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푸어 살린다?"…文 정부, '세일 앤드 리스백' 실효성 의문

by문승관 기자
2017.07.25 15:54:40

매매가격 책정부터 세제 문제 등 해묵은 과제 산적
"前 정부서 이미 실패한 정책"…금융권, 비관적 반응

[이데일리 문승관 기자] 문재인 정부가 주택 파이낸싱 시스템을 개편하겠다며 ‘세일 앤드 리스백’(매각 후 임대) 제도를 재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금융권 등에서는 실효성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세일 앤 리스백’은 은행이 하우스푸어의 집을 싼값에 사주고 일정 기간 임차해서 살 게 한 뒤 다시 재매입할 권리를 주는 방식이다. 빚을 못 갚아 집을 경매로 넘길 위기에 처한 대출자에게 숨통을 터줘 가계부채 연착륙을 이끌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금융계는 실현 가능성에 물음표를 달고 있다. 지난 2012년 박근혜 정부 시절 우리금융에서 첫선을 보인 뒤 이듬해 리츠를 설립했으나 곧 신규 리츠 설립이 중단됐다.

당시에도 여러 문제점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집 없는 서민과의 형평성 문제나 연체자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등이다. 주택매매 가격 산정이나 집값 하락 시 리츠의 손실 가능성 등 현실적인 문제도 첩첩산중이다. 오히려 가계부채 관리와 주택정책에 혼란만 가중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가 ‘세일 앤 리스백’ 도입 방안을 구체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실제 어느 정도 수준의 답안을 내놓을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세일 앤드 리스백 리츠는 주택도시기금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은행 등이 출자해 설립한 후 하우스푸어의 주택을 사들인다. 집을 리츠에 매각한 집주인은 그 주택에 임차인으로 들어가 살게 된다.

리츠는 임차 기간 5년이 지났을 때 집을 시장에 매각하는데 이때 원주인에게 매입 우선권을 준다. 팔리지 않은 주택은 LH가 임대주택 등으로 활용한다. 문재인 정부가 밝힌 세일 앤드 리스백 리츠 도입방안이다.

금융권에서는 용도 폐기된 실패한 정책의 재등장에 떨떠름한 반응이다. 새 정부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드러내놓고 반대하진 않지만 속내는 명확한 반대다.

시중은행 한 부행장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지만 이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기·구조·대상·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등 불가 이유를 구체적으로 열거했다.

우선 구조적 한계다. 일시적 유동성에 빠진 기업을 살리는 방안과 하우스푸어 구제는 같은 방식이 될 수 없다. 특히 재정 투입, 정부 보증, 세제 감면 등 정부의 개입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구조를 만들기 쉽지 않다.

불명확한 대상도 문제다. ‘하우스푸어’라 하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대상인지 불분명하다. 이는 곧 대출자의 도덕적 해이로 이어진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도 “연체자가 혜택을 보게 된다면 누가 빚을 갚겠냐”고 반문했다.

시기적 문제도 있다. 하우스푸어 등 제반 상황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느냐는 데 대해서도 이견이 분분하다. 새 정부의 ‘보여주기식’ 정책 추진 아니냐는 반감도 나온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한다는 현실이 출발점이라면 집의 처분 여부보다 만기 연장, 금리 조정 등으로 하우스푸어 대책을 세우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2년 우리금융은 1300여 명을 대상으로 세일 앤 리스백 제도를 시행했지만 신청자가 거의 없었다. 이유는 명확한 주택가격을 정하지 못해서였다. 당시 우리금융이 미국 BOA(뱅크오브아메리카)의 ‘세일 앤드 리스백’ 사례를 벤치마킹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현재 우리나라에 직접 대입하기에도 무리다.

금융권에서는 세일 앤드 리스백 리츠의 가장 큰 장애물로 주택 매매가격 산정을 꼽는다. 리츠는 앞으로 집값 하락 시 예상되는 손실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싸게 집을 사들여야 한다. 주택 보유자는 반대다. 가격이 너무 낮으면 대출자가 집을 안 판다.

리츠나 대출자 모두 동의하는 ‘접점’이 필요하지만 ‘공정가격’을 정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부동산 값이 내려가 매매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시장가격’도 무의미하다.

현재 금융회사나 정부는 적정경매가 등에 대해 충분한 분석과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다. 집을 산 뒤 월세나 전세 전환가에 대한도 연구도 사실상 미미하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후 집값이 대폭락해 바닥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부동산 가격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며 “리츠나 대출자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가격을 정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주택 매매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세제 문제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대출자가 리츠에 집을 팔거나 다시 사들이면 취득세, 보유세, 양도세 등이 발생한다. 당장 이자를 못 내 집을 매매해야 하는 대출자에게 과중한 세금을 내라는 건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형평성’이다. ‘하우스리스 푸어(houseless poor)’ 즉, 집이 없는 서민도 많은데 그나마 집 있는 ‘하우스푸어’를 돕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정부나 은행이 나서 ‘빚을 대신 갚아줄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면 이미 원리금을 꾸준히 갚아 온 사람들과 형평성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개별 금융사가 자체적으로 시행하면 문제가 안 되지만 정부가 나서면 재정부담 위험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