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도네시아 CEPA 사실상 타결…신남방 물꼬 텄다

by김형욱 기자
2019.10.16 15:11:54

16일 실질타결 공식 선언…내년 상반기중 정식 서명
車철강·부품 관세 즉시 철폐…日 대등 조건에서 경쟁
필리핀·말레이시아와의 FTA도 연내 타결 막판 협상

(왼쪽 4번째부터)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엥가르띠아스토 루키타 인도네시아 무역부 장관 등 양국 통상부문 관계자가 16일 인도네시아 땅그랑에서 한-인도네시아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을 실질적으로 타결했다는 공동선언을 한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산업부 제공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우리나라가 인도네시아와 자유무역협정(FTA)의 일종인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을 사실상 확정했다. 우리 기업이 현지에서 시장지배적 지위를 누리는 일본 기업과 대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남아시아 국가와의 교역 확대를 통해 미·중·일·유럽에 집중된 수출을 다변화한다는 정부의 신남방 정책도 탄력을 받게 됐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6일 인도네시아 땅그랑에서 엥가르띠아스토 루키타 인도네시아 무역부 장관과 만나 한-인도네시아 CEPA가 실질적으로 타결됐다는 내용의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2012년 협상 개시 이후 7년 만, 한동안 협상이 중단된 걸 고려하면 올 2월 협상 재개 선언 이후 약 8개월 만의 성과다.

실질 타결이란 사실상 이 협정에 대한 협상이 끝났음을 뜻한다. 주요 이슈에 대한 합의는 모두 마친 상태에서 남은 기술적 부분에 대해서만 조율 후 실제 협정을 맺게 된다. 산업부는 협정문 법률 검토 등을 거쳐 내년 상반기 중 정식 서명을 추진한다. 또 국회 비준 동의도 신속히 추진해 차질 없이 협정을 발효할 계획이다. CEPA는 흔히 쓰는 FTA와 거의 같은 형태의 자유무역협정으로 포괄적인 교류·협력 내용을 아우른다.

양국이 한-인도네시아 CEPA를 발효하면 대부분 상품을 무관세로 교역할 수 있게 된다. 한국 상품의 93%(품목 기준)는 인도네시아 수출 관세가 즉시 혹은 단계적으로 철폐된다. 액수 기준 개방률도 97%다. 인도네시아 역시 품목으론 95.5%, 액수론 97.3%를 관세 없이 우리나라에 팔 수 있게 된다.

특히 한국산 냉연·도금·열연 등 자동차용 강판과 부품 등에 대한 5~15%의 현지 관세는 즉시 철폐된다. 국내 완성차 기업에 현지에 완성차·조립공장을 짓는다면 사실상 관세 없이 현지에 판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국내 철강사의 현지 완성차 공장 납품 기회도 커졌다. 완성차 수출에 대한 5%의 관세는 유지된다. 섬유나 기계부품 등에 대한 5%의 관세도 발효 즉시 사라진다.

수출입 수수료 공개 등을 통해 우리 기업이 인도네시아 시장 진출 때 어려움을 겪던 각종 비관세장벽 조치의 완화 근거도 마련했다는 게 산업부의 설명이다. 온라인게임이나 도·소매, 유통, 건설, 서비스 등 부문에서도 외국인 투자 지분제한율 인하 등을 통해 진출 여건을 개선하기로 했다.

우리도 시장을 개방했으나 농업계의 우려를 고려해 주요 농수산물은 양허 제외로 보호했다. 에너지 부문에서도 경유나, 벙커C유, 정밀화학원료 등 우리측 민감성이 높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만 즉시 혹은 단계적으로 관세를 풀어주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이번 CEPA 협상의 가장 큰 의미는 우리 기업이 일본 기업과 최소한 대등하게 경쟁할 여건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일본은 인도네시아와 일찌감치 양자 경제연계협정(EPA)을 맺어 관세 혜택을 누려왔다. 특히 30~4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진출을 시작해 현지 생산·공급체계를 구축하며 시장지배적 지위를 누려 왔다. 일본의 현지 자동차 시장점유율도 무려 96%에 이른다. 일본 자국보다 일본차 비중이 큰 시장이다. 한국차 점유율은 0.16%, 연 1000여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인도네시아 CEPA가 발효하면 우리는 일본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개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일본의 대 인도네시아 상품 무관세 개방률은 품목 기준 93.3%, 액수 기준 94.4%로 우리(93.0%, 97.0%)와 거의 비슷하다.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실장은 “CEPA를 맺는다고 지배적 위치에 있는 일본을 당장 역전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 경쟁 여건은 불리하지 않게 됐다”며 “앞으로 기업과 함께 CEPA 활용률을 높여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신남방 정책도 한-인도네시아 CEPA 실질 타결로 성과의 물꼬를 트게 됐다. 정부는 필리핀·말레이시아와의 FTA도 추진하고 있는데 두 협상 모두 양측의 타결 의지가 강해 목표했던 11월 한-아세안 정상회담 이전 타결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성사 땐 아세안 상위 5개국과 모두 양자 FTA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필리핀은 아세안 국가 중 각각 2, 4~5번째 교역국이다. 지난해 교역액이 각각 200억달러, 192억달러, 156억달러에 이른다. 아세안 최대 교역국인 베트남(683억달러)과 3대 교역국 싱가포르(198억달러)와는 이미 2015년과 2006년부터 FTA를 발효하고 있다.

1001억달러(지난해 기준)에 이르는 아세안 시장 문턱이 한층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와 아세안의 교역 규모는 이미 단일 경제권으론 중국(1621억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한-아세안 FTA가 이미 발효해 있지만 다자 FTA 특성상 시장 개방도는 낮은 편이다.

여기에 아세안과 함께 한·중·일, 호주, 뉴질랜드, 인도 16개국이 모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도 연내 타결을 목표로 막판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것까지 함께 성사하게 되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8%에 이르는 25조달러 규모의 시장의 문턱이 더 낮아지게 된다.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11월 아세안 순방을 시작으로 신남방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특히 올 들어 최근 미·중 무역갈등에 따른 국제 경기침체로 지난해 12월부터 올 9월까지 수출이 10개월째 뒷걸음질치고 있는 상황여서 시장 다변화를 통한 반전이 절실한 상황이다.

여한구 실장은 “아세안 국가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결과를 예단할 순 없지만 각 국가의 특성을 반영해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보려 노력하고 있다”며 “올해 1단계로 5개국과의 FTA를 마친 이후 내년 이후 캄보디아 등을 상대로 2단계 FTA 협상을 추진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산업통상자원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