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일침…“주69시간 ‘70년대’ 아젠다, 경악스럽다”

by김미경 기자
2023.03.27 15:06:41

10년 만에 신간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출간
18가지 음식 매개로 경제 현안 고민
노동 결국 생산성 문제, 기술개발·연구 투자해야
尹정부 감세정책엔 논의 초점부터 틀렸어
"인구 감소 걱정하는 정부 맞나" 쓴소리도

장하준 영국 런던대 교수가 2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밥 먹고 살만한 사람은 안 해도 되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어요. 노동 시간 연장을 논한다는 것은 18~19세기 사고방식입니다.”

경제학자 장하준(60) 영국 런던대 교수가 윤석열 정부에서 거론한 ‘주69시간 근로제’ 개편안에 대해 쓴소리했다. 장 교수는 27일 10년 만에 펴낸 책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부키) 출간 간담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할 자유가 (현 정부의) 아젠다(의제·안건)에 나왔다는 게 경악스러웠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주 96시간 안건에 대해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사회과학·경제학 훈련을 안 받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근대적 자유의 개념이다.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정부의 아젠다가 맞냐”며 “시간이 있어야 애도 낳는다. 도대체 애는 누가 낳고, 누가 키우냐”고 일갈했다.

상황과 구조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길에서 강도를 만났다고 치자. 강도가 총을 들이대고 선택할 자유를 줄테니 지갑을 줄래, 총 맞을래 했다면 그게 진정한 자유의 선택일까”라고 되물으면서 “그런 일을 없게 하려고 독극물을 규제하고, 노동시간도 규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노동시간의 문제는 결국 생산성의 문제라는 게 장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더운 나라 사람들이 자연(자원)이 풍부해 게으르다는 건 낭설”이라며 “사실 가난한 사람들이 일을 훨씬 많이 한다. 결국 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선 “기술 개발하고, 교육 연구에 투자해야 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와 문화도 만들어줘야 한다”며 “결국 그런 것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의 대규모 감세정책과 관련해선 논의의 초점부터 잘못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파라과이와 독일의 법인세를 예로 들었다. 그는 “파라과이는 법인세 10% 내면 되지만, 서비스나 치안 등이 좋지 않다. 독일의 경우 30%의 법인세를 내지만 기업들은 독일에서 사업을 하려 한다”면서 “더 중요한 것은 가성비다. 세율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광범위한 논의가 돼야 한다”고 했다. 세금을 더 내더라도 도리어 기업들 입장에서 가려웠던 부분을 개선해준다면 더 낼 수도 있는 게 세금이라면서 “세금이 무조건 낮거나 높은 게 좋은 게 아니다”는 얘기다.

윤석열 정부에 제안할 만한 경제학 이론을 물었더니, “정공법을 따르라”는 조언이 나왔다. 그는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라면 생산성 향상이 제일 중요하다”며 “딴생각하지 마시고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 어떻게 하면 기술개발하고, 창의적 사회를 만들 것인가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1970년대 사회는 다시 오지도 않고, 와서도 안 됩니다. 출산율(0.78%)은 우리나라가 꼴찌예요. 단순히 나온 숫자가 아니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복지제도를 통해 애 낳고 키우는 것을 도와줘야 합니다. 기업들이 성차별을 안하고 똑같이 대우해 줘야 하고요. 교육 역시 경쟁 안 해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합니다. 삶의 질과 생산성 향상은 같이 가야 합니다.”

한편 장 교수는 10년 만에 신작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부키)를 펴냈다.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우리에게 친숙한 18가지 음식 재료를 매개로 가난과 부, 성장과 몰락, 자유와 보호, 공정과 불평등, 복지 확대와 축소 등 우리에게 밀접한 경제 현안들을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다.

장 교수는 “대중을 위한 경제서를 쓰고 글도 기고하면서 점점 느낀 것이 경제 문맹 퇴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게 경제라는 렌즈를 통해 파악된다. 모든 것이 경제 논리로 결정되는 만큼 모든 시민이 어느 정도 경제를 이해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다. 음식 얘기로 시작해 묘하게 틀어 경제학 얘기로 가는 식으로 미끼를 던지는 식으로 썼다”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