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 경기 고점론 급부상…'가보지 않은 길' 가는 시장

by김정남 기자
2021.09.02 17:19:06

'세계 경제 엔진' 미국·중국 경기 둔화 징후
미국 ADP 민간고용, 예상 대비 반토막 그쳐
중국 제조업 PMI, 1년4개월 만에 위축 국면

(그래픽=김일환 기자)
(그래픽=김일환 기자)


[뉴욕·베이징=이데일리 김정남 신정은 특파원] 미국 뉴저지주 북동부에 사는 G씨는 노동절(현지시간 6일) 연휴를 이용해 메인주와 매사추세츠주 등을 둘러보는 여행을 계획했다가 최근 취소했다.

이유는 다름 아닌 델타 변이바이러스다. 당초 코로나19를 우려해 비행기가 아닌 자동차 여행을 예정했음에도 주요 여행지마다 델타 변이 확산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G씨는 “자녀들 학교 개학을 앞두고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며 “주위에 비행기를 타기로 한 이들은 더 많이 취소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주요 항공사인 유나이티드항공은 노동절 연휴 기간인 2~7일 약 200만명의 승객을 태울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는 지난해의 세 배 규모이지만, 2019년(약 260만명)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다. 팬데믹 이후 억눌린 수요가 델타 변이 복병을 만난 후 정점을 찍고 내려오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美 민간 고용, 예상 반토막…中 제조업 PMI 위축국면

‘세계 경제 엔진’ 미국과 중국의 경기 둔화 징후가 심상치 않다. 각종 경제 지표들이 줄줄이 예상을 밑돌면서 경기 고점론이 급부상했다. 특히 중국에서는 추가로 돈을 더 푸는 조치까지 내놓았다.

1일(현지시간) ADP 전미고용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8월 민간부문 고용은 37만4000명 증가했다. 시장 예상치(60만명)과 비교하면 반토막에 불과한 수치다.

ADP 민간 고용은 지난 3월 51만9000명 증가한 이후 62만2000명(4월)→88만2000명(5월)→74만1000명(6월)→32만6000명(7월)→37만4000명(8월)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델타 변이 확산이 본격화한 7월 이후 고용 부진이 뚜렷하다. 넬라 리처드슨 ADP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델타 변이 확산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며 “팬데믹 이전보다 여전히 700만개의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했다.

일자리 증가가 더딘 건 떨어진 경제 활력을 방증하고 있다. 교통안전국(TSA)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미국 내 공항 이용객 수는 135만명으로 나타났다. 5월 11일 이후 가장 낮다. 사우스웨스트, 아메리칸, 프런티어 등 주요 항공사 경영진들은 예약 감소에 따른 수익 악화를 토로하고 있다고 CNBC는 전했다.



경기 고점론이 더 비등한 곳은 중국이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올해 1분기 18.3%로 최고점을 찍은 후 2분기 7.9%로 뚜렷하게 둔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가 지난 7월부터 코로나19 재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해보다 더 강력한 통제 조치를 실시하면서 경제가 충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나둘씩 낮추기 시작했다.

중국의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수출 지표가 악화된 데 이어 전날 발표된 차이신(財新) 8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2로 코로나19가 심각했던 작년 4월(49.4) 이후 처음으로 위축 국면에 진입하는 등 굵직한 경제 지표가 모두 예상을 밑돌고 있다.

칭다오항 전경. 사진=신정은 기자
내년 스태그플레이션 우려…中 지원금 54조원 투입

금융시장의 반응에 관심이 집중된다. 특히 미국은 풀었던 돈줄을 조이려는 타이밍에 경기 둔화론이 불거지면서, 연방준비제도(Fed) 긴축 시기가 다소 밀릴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물가 상승률이 치솟는 상황에서 돈을 계속 풀면 자칫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뉴욕의 투자자문사인 인프라캡의 제이 햇필드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야후파이낸스와 만나 “내년 금융시장의 주요 위험 요소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라고 했다.

뉴욕 증시는 일단 보합권에서 차분하지만, 9월 조정론은 부쩍 많아졌다. 월가 금융사 한 인사는 “경기 둔화 흐름이 더 심화할 경우 시장 불확실성은 더 커질 것”이라며 “(돈 풀기가 계속 이어지는) 가보지 않은 길을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은 추가 부양책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분위기다. 이미 중앙정부인 국무원은 전날 리커창(李克强) 총리 주재 상무회의에서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올해 재대출 규모를 3000억위안(약 54조원) 추가로 확대하기로 했다. 재대출은 인민은행이 시중 은행에 주는 신용 대출로, 이번에는 지방 소재 은행들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대출할 수 있게끔 했다.

중국 정부가 이번에 재대출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최근 중국 경기가 급격하게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큰 어려움에 빠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루팅 노무라 중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인민은행이 지급준비율을 추가로 낮춰 장기 유동성을 더 투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인민은행은 지난 7월 은행 지준율을 0.5%포인트 내리는 등 15개월 만에 다시 지준율 인하 카드를 꺼낸 바 있다.

국무원은 “안정적 성장과 고용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중소기업 보호가 중요하다”며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생산·경영 비용 증가, 코로나19 영향 등에 대응해 시장 안정책을 한층 강화함으로써 경제가 합리적 구간에서 운영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