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칠레에서 온 60대 가장, 2대1 생체간이식으로 새 삶

by이순용 기자
2019.10.07 13:00:33

두 사람의 간 일부를 각각 기증받아 이식하는 고난도 수술법
알베르토 씨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 찾아 두 딸로부터 간 기증받고 건강 회복
칠레 현지 의사, “간이식 경험과 생존율 모두 미국보다 앞서” 한국행 추천

[이데일리 이순용 기자]“무치시마스 그라시아스!”(정말 감사합니다) 칠레에서 한국을 찾아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은 알베르토(ALBERTO·남·62) 씨는 귀국을 앞두고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 의료진에게 연신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말기 간경화와 진행성 간암, 간 문맥과 담도 폐색으로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었던 알베르토 씨는 자국과 미국에서도 수술이 어렵다는 설명과 함께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요양병원으로 안내를 받았지만, 에콰도르 출신의 간이식외과 의사의 추천으로 우여곡절 끝에 한국행을 선택할 수 있었다. 작년 9월에 발견된 간경화와 간암은 심하게 진행된 상태로 간 문맥이 혈전으로 완전 폐쇄되었고, 간암이 담도까지 침범하면서 담도 폐색에 의한 황달과 복수도 심했다.

기증자들의 간 크기 부족으로 1대1 생체간이식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했고, 뇌사자 간이식도 칠레 국내의 간이식 수준으로는 진행이 어려웠다. 마지막 희망을 안고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다시 건강을 찾아 가족들 얼굴을 볼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없었던 알베르토 씨는 첫째 딸과 막내딸의 간 일부를 각각 이식받는 2대1 생체간이식으로 건강을 되찾았고 오는 10일 칠레로 돌아갈 예정이다.

19년 전 말기 간질환 환자를 살리기 위한 대한민국 외과 의사의 집념으로 세계 최초 2대1 생체간이식 수술법이 개발되었고, 이 수술법으로 지구 반대편 남미의 칠레에서 한국을 찾은 60대 가장이 새 삶을 선물 받았다.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은 최근 칠레에서 토목 기사로 생계를 꾸려가던 알베르토 씨에게 두 딸의 간 일부를 각각 기증받아 이식하는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알베르토 씨는 2018년 9월 극심한 피로와 황달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말기 간경화와 간암을 진단 받았다. 혈전에 의한 간 문맥 완전 폐쇄와 이미 담도에도 간암이 침범한 상태로 결국 요양병원에서 삶을 정리 하도록 안내 받았지만, 칠레 현지의 에콰도르 출신 간이식외과 전문의의 제안으로 우여곡절 끝에 한국행을 선택할 수 있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2차례 간이식 연수를 받았던 에콰도르 출신의 간이식외과 의사 라울 오레아스(RAUL OLEAS·50)는 알베르토 씨의 가족에게 6,000여 건이 넘는 간이식 수술 경험과 간암 말기의 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97%의 성공률을 기록하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의 의료 기술에 대한 믿음을 갖고 한국에서의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을 추천했다.

지난 3월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은 간이식외과 전문의 라울 오레아스로부터 다급한 내용의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이승규 교수님! 여기 칠레에 말기 간경화와 진행성 간암으로 당장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있습니다. 간 문맥이 폐쇄되고 암이 담도 전체에 침범해 황달과 복수가 심각한 상태입니다. 한국에서 수술이 가능한지 확인 바랍니다.” 한 명의 살아있는 사람으로부터 간 일부를 이식 받는 1대1 생체간이식으로는 키 182cm에 몸무게 92㎏ 체격의 환자에게 기증할 수 있는 간의 크기가 작아 간이식 수술이 불가능했고, 뇌사자 간이식도 간암의 광범위한 담도 침범과 문맥폐색에 의한 기술적인 문제로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환자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알베르토 씨가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2명의 살아있는 사람으로부터 각각 간 일부를 제공 받아 시행하는 2대1 생체간이식 수술뿐이었다. 문제는 두 명의 간 기증자가 확보되었다 하더라도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을 집도 할 수 있는 병원이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을 500례 이상 기록하고 있는 서울아산병원이 유일했다.

현재 세계에서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이 가능한 센터는 몇 곳 없으며, 전 세계에서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의 95% 이상이 서울아산병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은 지난 2000년 3월 간경화 말기로 1년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50대 가장이 서울아산병원에서 처음 수술을 받고 새 삶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한 사람의 간 기증으로 충분치 않거나, 남은 간의 용적으로 기증자의 생명에 조금이라도 위험이 따를 수 있는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수술로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교수가 고심 끝에 세계 최초로 고안한 방법이다.



미리 연락을 받은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은 3월 중순 알베르토 씨의 진료기록과 영상자료를 면밀히 검토했고,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알베르토 씨와 그의 가족들은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의 성적을 확인 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한국행을 결심했고, 올해 3월 25일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한국에 도착 후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로 입원 당시 알베르토 씨는 간부전에 의한 황달 수치가 심하게 높았고, 대량의 복수와 혈액응고 기능 장애, 간성혼수 증상까지 보여 알베르토 씨의 아내와 3명의 딸 모두가 서둘러 간 기증자 적합 검사를 진행했다.

혈액형이나 조직적합성 여부가 가장 잘 맞는 사람은 첫째 딸(바바라 크리스티나· 34)과 막내딸(아니타 이시도라· 23)로 확인됐다. 지난 4월 8일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은 두 딸의 간을 기증받아 알베르토 씨의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첫째 딸의 간 좌엽 기증 수술은 최소 절개 기법을 이용해 복부에 10cm 미만의 작은 절개부위만 내어 간 일부를 절제했고, 막내딸의 간 우엽 기증 수술은 복강경을 이용한 수술로 흉터와 합병증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하여 성공적으로 절제했다. 암이 침범한 담도와 폐쇄된 간 문맥 전체를 제거하고 두 딸의 간을 연결하는 수술은 쉽지 않았다. 장시간의 대수술 후 회복 상태를 지켜보며 오랜 기간 중환자실에 머물러야 했고, 두 딸로부터 이식 받은 알베르토 씨의 간 기능이 예상만큼 빨리 회복되지 않았다.

수술 당시 수혜자의 체격에 비해 두 딸의 간 용적이 작아 이식 후에도 간이 제 기능을 못 할 수도 있어, 두 딸의 간 좌엽과 우엽을 각각 이식하기로 결정하는 등 수술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서울아산병원 의료진들의 적절한 치료 덕분에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었고, 7월부터는 일반병실로 옮겨 회복을 이어갔다.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은 수술 후 장기간 고단한 회복 과정을 버티고 있는 알베르토 씨와 낮선 타지에서 가장의 회복을 위해 애쓰고 있는 그의 가족들에게 평소에 편히 쉴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와 외출 시 편의를 위한 차량도 지원하면서 작은 배려도 잊지 않았다.

귀국을 앞둔 알베르토 씨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간 일부를 기증한 두 딸과 오랜 기간 간병으로 고생한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며 또한 “서울아산병원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 준 곳이다. 평범한 행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간이식팀 모든 의료진들과 간호사들은 평생 나와 가족들에게 감사와 감동으로 기억될 것이다”며 연신 고마움을 전했다.

알베르토 씨의 막내딸 아니타 이시도라 씨는 “웹사이트에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의 뛰어난 성적을 보고 믿을 수 없었으며,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의 최초 개발과 전 세계 전문가들이 찾아와 연수 받는다는 사실을 듣고 아버지를 살릴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기훈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교수는 “환자를 처음 의뢰받았을 때엔 말기 간경화와 진행성 간암, 문맥폐색, 담도폐색뿐만 아니라 간경화로 인해 복수가 많이 차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생체간이식 경험으로 판단했을 때 좋은 결과를 확신했고, 마취통증의학과, 중환자간호팀, 병동 간호팀, 감염내과팀 등 의료진 모두가 환자의 치료를 위해 함께 노력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교수는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지구 반대편 남미 칠레에서 가까운 미국을 가지 않고 한국을 찾아온 것은 우리나라 간이식 수준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간이식 기술이 전 세계 간이식계의 발전을 선도하고, 전 세계 말기 간질환 환자가 믿고 찾을 수 있는 4차 의료기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미 칠레에서 한국을 방문해 두 딸로부터 기증받은 간으로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은 알베르토 씨의 병실에 가족들과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 의료진이 모여 퇴원을 축하해주고 있다. 왼쪽부터 첫 번째가 알베르토 씨의 아내, 세 번째가 이승규 석좌교수, 여섯 번째가 환자의 누나, 여덟 번째가 환자의 막내딸 아니타 이시도라(기증자 ·23), 아홉 번째가 송기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