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현장이야…'정인이 사건' 전문가 키워야하는 이유

by이소현 기자
2021.01.11 11:04:48

[정인이 사건, 본질은 아동학대]③
"정인이 사건, 법 없어서 막지 못한 것 아냐"
법 바꾼 뒤 '책임' 부과하는 사후조치 넘어
"아동학대 전문 인력 양성…인권 감수성 키워야"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법이 없어서 정인이를 지키지 못했을까…’

생후 16개월 만에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정인(입양 전 이름)이 사건에서 드러난 대응 절차를 개선하는 내용을 담은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이 통과된 가운데 앞으로 정인이와 같은 비극을 막으려면 무엇보다 ‘현장이 잘 돌아가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법과 정책만 바꾼 뒤 ‘일 터지면 책임지라’는 식의 사후조치를 넘어 편견과 틀에서 벗어나 사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전문 인력 양성으로 아동학대를 예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러스트=이미지투데이)
일사천리 ‘정인이 법’ 통과…아동학대 전수조사

국회는 지난 8일 본회의를 열고 아동학대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안과 아동학대 재발 방지를 위한 민법 개정안 등 일명 ‘정인이법’을 처리했다.

9개 법안을 병합심사한 아동학대범죄처벌법 개정안은 아동학대 신고 즉시 수사 및 조사 착수를 의무화했다. 경찰이나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현장조사를 위해 출입할 수 있는 장소를 확대했으며, 아동학대 제지 등 응급조치 시 가해자의 주거지나 자동차에 출입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또 학대행위자와 피해아동의 ‘분리조사’를 원칙으로 하고, 관계기관의 업무수행을 방해하는 경우 처벌 수위를 현행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에서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벌금’으로 올렸다.

7개 법안을 병합심사한 민법 일부개정안은 친권자가 아동의 보호나 교양을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 조항을 삭제해 부모의 자녀 체벌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7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갖다 놓은 사진과 꽃 등이 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동학대 하루 평균 44건…“전담 인력 육성”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지만, 실제 이러한 법이 잘 작동되기 위해서는 현장 인력이 뒷받침 돼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이번 법안 개정으로 아동학대 신고는 전수 수사 및 조사가 이뤄져야 하지만, 이를 직접 담당하는 학대예방경찰관(APO)의 숫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형편이다. APO는 아동 등을 대상으로 한 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2016년 4월 출범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의 APO는 669명으로, 256개 경찰서에 평균 2∼3명이 배치돼 있다.



APO 인력과 비교하면 담당 업무는 과중한 편이다.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연간 1만830건(2016년 기준)이었던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1만4894건(2020년 11월 기준)으로 5년 사이에 38% 급증했다. 이는 하루 평균 44.6건의 아동학대 신고가 쏟아지는 셈이다. APO는 아동학대뿐만 아니라 노인과 장애인 학대, 가정폭력 사건까지 함께 맡고 있어 실제 담당해야 할 사건은 곱절 이상이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APO가) 1~2명에 불과해서 혼자 너무 많은 일을 하게 된다”며 “교육이나 전문적인 프로그램이 없어서 전문가로 육성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APO의 담당 업무가 늘어난 만큼 경찰 내 조직문화 개선도 요구된다. 경찰 내 APO는 기피 직무로 꼽혀 주로 막내급인 순경과 경장이 맡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반 폭행 사건과 달리 아동학대 사건은 피해 아동이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폭행이 발생한 직후 신고가 이뤄지는 경우가 적어 증거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안에 따라 부모 측이 경찰 상대로 민·형사소송을 진행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업무 부담과 책임에 따른 권한과 동기부여도 동시에 이뤄져야 하기에 경찰은 APO의 전문성을 키워 현장을 독려하기로 했다. 경찰청이 지난 7일 국회 현안보고를 통해 내놓은 APO 제도 내실화 대책에 따르면 ‘전문 APO’ 제도를 도입한다. APO에 대한 특별승진·승급 등 인센티브를 확대해 장기근무를 유도하고 전문직위 등을 확대하기로 했다. 업무량 증가를 고려해 인력·예산도 확충한다는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조직 내에서 여론과 민원이 많을수록 기피부서로 전락한다”면서도 “최근 집중된 관심에 현장에서는 부담될 수 있지만, 아동학대 범죄를 좀 더 신중하게 볼 수 있는 각성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APO 업무에 대한 애로점 인식과 함께 아동학대 전담 인력을 양성해야한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경찰이 아동학대 특별수사대를 광역청단위로 신설해 아동학대사건 전문성을 집중 강화하고 미취학아동 사건과 2회 이상 신고사건 등 취급사건의 범위를 정해서 책임 있게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10곳 미혼모·한 부모·아동인권단체가 7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보건복지부에 직무유기한 홀트아동복지회 특별감사 실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이소현 기자)
“아동학대 횟수 확대만으로 해결되지 않아”

국회가 ‘정인이 법’을 발동한 데 이어 정부는 입양기관에 관한 매뉴얼을 강화했다. 입양기관이 입양신고 후 1년 이내 입양가정을 방문해야 하는 횟수를 현 2회에서 6회로 늘리고, 아동학대 발견 시 보건복지부 아동권리보장원 보고를 의무화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입양실무 매뉴얼’을 개정하고 관련 교육 강화에 나섰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아동학대는 숫자로 풀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2016년 양부모에게 학대받아 뇌사 판정을 받은 뒤 숨진 달래(입양 전 이름) 사건은 1차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있었지만, 이를 놓쳤다. 정인도 양부모에게 학대당하는 와중에 세 차례나 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됐지만, 이를 예방하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렀다. 사건의 본질에 대한 고민 없이 신고 횟수에 따라 아동학대 사건을 처리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얘기다.

최형숙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 협회’ 인트리 대표는 “횟수를 늘리는 것으로 아동학대를 막을 수 있을까 의문”이라며 “(아동학대) 징후가 있을 때 이를 담당하는 곳에서 인권 감수성 없이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고, 어떤 개입도 이뤄지지 않은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앞서 정인이의 입양을 담당한 홀트아동복지회는 지난해 두 차례 입장문 발표에 이어 지난 6일 사건 발생 3개월 만에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제목의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내용은 책임을 회피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인트리 등 시민단체 10곳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인이 입양 절차를 진행한 홀트아동복지회에 대한 특별감사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