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재점화한 ‘집단소송제‘

by박성의 기자
2017.08.21 15:23:11

'괜찮다'는 정부에 소비자 불신 심화
피해입었는데 마땅한 구제책 없어
집단소송제 있었다면 '줄소송' 직면했을 수도
소비자연맹 "유통기업도 책임有..구제책 마련해야"

[이데일리 박성의 기자] “누가 어떻게 얼마큼 책임을 질 수 있습니까? 먹은 사람만 바보된 거죠.”

20일 경기도 부천시 이마트의 신선식품 매장 앞에서 만난 박상범(57·경기 시흥) 씨는 최근 일어난 ‘살충제 계란’ 사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박씨의 카트에는 계란 대신 샀다는 메추리알 40개가 담겨있었다. 그는 “기업은 괜찮다고 다시 계란을 팔고 정부는 앞으로 검사 잘하겠다고 하는데 이미 늦은 것 아니냐”며 “막말로 누구 하나 아프지 않으면 흐지부지 잊힐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정부 및 국내 식품·유통대기업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부실한 농약성분 검사시스템이 드러난 상황에서, 국내 1위 식품대기업 CJ제일제당의 ‘알짜란’ 브랜드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서 소비자 불신이 최고조에 이르렀지만 이에 대한 뚜렷한 후속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여기에 ‘친환경 이미지’를 내세워 CJ알짜란을 포함한 ‘문제의 계란’을 판매해 온 롯데마트, 홈플러스, 이마트 등 대형마트 3사 모두 “환불 조치 외에는 별다른 보상안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소비자단체에서는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의 직·간접 가해자들을 엄벌할 수 있는 ‘집단소송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집단소송제란 기업이나 정부가 부당행위로 인한 특정 피해자가 소송에서 이기면 나머지 피해자도 모두 배상받는 제도다. 미국에서는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대부분 사건에 대해 집단소송(Class Action)을 허용하고 있다. 즉, 소비자 1명만 승소하면 불법을 저지른 정부나 기업은 최대 수백만 배에 이르는 보상금을 토해내야 한다. 소비자 권리를 높일 수 있고 탈법을 예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집단소송제 도입을 공약한 바 있다.

법조계에서는 집단소송제가 국내에 있었다면, ‘살충제 계란’ 사태의 파장이 더 커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법률사무소 새빛의 박지혁 변호사는 “정부가 국민의 건강권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사실이 드러난 상황에서 집단소송제가 있었다면, 소비자들의 소송이 빗발쳤을 수 있다”며 “현행법으로는 피해입증 책임이 소비자에게 과하게 전가돼 있기에 쉽게 (소송에) 나서지 못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집단소송제 없이도) 폭스바겐 소송처럼 소비자들이 개별적으로 모여 소송을 진행할 수는 있지만, 개개인별로 처한 상황과 피해규모, 입증의 난이도가 다른 것이 문제”라며 “특히 피해규모를 구체적으로 산출하기가 어렵고 정부가 살충제 계란 사태를 방조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양계농가 뿐 아니라 친환경 제품이라며 ‘살충제 계란’을 판매한 유통기업들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2의 살충제 계란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에 대한 제재에 초점을 맞춘 사전대책 뿐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보상금을 규정하는 사후대책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은 “소비자들은 가습기 살균제와 살충제 계란 사태를 겪으면서 정부가 꼭 문제가 돼야 대책을 내놓는다는 불신을 뿌리 깊게 가지게 됐다”며 “정부는 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모니터링을 강화하기에 앞서 사고가 발생했을 시 소비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 및 구제방안을 마련해 둬야 한다”고 했다. 그는 유통기업 역시 이번 사태의 역시 간접적인 가해자라며 “식품을 제조하고 유통하는 기업은 안전한 먹거리를 팔 법적인 의무는 없다. 다만 이는 소비자에 대한 하나의 책무다. 소비자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향후 잔류농약검사의 강화 등 관련 대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