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먹거리' 찾는 삼성…반도체 설계·전장 업체 M&A 정조준

by김상윤 기자
2022.01.11 16:31:26

6년 만에 대형 M&A 가시화…한종희 부회장 "조만간 좋은 소식"
AI반도체 설계기술 습득해 기기 간 연결 강화…빠른 시장진입
차량용 반도체기업 NXP 대상은 제외된 듯…경쟁당국 리스크 고려

[이데일리 김상윤 최영지 기자] 한동안 멈춰 섰던 삼성전자의 대규모 인수합병(M&A) 움직임이 조만간 재개될 전망이다. 재계 안팎에선 기존 메모리반도체 사업 외에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지능형(AI) 반도체 설계업체나 전장(전자장치)업체 등이 M&A 대상 물망에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6년 만에 대형 M&A 가시화 “조만간 좋은 소식”

11일 재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AI반도체 설계회사 및 전장업체 등을 중심으로 M&A를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에서 기자들과 만나 “혼자 가기보단 M&A가 빠르다면 택할 것이고 부품과 완제품(세트) 양쪽 분야 모두 M&A 가능성을 크게 열고 (대상을) 상당히 많이 보고 있다”면서 “조만간 좋은 소식이 나올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삼성전자의 대규모 M&A는 2016년 이후 사실상 전무하다. 당시 삼성전자는 신성장 분야인 전장사업을 본격화하고 오디오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80억달러(약 9조4000억원)에 하만을 사들였지만 이후 별다른 M&A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신산업 중심으로 M&A에 속도를 내겠다고 공언했고, 이후 지난해 8월 이재용 부회장 가석방 직후 3년간 240조원의 투자계획을 발표할 당시 등 기회가 닿을 때마다 대규모 M&A를 지속적으로 암시해왔다.

AI 실행에 최적화된 AI반도체 설계업체(팹리스)는 최우선 M&A 대상으로 꼽힌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따르면 AI 반도체의 세계 시장 규모는 2020년 184억달러(약 21조원)에서 약 10년 뒤인 2030년 6배 성장해 총 1179억달러(약 137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AI반도체가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0년 8%에서 2030년 31% 수준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도 AI반도체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설계 실적이 뒤떨어져 있는 만큼 AI반도체 설계업체 인수를 통해 빠르게 시장에 진입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무엇보다 삼성전자는 차별화된 AIㆍ사물인터넷(IoT) 기술을 기반으로 TV·모바일 등 여러 가전기기를 연결해 고객에게 유기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새로운 비즈니스모델로 삼고 있다. 기존 단순한 기기 간 연결을 떠나 각 기기가 보유한 데이터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편의성을 제공하려면 AI반도체 탑재가 필수다.



최기창 서울대 SNU공학컨설팅센터 교수는 “가전에 탑재할 수 있는 지능형반도체(AI) 관련 M&A를 추진할 수 있다”면서 “포화상태인 가전시장에서 제품 기능을 차별하려면 AI반도체를 활용하는 방안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장업체 인수도 유력한 시나리오다. 자동차가 단순 이동수단을 넘어 이동하는 전자장치로 변화함에 따라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하만과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M&A 대상을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도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분야 매출을 늘리기 위해 AI반도체, 차량용반도체 시장에 보다 힘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노태문 사장(MX사업부장), 한종희 부회장(DX부문장), 이재승 사장(생활가전사업부장)(사진=삼성전자)
◇차량용 반도체기업 NXP는 대상에서 제외된듯


한때 유력한 M&A 대상으로 거론됐던 네덜란드 반도체 회사 NXP는 M&A 후보군에서 탈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4년 필립스 반도체 사업부문이 분사해 세운 이 업체는 차량 전력을 제어하는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업체 퀄컴이 약 50조원 규모의 인수 계약을 체결했지만, 중국 경쟁당국에서 끝내 기업결합 승인을 받지 못하면서 NXP의 향배는 삼성전자에 쏠렸다.

하지만 차량용 반도체 공급대란에 NXP의 가치가 치솟은 데다, NXP에서 차량용 반도체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이하라는 부정적 요소로 이 같은 관측을 부추기고 있다. NXP가 텍사스주 오스틴과 애리조나주 챈들러에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모두 20㎚(나노미터·10억 분의 1m) 이상의 구식 공정을 사용하고 있어 5㎚ 이하 공정을 개발 중인 삼성전자엔 ‘플러스’ 요인이 많지 않다. 여기에 미국 경쟁당국이 반도체 독점에 대해 강하게 칼을 휘두르고 있어 계약이 물거품 될 리스크도 있다.

박 교수는 “NXP가 한때 거론됐지만 최근 차량용 반도체 대란으로 인수가격이 급상승해 삼성엔 매력적인 매물은 아닐 것”이라면서 “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글로벌 경쟁당국이 M&A 심사를 까다롭게 보는 점도 마이너스 요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