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유니콘 단 2곳뿐…금융권 '메기' 되려면 체급부터 키워야

by임유경 기자
2023.03.23 17:59:29

핀테크 메기론 부상했지만, 실상은
글로벌 핀테크 시장 비해 韓 핀테크 성장 더뎌
규제 샌드박스로 메기 키운다? “어불성설”
‘소비자 보호’ 미명 아래 시류 역행하는 법 개정 추진
핀테크 "디지털금융 맞는 법제도 정비 필요" 한목소리

[이데일리 임유경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 산업의 경쟁 촉진을 주문하면서 ‘핀테크 메기론’이 부상했다. 은행이 과점체계 아래 예대마진에만 안주하면서 금융 소비자의 이익이 저하됐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핀테크에 경쟁 촉진제 역할을 주문한 것이다. 하지만, ‘핀테크 업체들이 은행과 경쟁할 체급이 되느냐’는 질문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빅테크라 불리는 네이버, 카카오도 결제·송금 분야를 빼면 금융 영역에서 사업적 성과가 미미한 게 현실이라서다. 한시적으로 규제를 유예해 주는 금융규제 샌드박스에만 의지해 사업을 펼쳐야 하는 처지다 보니, 장기적인 안목으로 과감한 투자를 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디지털금융 산업에 대한 기본법을 시급히 정비하고, 국내 핀테크 기업의 ‘스케일업(Scale-up·규모 확대)’을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핀테크 기업 600개 육박했지만 성장은 더뎌

한국핀테크지원센터에 따르면 국내 핀테크 기업은 2021년 기준 550여 개로 집계됐다. 2015년 205개에서 6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정부가 핀테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 지원을 본격화하고, 글로벌 벤처 생태계 내에서 핀테크 분야에 대한 투자가 늘면서 국내 핀테크 산업은 단기간에 급격한 양적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해외 핀테크 기업들이 최근 4~5년간 차근차근 스케일업 과정을 밟아 글로벌 유니콘(기업가치를 1조원 이상으로 평가받는 비상장 기업)으로 성장한 것과 달리 국내 핀테크 기업들은 질적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9년까지 시드 스테이지 투자를 받았던 국내 핀테크 기업의 단 23.9%만이 2022년 9월 기준 얼리 스테이지(시리즈A·B)의 투자를 받는 데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동남아 핀테크 기업의 39.9%, 50%가 각각 얼리 스테이지로 진입한 것과 비교하면 국내 핀테크 스타트업 성장 속도가 더딘 것이 사실이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글로벌 유니콘 기업(1191개) 중 핀테크 업체는 약 25%(900개)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만큼 유망한 산업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국내 핀테크 기업 중 유니콘은 몇 년째 두나무(업비트)와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단 2개뿐이다. 국내 핀테크 기업의 스케일업을 위한 정책 지원이 시급한 이유다.

금융규제 샌드박스로 메기 키울 수 있나?

정부도 핀테크 산업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금융 당국은 핀테크 규제환경 개선, 금융규제 샌드박스 시행, 오픈뱅킹 전면 시행, 마이데이터 서비스 도입 등으로 핀테크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금융규제 샌드박스는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에 대해 규제를 유예해주고 서비스 출시를 돕는 제도로, 플랫폼 기반 금융 서비스의 효용을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237건의 혁신금융서비스가 지정됐고, 156개의 서비스가 규제 특례를 적용받아 출시되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금융규제 샌드박스만으로 은행권에 대적할 메기를 키울 순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금융권 한 전문가는 “규제샌드박스는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실험할 수 있는 제도이지, 이것을 가지고 금융권 메기를 만든다는 건 (실현 불가능한) 너무 큰 얘기를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 핀테크 업체들의 금융 사업 매출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네이버의 경우 지난해 4분기 디지털금융 관련 매출은 154억원으로, 전체 핀테크 사업에서 4.8%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핀테크 업계 한 관계자는 “2019년부터 시행된 금융규제 샌드박스는 핀테크가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게 한 좋은 토양이 됐지만, 한시적인 규제 유예에 기대어 사업을 지속해나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혁신금융 서비스로 지정되더라도 각종 제약이 따라붙는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최근에는 예·적금 비교추천서비스를 허용하면서, 은행이 플랫폼을 통해 판매할 수 있는 상품 비중을 제한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은행은 전년도 예·적금 신규모집액의 5% 이내, 저축은행과 신협은 3% 이내만 플랫폼을 통해 판매할 수 있다. 플랫폼을 통해 예·적금을 비교하고 가입하려는 수요가 많아도, “금융시장 안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판매 수량을 한정해 확산을 제어한 것이다.

디지털 금융 활성화 위해 법제도 갖춰져야

업계에선 디지털금융을 위한 기본법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산업인 핀테크를 규율한 마땅한 법이 없기 때문에 은행법, 보험업법, 여신전문금융업법 등 전통 금융 규제를 들이대는 일이 빈번해 혁신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7월 핀테크의 간편결제(직불·선불지급수단)도 신용카드처럼 부가서비스를 종료하려면 6개월 전 고지하도록 규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해당 규제는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철회 권고’를 받아 실행되진 않았다.

전통 금융의 시각으로 핀테크를 옥죄는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에는 한도가 30만원에 불과한 ‘후불결제 서비스’를 신용카드와 동일하게 규제하도록 한 조항이 포함돼, 과잉규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금법이 디지털 금융의 기본법 역할을 해야 하지만 핀테크, 빅테크의 출현에 따른 변화를 제도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2020년 11월 전금법 전면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현재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핀테크 같이 혁신적인 신생 산업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규제 만들지 않는 것이 좋지만, 우리나라는 포지티브(할 수 있는 것만 명시) 방식의 법체계라 합리적인 규율이 없으면 오히려 산업 활성화가 어렵다”면서 “이런 경우 규제법보다 디지털금융 육성법을 만들어 기업들을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