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피해자였다” 5·18 버스 사망사고 낸 시민·유족 ‘화해’

by조민정 기자
2022.05.19 14:30:38

5·18 때 시민군 배씨 버스돌진해 경찰 4명 사망
현충원 묘역서 42년만 사죄 “유족에 죄송”
유가족 측 “상황 책임자들이 사과해야”

[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위대 버스를 운전하다가 경찰 4명을 치어 숨지게 한 사건 당사자가 42년 만에 유가족을 만나 사죄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고속버스로 노동청에 진입하던 중 경찰관이 사망한 사건 당사자 배씨가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피해자의 묘역을 만지며 사죄하고 있다.(사진=조민정 기자)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는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함평경찰서 순직 경찰 유가족과 사건 당사자 간 사과와 화해 시간’을 마련해 진행했다. 유가족은 잃은 가족의 묘역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고, 사건 당사자인 배씨는 피해자의 묘비를 차례로 찾아 말없이 어루만졌다.

5·18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 5월 20일 시위가 확산하자 지역경찰서엔 시민군의 노동청 진입을 저지하라는 임무가 하달됐다. 이날 오후 9시 30분쯤 노동청 진입을 시도하던 시민군인 배씨는 진압대형을 갖추고 서 있는 경찰관을 향해 고속버스를 몰고 돌진했다. 이 사고로 함평경찰서 경찰관 4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을 당했다.

배씨는 유가족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이라도 그때 현장을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데 도저히 나오질 않는다”며 “유족분들에게 미안함과 죄송함을 가장 먼저 전하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어 취재진에게 “사고 당시를 떠올리기가 힘든데 유가족은 얼마나 더 마음이 안 좋을까 한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배씨의 사과를 받고 화해를 청하며 민주화운동의 진정한 책임자들에게 사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유가족 대표는 “배씨는 국가 유공자이면서도 사고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동안 뵙길 바랐다. 이 자리는 사과의 자리뿐 아니라 화해의 자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에겐 책임자도 없었고, 가해자도 없었다”며 “민주화운동이라는 상황을 만든 책임자들이 분명한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사위는 지난해 5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개정에 따라 시위진압 작전에 참여한 계엄군과 경찰에 대한 피해 조사를 시작했다. 해당 사건을 조사하던 조사위는 피해자 유가족과 사건 당사자의 만남에 대한 의사를 확인하고 이번 만남의 시간을 마련했다.

안종철 조사위 부위원장은 “많이 늦었지만 늦게나마 이런 자리를 만들어 불행했던 과거를 되돌아보고 우리 미래세대엔 있어선 안된다는 각오로 자리를 마련했다”며 “앞으로 군경 피해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우와 절차가 마련될 걸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고속버스로 노동청에 진입하던 중 경찰관이 사망한 사건 당사자 배씨와 유가족들이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참배하고 있다.(사진=조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