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피의자 조사시 지적장애인 방어권 보장 안한 건 위법"

by박기주 기자
2020.08.10 12:00:00

"장애인인 사실 충분히 알 수 있었는데도 적절한 조치 취하지 않아"
해양경찰청장에 관련 대책 수립 권고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수사기관이 지적장애인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하면서 적절한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은 것은 적법하지 않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사진=인권위)


인권위는 10일 지적장애인에 대한 피의자 조사 시 신뢰관계인 동석에 관한 권리를 고지하지 않아 당사자가 형사사법절차상 방어권을 충분히 행사하지 못하도록 한 해양경찰의 행위가 형사소송법 및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해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 등을 침해한 행위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해양경찰청장에게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조기에 식별해 적절한 방어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관련 대책을 수립할 것을 권고했다.



피해 당사자의 부친은 탈북민인 자녀가 북한이탈 과정에서 받은 충격으로 정신질환 및 지적 장애가 발생해 성년후견인까지 지정돼 있는 상태였는데, 경찰이 자녀를 마약투약 혐의 등으로 체포해 피의자 신문을 하면서 신뢰관계인도 동석시키지 않아 혐의에 대해 충분히 항변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지 못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의 조사 결과 피해자가 정신질환 등으로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했다는 것과 법원의 판결에 다라 성년후견인이 지정돼 있다는 사실, 입원병원에서 실시한 검사에서 지능지수와 사회성숙연령이 낮게 측정된 사실 등을 확인했다. 이와 함께 형사소송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형사 피의자에게 의사소통 등 장애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장애가 확인되면 신뢰관계인 동석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필요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사실도 확인했다.

이에 대해 수사를 담당한 해양경찰관은 수사 당시 피해자가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해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피해자와 대화를 하면 의사소통능력에 한계가 느껴진다는 주변인들의 진술이 있고, 특히 피의자 신문조사를 보면 피해자가 조서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는지 의심스러워 재차 설명했다고 기재한 사실 등을 볼 때 충분히 정신적 장애를 인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인권위 침해구제제1위원회는 “이번 진정사건이 수사단계 초기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식별방안이 미비한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고, 이를 조기에 식별할 수 있도록 관련 대책을 수립해 유사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