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품 가격 잡힐까…가공용 원유 리터당 200원 내린다(종합)

by이명철 기자
2021.12.30 15:00:04

농식품부, 낙농발전위 통한 낙농산업 발전대책 마련
원유, 음용유·가공유 가격 차등, 생산량 205만t→222만t
“우유 생산 늘어 소득 늘 것”…생산자단체 등 반발 관건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앞으로 원유(原乳) 가격을 결정할 때 가공유는 구매량을 늘리는 대신 지금보다 ℓ당 200원 정도 싼 900원에 공급토록 할 예정이다. 음용유는 현재 가격 수준을 유지한다. 생산자 위주로 구성된 낙농진흥위원회의 의사 결정 구조도 개편한다. 정부는 원유 공급을 늘려 농가 소득을 보장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생산자단체가 여전히 반발하고 있어 당분간 진통이 예상된다.

“수급 원리 적용 안되는 원유 가격체계 바꿔야”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열린 낙농산업발전위원회(발전위)를 통한 의견 수렴을 거쳐 이 같은 내용의 낙농산업 발전대책을 추진한다고 30일 밝혔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우유와 유제품이 진열돼있다. (사진=연합뉴스)


발전위를 구성한 계기는 국내 원유 자급률은 소비 행태 변화로 2001년 77.3%에서 지난해 48.1%로 지속 하락하는데 현재 가격 결정 체계가 이와 반대로 가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서다. 최근 원유와 우유 가격이 올면서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친 점도 도화선이 됐다.

현재 원유 가격은 생산비 증감액(통계청 발표 기준) ±4% 이상이면 당해, ±4% 미만은 2년마다 반영해 결정하는 생산비 연동제를 적용하고 있다.

과거 우유가 부족할 때 생산을 늘리기 위해 도입했지만 공급측 가격 인상 요인만 반영해 수급 원리에 맞지 않다는 게 농식품부 판단이다. 지난해 국내 원유가격은 ℓ당 1083원으로 미국(491원), 유럽(470원)보다 높고 생산비의 1.4배로 미국(0.9배) 등 보다 높은 수준이다.

또 연간 222만t의 쿼터제를 통해 생산 안정성을 보장하지만 실제 유업체 구매량은 205~201만t에 그쳐 정부 지원이 불가피하다. 낙농가 판매 지원을 위해 정부가 보조한 금액은 작년 336억원으로 쿼터 보유 농가(4800호)당 약 700만원이다.

농식품부는 우선 현재 용도 구분을 하지 않고 쿼터 내에서 생산·납품하는 원유를 음용유와 가공유로 나눠 가격을 차등 적용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현재 원유 생산량은 205만t 수준으로 쿼터 내 물량(201만t)은 ℓ당 1100원, 커터 외는 ℓ당 100원을 농가가 수취하고 있다.

앞으로는 원유 222만t을 생산토록 하고 음용유는 ℓ당 1100원 수준으로 187만t 생산하고, 가공유는 ℓ당 900원으로 31만t 생산토록 할 예정이다. 쿼터 외 물량은 4만t으로 개편한다.

이를 통해 우유 생산량이 늘면서 자급률은 52~54%로 상향될 것으로 기대했다.

원유 가격을 결정하는 낙농진흥회의 의사결정 구조도 바꾼다. 낙농진흥회 이사회는 회장을 비롯해 생산농가 대표 7명, 유업체 대표 4명, 소비자 대표 1명, 학계 1명, 정부 1명 등 15명으로 구성됐다.



현재 정관에서는 이사 3분의 2 이상인 10명 이상이 참석해야 이사회를 열 수 있고 참석 이사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게 된다. 가격 결정 시 이견이 생겨 생산농가 대표 7며이 반대할 경우 이사회 개의도 어려운 셈이다.

농식품부는 이사회 개의 조건을 삭제하되 의결 조건은 참석 이사 과반수에서 재적 과반수로 강화하는 내용을 제시했다. 이사 구성안은 낙농업과 다소 중립적인 정부 2명, 학계 2명, 소비자대표 2명, 변호사 1명, 회계사 1명을 각각 추가해 23인으로 확대하는 안을 마련했다.

낙농진흥회 의사 구조 개편, 중립적 인사 확충

우유 생산 및 소비 변화. (이미지=농식품부)


이번 개편이 현재 생산비 연동제 자체를 바꾸는 것은 아니므로 향후 생산비가 올라갈 요인이 있으면 충분히 상승할 여지가 있다.

권재한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현재 연동제는 생산비 변동에만 연동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향후 소비 수요가 준다든지 국제 경쟁력상에서 어떤 고려사항이 있다든지 이런 부분도 동시 감안하기 때문에 오르는 요인과 내리는 요인이 낙농진흥회 이사회를 통해서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구조로 바뀐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농가 소득이 감소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농식품부는 가공유가 더 많은 물량을 생산·판매하는 만큼 오히려 농가 소득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사육 중인 젖소 40만1000마리에 필요한 법적 면적(430만㎡)대비 허가면적(1073만㎡)이 여유가 있어 생산 증가 여력도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생산자 중심 우유 판매 조직(MMB)에 대해선 현재 낙농진흥회가 있는 상황에서 시급히 결정해야 할 문제가 아니며 향후 중장기 발전방안에 포함해 검토키로 했다.

원유 생산량 및 농가 소득 변화 추이 전망. (이미지=농식품부)


농식품부는 앞으로 생산자단체·유업계와 현장 설명회, 간담회를 열고 생산비 절감을 위한 조사로 수입 쿼터 확대, 농가사료구매자금 확대, 시설현대화지원 확대, 분뇨처리 지원 확대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유업체 연구개발(R&D) 지원을 늘리고 내년 유제품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도 실시한다.

농식품부는 지금까지 발전위를 통해 의견 수렴을 진행한 만큼 내년 1월부터는 빠른 시일 내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도출되도록 할 방침이지만 생산자단체 등 낙농업계의 반발이 변수다.

권 실장은 “생산자단체와 소통 노력들을 계속하고 있고 생산자 중에서도 정부와 협의하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합의안이 도출되지 못할 상황을 가정하고 정부 입장을 설명하기는 좀 곤란하지만 합의를 이끌지 못할 경우 다양한 대안, 방안은 내부적으로 검토 중에는 있다”고 설명했다.

권 실장은 “낙농산업이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낙농산업 전반에 변화와 혁신이 불가피하다”며 “낙농가와 유업체 모두 20~30년 후 바람직한 낙농산업 생태계를 충분히 고민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