수들에겐 팀 해체나 재계약 등 현실적 문제도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배경이다.

한 실업팀 선수는 “‘내가 폭행을 당했다’고 신고를 하면 그 신고로 실업팀을 없애버릴 수 있고, 그럼 선수도 다른 팀원들도 지도자도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되지 신고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선수도 “감독이 선수가 맘에 안 들면 선수를 괴롭혀 스스로 못 견디고 나가게 하는 방식으로 계약 기간 도중에도 선수를 방출 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 선수의 종목인 트라이애슬론 같은 비인기종목은 기득권층이 시스템을 독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애로점이 더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 비인기종목 실업팀 선수는 “협회를 한 사람이 잡고 모든 일을 총괄하고 있는데, 이 사람을 너무 믿고 밭겨서 관리체계가 무너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선수는 “어떤 지도자는 비리가 굉장히 많지만 그걸 캐다 보면 다른 지도자들도 다 연관되니 연맹에서 그냥 묻어버린 것 같다”며 “그 팀에 있는 선수들은 다 아는데 피해가 올까봐 아무도 말하지 않고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