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대학서열 경쟁이 빚어낸 '국제망신'

by김성훈 기자
2017.06.14 14:36:19

중앙대학교 전경 (사진=중앙대)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국숭세단…”

국내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흔히들 외우고 있을 문구다. 수 십년째 굳어진 대학 서열을 부르는 다른 말이자 대학을 등수로만 평가하는 국내 대학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한 단면이다.

최근 세계 대학평가 순위를 조작해 논란이 불거진 중앙대 사태는 순위 지상주의에 빠진 국내 대학들의 씁쓸한 현실을 보여준다.

영국의 대학 평가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는 지난 8일 공개한 ‘2018 세계대학 순위’에서 중앙대를 평가에서 제외했다. QS 측은 “심사 과정에서 중앙대에 이례적으로 유리한 답변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고 조사한 결과 공식 승인 없이 평가 자료를 조작한 정황을 확인했다”며 “학교에 대한 성과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시도를 용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중앙대가 조작한 부분은 경영·경제계열 졸업생 평판도(employer peer review) 항목으로 알려졌다. 해당 설문은 졸업생을 채용하는 기업체의 인사 담당자가 작성해야 하지만 중앙대는 교내 대학평가 담당자가 설문을 작성해 QS 측에 제출했다. 전체 6개로 이뤄진 지표에서 평가 항목이 50%(학계 평판 40%·졸업생 평판도 10%)를 차지하는 QS의 평가 방법을 교묘히 사용했다.



중앙대는 학교 교직원의 부적절한 행동이 이번 사건을 낳았다고 해명했다. 중앙대 관계자는 “내부 조사결과 교내 평가 기획팀 직원이 부적절한 데이터를 입력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곧 열릴 징계 위원회를 거쳐 징계 조처를 내릴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해명이 사건을 덮기 위한 ‘꼬리 자르기’라고 주장한다. 국내 한 대학 관계자는 “졸업생 평판도 항목은 공정성 확보를 위해 작성자의 이메일이나 IP주소 등을 같이 제출해야 한다”며 “교직원 개인이 상부의 지시 없이 이렇게 복잡하고 지루한 과정을 독단적으로 했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중앙대 구성원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중앙대 관계자는 “순위를 높이기 위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교내 교수협의회와 노동조합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학교 측이 교수들과 교직원들에 대한 평가제도와 인사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 제기를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고 토로했다.

한 대학 교수는 “비단 중앙대뿐 만의 문제가 아닌 국내에 있는 모든 대학이 직면한 문제”며 “정부조차 대학 평가를 통한 재정지원 차별화 정책이나 대학 정원을 줄여가는 대학구조개혁 정책을 표방하면서 대학 줄 세우기를 진행해 왔다”고 했다.

정부는 고등교육의 비전을 제시하는 한편 대학 평가를 통한 재정 지원에 변화를 줘야 한다. 대대적인 개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등수 올리기에 급급한 ‘사상누각’식 대학 행정과 이에 따른 ‘국제적 망신’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