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블프에 마음 뺏긴 소비자 지키려면

by이성재 기자
2015.11.25 10:57:33

[이데일리 이성재 생활산업부장] 아직 홈쇼핑으로 물건을 구매해 본 적이 없다. 올해 초 오픈마켓을 통해 캠핑용품을 사본 게 고작이다. 해외 직구는 엄두도 못 냈다. 그런 필자가 해외 직구를 시도해 보겠다고 결심했다. 국내서 판매하는 가격의 반값에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매력에 끌려서다.

미국 최대 세일행사인 ‘블랙프라이데이’(블프)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한 해 동안 오매불망 블프를 기다려온 세계 직구족의 시선은 온통 미국에 쏠리고 있다. 이미 지난 11일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불리는 ‘광군제’(光棍節)를 경험한 직구족은 미국 블프의 파워를 익히 알고 있다. 평소에 눈독 들인 명품을 절반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것으로도 이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얼마 전 국내 해외배송대행업체 몰테일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해 10월까지 몰테일에서 배송을 대행한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유통업계도 올해 해외 직구 총액을 지난해보다 20~30% 커진 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블프의 흥행을 쉽게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의 전국소매협회(NRF)도 올해 블프기간 매출을 6305억달러(약 730조원)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해 6080억달러보다 200억달러 이상 증가한 액수다. 미국 현지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있는 긍정적인 요인이 작용하면서 블프기간 할인폭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대심리만이 아니다. 실제로 공개한 블프의 할인가격은 국내 판매가를 반으로 뚝 자른 수준이다. ‘삼성 커브드 스마트 4K UHDTV 55인치’의 경우 국내서 구입할 때는 200만원을 넘기지만 월마트에서는 115만원 정도면 살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정부가 해외 직구 장려 차원에서 목록통관의 대상을 늘리고 통관절차를 간소화한 것도 블프 직구의 열기를 더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달러(배송비 포함) 이하로 관세를 면제받는 품목이 대폭 늘어나고, 100달러 이하 구매 건에 대해선 최대 3일에서 ‘반나절’로 통관시일이 짧아진다. 다만 현재 환율(1160원)이 지난해 같은 기간(1100원)보다 60원 가량 올랐다는 점이 약점이지만 직구족의 소비욕구를 누를 만한 요인은 되지 못한다.

지난 광군제 기간에 중국 최대 인터넷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하루매출은 16조 5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전자상거래를 통한 쇼핑이 중국 만리장성을 넘어 세계인의 주요 소비도구가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품으로 보든 거래건수로 보든 매출로 보든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블프는 가히 국경 없는 소비행사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어떠한가. 지난달 정부 주도로 처음 펼친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는 생색내기에 불과했다. 소비자는 물론 들러리처럼 참가한 유통업체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국내 소비진작을 내세워 최근 다시 내놓은 ‘K-세일데이’ 또한 차별성과 경쟁력이라곤 찾아보기가 어려운 이벤트로 끝날 공산이 크다. 색깔로 치자면 무채색이다. 미국 블프와 중국 광군제 사이에 끼여 애매한 콘셉트로 이들의 흉내내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처음부터 국내 세일행사는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포장을 해도 소비자가 그 속을 가장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는 것이다. 속이 텅빈 시장을 둘러본 소비자가 어디로 향하겠는가. 진짜 세일행사로 옮겨가지 않겠는가. 국내 소비자를 미국과 중국에 다 내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다.

지금은 우리만의 색깔이 필요한 때다. 유통업체만 움직이는 반쪽짜리 행사가 아닌 제조업체까지 나서 나머지 반을 채우는 큰 그림부터 다시 그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