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빅3, 비인기 세단 접고 돈 되는 SUV·픽업 올인

by남현수 기자
2018.06.29 14:10:35

[이데일리 오토in] 카가이 남현수 기자=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세단이 저물고 SUV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이런 현상은 미국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두드러져 대· 중·소형 가릴 것 없이 새로운 SUV들이 줄지어 출시되고 있다. 지난 1분기 중 미국 시장에서 픽업(트럭, SUV, 미니밴)의 점유율은 58%를 차지했다.

미국 자동차시장은 전통적으로 미드사이즈 세단과 픽업 트럭이 양분해왔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미드사이즈 세단의 판매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도요타 캠리, 혼다 어코드, 포드 퓨전, 쉐보레 말리부 등 미국 미드사이즈 세단의 대표 모델들도 SUV의 인기에 밀려 힘을 못쓰고 있다.

[포드 익스페디션]

포드의 경우 대형 SUV 익스페디션과 링컨 내비게이터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다. 포드는 높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켄터키 공장에 9억2500만 달러(한화 1조 276억원)를 투자해 SUV 생산량을 25% 늘릴 계획을 발표했다. 한 술 더 떠 지난 5월에는 세단 포커스의 생산을 중단했다. 또한 2019년 3월 토러스, 2019년 피에스타 생산을 중단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기존 포커스를 생산하던 미시간 공장의 생산 라인은 미드사이즈 픽업트럭 레인저와 SUV 브롱코를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포커스의 미국 시장 판매량은 15만 8000여대로 2016년 대비 줄긴 했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포드가 과감한 결정을 내린 이유는 다름아닌 ‘대당 수익’ 때문이다. 픽업트럭이나 SUV를 판매했을 때 수익률이 포커스와 같은 콤팩트 모델을 판매할 때보다 높다는 것이다. 짐 해켓(Jim Hackett)포드 CEO는 “세단 라인업을 정리 하는 것은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힌 바 있다. 이제 미국에서 판매되는 포커스는 미국산이 아닌 중국산이다.

피아트크라이슬러(FCA)그룹도 닷지 다트와 크라이슬러 200의 생산을 중단했다.

GM 또한 세단 라인업을 정리하고 있다. 크루즈를 생산하던 한국의 군산공장을 지난 2월 폐쇄한 데 이어 크루즈를 생산하던 미국 오하이오 공장도 폐쇄했다. 또한 미국 디트로이트 공장에서 생산하던 쉐보레 소닉의 생산도 이르면 올해 안에 중단 할 예정이다. 이어 2년 안에 대형세단인 임팔라의 생산도 중단할 방침이다. GM의 CFO 척 스티븐스(Chuck Stevens)는 지난 1분기에 포드의 세단 라인업 정리와 관련해 “ 우리도 앞으로 비슷한 길을 걸을 것”이라고 밝혔다.

[쉐보레 블레이저]



전문가들은 특히 젊은 층이 소형SUV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포드의 세단을 비롯한 현대 아반떼, 토요타 코롤라, 혼다 시빅 등 준중형 세단 시장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포드의 세일즈 분석가인 에리히 머클(Erich Merkle)은 “에코스포츠와 같은 소형 SUV 차종이 등장하며 선택의 폭이 다양해진 것이 주된 이유”라며 “SUV가 미국의 20대에게 인기를 끌면서 모든 세대에게 사랑받는 세그먼트로 자리잡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변화는 미국 프리미엄 브랜드 시장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BMW와 메르세데스 벤츠는 다양한 SUV 라인업을 무기로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SUV인 GLC의 지난해 판매가 2016년보다 소폭 증가했고 BMW X3의 판매는 21%나 급증했다. BMW, 메르세데스-벤츠, 폴크스바겐 등 독일 자동차 제조사들은 미국 현지의 SUV 생산 능력을 높이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올 3월 열린 2018 뉴욕 국제 모터쇼에서는 많은 제조사들이 새로운 SUV를 쏟아냈다. 현대 싼타페, 캐딜락 XT4, 폴크스바겐 아틀라스와 토요타의 주력 모델인 RAV4가 공개됐다. 고성능 스포츠카를 생산하는 마세라티도 V8엔진을 탑재한 르반떼 트로페오를 공개하며 SUV 열풍에 동참했다.뉴욕모터쇼에서 캐딜락 측은 “SUV에 대한 시장의 수요는 여전히 강하다”며 “모든 제조사들이 새로운 SUV개발과 생산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캐딜락 XT4]

자동차 산업 시장조사기관인 LMC오토모티브는 2023년까지 미국에서 판매되는 SUV와 CUV의 종류가 각각 90개 씩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SUV 65종, CUV 53종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또한 LMC오토모티브는 “연료 소비가 많은 SUV 및 픽업트럭의 수요는 향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오는 2022년 미국서 팔리는 자동차의 50% 이상이 SUV일 것”라고 전망했다.

SUV시장 성장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이 대부분이지만 오히려 이런 폭발적인 성장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은 SUV와 픽업 수요의 증가로 올 여름 미국 휘발유 가격이 1갤런(3.78L)당 2.74달러(약 3000원)를 기록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 자동차 연구단체인 CAR(Center for Automotive Research)도 “최근 생산되는 자동차들은 안전과 편의를 위한 옵션들이 다양해 지면서 무게가 늘어나고 있다”며 “자동차가 무거워지면서 연료 소모가 늘고 이는 유류비 증가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LMC오토모티브는 오는 2025년까지 SUV와 CUV 신모델의 출시가 둔화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면서 “최근 판매됐던 SUV차량들이 중고차 시장으로 유입되면 신차 판매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드먼즈닷컴(Edmunds.com)의 2017년 자동차 충성도 조사에 따르면 SUV를 타던 소비자가 다시 SUV를 구매하는 비율이 75%를 넘어섰다. 이는 미국에서 인기 절정인 픽업의 재구매율(74%)를 뛰어넘는 것으로 SUV의 높은 인기를 보여준다.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SUV의 판매량은 쉽게 꺾일 것 같지 않다. 소형부터 초대형SUV까지 선택의 폭이 늘어난데다 실용성과 성능 개선으로 세단 못지 않은 편안함을 갖춘 SUV들의 상승세는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한국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