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시인' 박용래의 문학과 생애를 만나다…전집·평전 출간

by이윤정 기자
2022.12.09 17:39:00

박용래 시전집·산문전집·평전
미발표 원고, 편지까지 총망라
''백석 전문가'' 고형진 교수가 엮어내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박용래 시인의 ‘겨울밤’)

1960~70년대 한국문학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박용래 시인의 시전집과 산문전집, 평전이 나란히 출간됐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울타리 밖’을 비롯해 ‘겨울밤’ ‘저녁눈’ ‘점묘’ 등의 명시들을 남긴 박 시인은 확고한 문학사적 평가를 얻고 후배 시인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의 문학성이 온전히 갈무리된 전집은 미비해 아쉬움을 남겼다.

‘정본 백석 시집’ 등의 작업으로 시 정본 연구의 면밀함을 인정받은 고형진 고려대 교수가 수년간의 자료 조사와 연구 끝에 ‘박용래 시전집’과 ‘박용래 산문전집’, 문학적 일대기를 담은 ‘박용래 평전’을 내놨다. 시인에 대한 전기적 사실과 증언 등을 두루 참조했고 생전에 발표한 시와 산문 작품, 미발표 원고, 편지 등을 망라했다.

박용래 시인은 1925년 충청남도 강경에서 태어났다. 그는 명문인 강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은행(현 한국은행)에 입사했으나 은행 업무에 대한 환멸과 시에 대한 열망으로 3년 만에 그만둔 뒤 시쓰기에 전념했다. 1955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 6월호에 ‘가을의 노래’, 1956년 1월호와 4월호에 ‘황토길’과 ‘땅’을 발표하며 시단에 나왔다.

박용래의 시는 짧은 시행 안에 풍경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면서도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과 같이 다가온다. 일체의 감정을 배제하고 간결한 형식을 구사하지만 그 바탕에는 사라져가고 가난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이 깔려 있다. 생전 어느 자리에서고 자주 눈물을 보여 ‘눈물의 시인’으로도 불렸다.



시인은 1970년대 중반 이후 그 시적 기법과 정신의 폭을 넓혀나가던 중 1980년 11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백석을 비롯해 이장희, 윤동주, 이육사, 오장환, 박목월 등의 시인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우유꽃 언덕’과 ‘그 봄비’ 등의 시에서 백석과의 긴밀한 연관성이 드러난다.

‘박용래 시전집’에는 시인이 생전에 발표한 작품과 그의 사후에 발표된 유고작, 그리고 시작 노트에 메모된 미발표 작품 등 총 208편의 시가 실렸다. 첫 시집 ‘싸락눈’을 비롯해 등단 전후의 발표작과 미발표 유고작 등 시인의 작품 전체를 망라한 완전한 형태의 시전집이다. 최종 수정본과 수정 전의 판본을 부록으로 실어 개작 과정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박용래 산문전집’은 함축의 미학을 구사한 박용래의 산문을 두루 모았다. 시인은 1969년 등단 13년 만에 첫 시집을 출간하고 이듬해 제1회 현대시학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시인으로서 유명세를 얻었고, 그 무렵부터 여러 지면에 산문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문학적 여정을 회고한 자전적 성격의 산문 연재를 모은 ‘호박잎에 모이는 빗소리’, 시인으로서의 삶과 창작에 대한 산문을 담은 ‘시론’, 시인의 취미와 관심사 등에 관한 ‘단상’, 가족과 문인·예술가 들에게 보낸 편지 등으로 구성했다.

‘박용래 평전’은 수년에 걸쳐 검토한 기록과 자료, 직접 확인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시인의 문학과 일생을 조명했다. 어린 시절 자신을 어머니처럼 돌봐주었던 열 살 위 누이의 갑작스러운 죽음, 존경하는 시인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먼길을 떠나 밤길을 헤맸던 일화 등 시인의 초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의 극적인 현대사와 문단 풍경 등 당대 역사와 문학의 면면까지 흥미롭게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