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亞, 동시다발적 부동산 가격 상승…'거품' 경고음

by방성훈 기자
2021.03.29 14:01:02

OECD 37개국 지난해 집값 5% 상승…20년래 최대폭
덴마크·중국 등 각국 규제당국 “거품·과열” 잇단 경고
美 등 일부 경제학자 “2008년 붕괴 재현 우려 없어”
“신용등급·현금비중 더 높아…실거주 수요 따른 상승”

미국 일리노이주의 한 주택 인근에 판매 간판이 걸려 있다. (사진=AFP 제공)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유럽·아시아 전 세계 부동산 가격이 동시다발적으로 상승하면서 잠재적 거품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에 따른 각국 정부의 경기부양책, 중앙은행들의 저금리 기조, 재택근무에 따른 구매 패턴 변화 등으로 북미 지역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전 세계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잠재적인 거품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37개국 집값은 지난해 3분기 역대 최고 수준을 보이며 연간 상승률이 약 5%까지 치솟았다. 이는 20년래 가장 빠른 속도다.

유럽은 미국·중국보다 경제전망이 밝지 않은데도 주택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평균 1.35%에 불과한 주택담보대출 금리와 각국 정부의 급여 보조, 대출 상환 유예 조치 등의 정책이 맞물려 가격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실례로 덴마크의 경우 주택담보 대출이 현재 ‘마이너스 금리’여서 되레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게 이익이다.

호주에서는 주택담보 대출 문의와 신청이 봇물 터지고 있다. 호주 모기지 중개업체 쇼어파이낸셜은 “은행들이 이를 처리하기 위한 기간이 기존 며칠에서 최근 한 달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전했다.

한국 역시 서울에서 지난해 집값이 15%나 뛰면서 일부 신혼부부들이 저금리 대출을 더 많이 받으려고 일부러 혼인신고를 늦추고 주택을 사는 경우도 있다고 WSJ은 소개했다.

전 세계적인인 부동산 시장 과열 현상은 팬데믹 이후에도 수년간 저금리가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빚을 내서라도 주택을 구매하려는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팬데믹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이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부동산 구매자들의 행동도 구매 수요를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WSJ의 설명이다. 실거주 구매 수요가 크게 늘면서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렸다는 얘기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팬데믹 이후 기준금리가 정상화하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경우 빚 부담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에 각국 정책 입안자들이 위기 이후에도 경기회복을 위해 초저금리 유지를 원하면서도 국민이 향후 가격이 내려갈 수도 있는 부동산을 구매하느라 과도한 부채를 떠안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는 진단이다. WSJ은 “팬데믹 이전부터 유럽, 아시아 및 캐나다 일부 지역에서는 높은 부동산 가격을 우려했다”고 설명했다.

각국 금융·규제 당국은 지속적으로 시장에 경고를 보내고 있으며 일부 국가는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등 시장 안정 조치에 나서고 있다. 뉴질랜드에선 2월 부동산 가격이 전년 동기 대비 23% 급등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뉴질랜드 규제당국은 최근 주택담보 대출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덴마크 중앙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낮은 자금조달 비용이 집값 상승으로 이어져 더 많은 부채 부담을 지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카스텐 빌토프트 덴마크 중앙은행 부총재는 “연 5∼10%의 집값 상승률은 장기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는 게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중국 규제당국의 한 고위 공직자는 부동산 시장 과열에 대해 “거품”이라며 시장안정을 시도했지만 이 같은 노력이 소용이 없었다고 WSJ은 전했다. 지난해 중국 선전의 부동산 가격 상승률은 16%에 달했다.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 가계가 주택구입 자금을 조달하는 데 과도한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고 우려했고, 티프 맥클럼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도 지난달 캐나다 집값이 17%(연율) 급등하자 자국 주택시장이 “과잉 상태”의 초기 신호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일부 지역 경제학자들은 지난 2008년과는 달리 주택시장 붕괴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구매자들이 더 높은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있으며, 구매를 위한 현금 비중이 이전보다 높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현재 과열된 부동산 시장이 향후 금리상승과 수요 완화로 큰 피해 없이 자연스럽게 냉각될 것이라고 경제학자들은 전망했다.

영국 부동산 컨설팅업체 나이트프랭크의 국제 주택 담당 책임자인 케이트 에버렛-앨런은 “봉쇄 기간 사람들은 한 걸음 물러서서 생활 방식을 재평가하게 됐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났다”며 주택 구매 수요가 재택근무 확산 등으로 과거와 달리 실거주 수요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