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담대한 구상' 성급…대통령 北에 퇴짜 맞게 해선 안돼"

by이유림 기자
2022.09.26 15:16:21

천영우 한반도 미래포럼 이사장
北, 핵실험 이후 대비해 러시아 침공 지지
한미일 협력 중요…한일 간 신뢰 회복해야
美와의 통상 분쟁, 동맹과는 별개로 봐야

[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대통령이 북한으로부터 퇴짜맞는 일이 많아지면 득 될 게 별로 없다. 우리가 남북 대화에 매달리는 인상을 주게 되면 북한은 또 오판한다.”

천영우 한반도 미래포럼 이사장 인터뷰(사진=방인권 기자)
천영우 한반도 미래포럼 이사장은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새로운 비핵화 로드맵 ‘담대한 구상’을 제안한 것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북한의 퇴짜는 예측 가능했다”며 “그런 제안은 굳이 할 필요가 없고, 하더라도 대통령 차원에서 할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담대한 구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맞물려 식량·인프라 구축 등 경제 협력뿐 아니라 정치·군사적 상응 조치까지 제공하는 계획을 담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여동생으로 대남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김여정 부부장은 담화에서 “어리석음의 극치”라며 “남조선 당국의 대북 정책을 평가하기에 앞서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고 거부했다.

천 이사장은 북한이 제7차 핵실험을 하더라도 중국, 러시아의 비협조로 유엔 대북 제재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지난 3월 유엔총회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문을 채택할 당시 북한이 ‘반대’했다는 점을 들어 “북한은 러시아라는 확실한 보험을 들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반응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제안한 ‘쌍중단’(북한 도발과 한미 연합훈련의 동시 중단) 원칙을 미국이 먼저 깼다”는 식으로 북한의 핵실험을 합리화할 것으로 봤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일 공조 강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지만, 한일 관계는 여전히 냉랭하고 한미 관계도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에 따른 영향을 받고 있다.

천 이사장은 한미 동맹과 한일 관계의 회복을 위한 윤석열 정부의 노력에 대해 우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IRA와 관련해선 “경제와 동맹은 별개로 봐야 한다”며 “IRA는 한미 FTA 규정 위반이기 때문에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고 국내 최고의 법률가를 동원해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무역대표부(USTR)를 국무부에서 분리한 이유도 “동맹이라고 봐주거나 정치적인 고려를 하지 말라는 의미”라며 “실제로 미국의 통상 분쟁은 유럽연합(EU), 일본 등 동맹국과 가장 많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 계기 한일 정상회담이 ‘약식’으로 열린 것에 대해서는 “일본 측과 충분한 사전 협의를 거쳐 발표해야 하는데 우리가 좀 성급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천 이사장은 “일본은 ‘징용공’(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한 해법이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러울 것”이라며 “어떤 조건에서 회담하느냐에 따라 기시다 정부의 운영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일 양국이 ‘신뢰’를 형성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영우 한반도 미래포럼 이사장 인터뷰(사진=방인권 기자)
아래는 일문일답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담대한 구상’에 대한 평가는.


△담대한 구상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돌아올 준비가 됐을 때, 초기 단계에서 내놓을 제안으로서는 필요하다. 그러나 북한이 전혀 회담에 나올 생각이 없는 상황에서는 굳이 필요했을까 의문이다. 북한의 퇴짜는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제안은 굳이 할 필요가 없고, 하더라도 대통령 차원에서 할 일은 아니었다.

대통령이 북한으로부터 퇴짜맞는 일이 많아지면 득 될 게 별로 없다. 우리가 남북 대화에 매달리고 있다는 인상을 주게 되고, 북한은 자신들의 레버리지를 강화하는 데 역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제7차 핵실험이 임박했다고 한다. 유엔 차원의 추가적인 대북제재가 가능할까.



△북한은 이미 추가적인 대북제재를 피하기 위해 사전 작업을 해놨다. 지난 3월 유엔총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는데, 5개 국가(러시아, 북한, 벨라루스, 시리아, 에리트레아)가 반대표를 던졌다. 이 중 벨라루스는 러시아와 한몸이나 다름없고, 시리아도 사실상 러시아가 지켜주고 있는 나라다. 에리트레아는 그런 나라가 있는지조차 잘 모른다.

북한은 강대국이 약소국의 영토와 주권을 침탈하는,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하는 걸 정당화시켜주는 리스크까지 감수하며 러시아 편에 섰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북한을 지켜주도록 확실한 ‘보험’을 들은 거다.

-북한이 핵실험 이후 중국의 반응은 어떨까.

△북한이 역내 불안을 조성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할 거다. 그러나 모든 책임은 자신들이 제안한 ‘쌍중단’ 원칙을 미국이 먼저 깼기 때문이고, 미국이 이러한 안보적 우려를 빨리 해소해야 한다고 훈계할 거다. 물론 유엔 안보리 제재에는 찬성하지 않을 거다.

-한미 간 확장억제 강화를 믿을 수 있을까. IRA만 보더라도 미국은 동맹국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 모습이다.

△통상 등 경제 문제와 동맹 문제는 별개다. 미국의 통상 분쟁은 EU, 일본 등 동맹국과 가장 많았다. 미국이 무역대표부(USTR)를 국무부에서 분리해 따로 둔 것은, 동맹이라고 봐주거나 정치적인 고려를 하지 말라는 의미다.

우리가 IRA를 사전에 손쓰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통상교섭본부가 외교부에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호주, 캐나다 등 대다수 중견국은 통상과 외교가 통합돼 있다. 여러 외교망을 통해 동향을 사전 파악하기 용이하다. 그런데 우리는 완전히 다른 부서로 분리되면서 우수한 통상교섭 전문가도 떠나고 있다.

IRA는 한미 FTA 및 WTO 규정에 반하기 때문에 우리도 제소할 건 하고, 국내 최고의 법률가를 동원해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대통령, 외교장관, 안보실장이 카운터파트를 만나고, 국회는 국회대로 미 의회 의원들을 만나야 한다.

-한일 정상회담 과정이 굴욕적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일 관계를 복원해 한미일 간 안보 협력을 강화한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큰 외교·안보 정책 목표로 돼 있다.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

여기서 가장 큰 고리가 한일 관계인데, 결국 징용공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일본은 이에 대한 해법이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러울 것이다. 일본이 어떤 조건에서 회담하느냐에 따라 기시다 정부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일 정상회담은 충분히 사전 협의를 거쳐서 발표해야 하는데, 우리가 좀 성급했다. 일본은 우리가 정상회담을 기정사실화해, 불발 시 모든 책임을 자신들에게 뒤집어씌우려 한다고 의심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양국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