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자료 유출 감추려 불법 압수수색…法 "국가가 배상"[사사건건]

by한광범 기자
2023.05.08 13:26:12

유명 사립대 총학생회장 출신…금융권 진입 후 사기꾼 전락
홈캐스트 주가조작 수사조력…뒤에선 수사정보로 돈 뜯어내
檢, 수사정보 유출 은폐하려 불법 압수수색…6년만에 취소
"압수물품 사라졌다"며 소송…法 "국가,일부 변제 책임"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조모(42)씨는 2010년대 초반 한 컨설팅업체를 시작으로 금융권에서 활동하며 유가증권위조와 사기 등의 다수 전과가 있었다. 첫 번째 범죄로 구속된 후 2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난 그는 2013년 8월 사기죄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서울남부구치소에서 복역했다.

조씨는 구치소에서 차용금 사기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A씨를 만나 친분을 쌓았다. A씨는 광고대행사를 운영하며 최모 변호사로부터 돈을 빌린 후 갚지 않아 사기죄 유죄 판결을 받은 상태였다. A씨는 피소가 된 후 최 변호사의 운전기사를 통해 최 변호사 사무실의 내부 회계자료를 확보해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금융 및 법률 관련 지식이 있던 조씨는 이 회계자료를 이용해 A씨와 함께 2심 대응전략을 논의해 줬다.

서울남부지검. (사진=연합뉴스)
조씨와 A씨는 2015년 2월 당시 서울서부지검에서 근무하던 검찰수사관 B씨에게 최 변호사의 140억원대 자금 세탁과 관련한 횡령 및 탈세 사건을 제보했다. 이들은 회계자료가 담긴 USB를 B씨에게 제보한 후, 같은 해 6월엔 탈세 수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진정에도 불구하고 최 변호사가 결국 횡령 혐의로만 기소되자 조씨와 A씨는 2015년 12월 최 변호사 회계자료 분석을 통해 횡령 자금 중 일부가 홈캐스트 주가조작에 사용된 정황을 서울남부지검에 제보했다. 2014년 4~5월 발생한 홈캐스트 주가조작 사건은 검찰이 같은 해 6~10월 내사를 진행해 관련 자금흐름까지 추적했으나 범행 전모를 확인하지 못해 그 이후 수사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였다.

당시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 소속 최모 검사와 박모 수사관은 제보 내용을 검토한 후 중단돼 있던 홈캐스트 주가조작 사건을 우선적으로 수사하기로 결정하고 2016년 5월부터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로서는 홈캐스트 주가조작 사건의 유죄 입증을 위해선 구체적인 시세조종 수법에 대한 주가조작 가담자의 진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주가조작 공범으로 지목되던 홈캐스트 실소유주 장모씨는 2015년 5월 별도 사기죄로 징역 3년을 받고 서울구치소에 복역 중인 상황이었다. 조씨 등은 최 검사와 박 수사관에게 “A씨가 개인적 친분이 있는 장씨를 설득하겠다”고 제안했고, 최 검사 등은 이를 받아들여 2016년 5월 장씨를 조씨 등이 수감돼 있던 서울남부구치소로 이감했다.

구치소서 “제보하면 20억인데…포기하고 돕겠다” 접근

조씨는 이감된 장씨에게 접근해 ‘형’이라고 칭하며 “내가 금융감독원에 형을 제보하면 포상금 20억원을 받지만 이 돈을 포기하고 형을 도와주겠다”며 “담당인 최 검사가 대학 동문 선배다. 수사관이 수사하는 것도 적극 도와주겠다. 친분이 있으니 선처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5월 말에는 “부정거래로 얻은 이익은 몰수·추징 대상이 되는 만큼, 내 지인을 통해 임시로 보관해 주겠다”고 제안한 후, 같은 해 7월까지 총 31억원 상당의 주식·현금을 받았다. 조씨는 얼마 후 장씨로부터 임치계약서를 보여달라는 요구를 받자 허위의 계약서를 작성해 보여줬다.

조씨와 A씨는 이후 실제 검찰수사의 조력자가 됐다. 최 검사와 박 수사관은 두 사람에게 장씨의 자백을 이끌어내라는 과제를 부여한 후, 수시로 두 사람을 참고인으로 소환해 주가조작 범행방법과 관련자 공모관계를 파악해 수사자료를 정리하고 분석하도록 했다. 조씨가 자비로 수사조력을 위해 검사실에 컴퓨터를 설치하기도 했다.

박 수사관은 여기서 더 나아가 조씨 등의 제보자 진술조서 작성 과정에서, 작성 중인 조서 출력물을 건네줘 구치소에서 자료를 정리해 오라고 지시까지 했다. 그는 장씨가 보다 쉽게 자백을 할 수 있게 한다는 이유로 조씨의 진술조서 등 수사자료를 건넸다. 구치소 안에서 조씨 등이 검찰로부터 받은 수사자료를 본 장씨는 조씨 말을 더욱 믿게 됐다.

조씨는 2016년 7월 말 만기출소한 이후에도 수사 조력자 역할을 계속했다. 평소 조씨와 친분이 있던 서울서부지검 수사관 B씨는 자기 수사와 무관한 인물들임에도 조씨 부탁을 받고 조씨, A씨, 장씨를 서울서부지검으로 40회 넘게 불러 셋이 만날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B씨는 여기서 더 나아가 조씨가 수사관 박씨로부터 받은 조씨에 대한 진술조서 파일을 장씨 가족에게 교부하기도 했다. 조씨는 더욱 대담해져 갔다. 그는 수사관 박씨에게 “자료가 부족해 장씨 차명주식 등에 대한 정리가 지체되고 있다”고 말한 후, 추가적인 수사 자료 파일 수백개를 제공받았다.



검찰 압수수색 모습. 기사와 무관. (사진=방인권 기자)
수사자료로 수십억 뜯어내…검사실에 컴퓨터까지 설치

다수의 수사자료를 확보하게 된 조씨는 얼마 후인 8월 중순 장씨 가족을 만나 “장씨가 선처받을 수 있도록 내가 돕고, 그 대가로 장씨가 보상을 해주기로 정리를 다 하고 나왔다”며 대가를 요구했다. 결국 장씨 가족은 장씨가 선처를 받을 경우 23억원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그 이후 진행된 장씨에 대한 첫 피의자신문 조사실엔 조력자인 조씨와 A씨가 동석했다. 수사관 박씨는 조씨의 요청에 작성 중이던 장씨에 대한 피의자신문 조서를 출력해주기도 했다. 그 이후 두 번째 피의자신문조서 역시 조씨에게 건네졌다.

조씨의 이 같은 이중플레이는 얼마 후 꼬리가 잡혔다. 홈캐스트 주가조작 주범인 장씨가 2016년 9월 1일 검찰 수사를 받는 도중 “조씨가 외부에 수사자료를 가지고 다니며 수사상황을 떠들고 다닌다. 자신의 노트북으로 수사자료를 보여준 적도 있다”고 진술한 것이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최 검사와 수사관 박씨는 사태 수습에 나섰다. 장씨에게 조씨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받은 후 곧바로 강제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이들은 체포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후, 같은 달 20일 주가조작 사건 참고인으로 출석한 장씨를 긴급체포했다.

이후 주거지와 사무실 등에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통해 유출된 수사자료 등을 회수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차량, 휴대전화, 명품 옷, 라이카 카메라 등도 다수 압수가 이뤄졌다. 수사관 박씨는 수사자료 유출 사실이 들통나지 않기 위해 압수목록교부서에 압수한 수사자료 기재를 누락했고, 출력물 등에 대해선 최 검사의 승인을 받고 파쇄했다.

박씨의 개인물품 대부분은 공범인 A씨 아내에게 전달됐다. ‘차량과 신체 압수수색을 통한 압수물과 임의제출 자료 전체를 양도한다’는 내용의 확인서에 기반을 둔 것이다. 차량과 주식의 처분대금은 장씨에게 전달됐다. 조씨는 2017년 8월 1심에서 징역 9년, 벌금 3억원을 선고받았다. 2심에서도 같은 판결이 내려진 후 조씨는 대법원 판결을 하루 앞둔 2018년 4월 25일 서울남부지법에 앞선 압수수색의 취소를 구하는 준항고를 했다.

“압수수색으로 피해” 4억대 손배소…1심 판결에 불복

그 사이 서울고검 감찰부 등은 2017년 11월 최 검사와 수사관 박씨를 상대로 압수수색영장 집행절차 등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얼마 후 수사로 전환했다. 박씨는 2017년 12월 공용서류손상·은닉, 허위공문서작성·행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파면된 박씨는 2019년 4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이 확정됐다.

박씨에 대한 판결이 확정된 이후인 2019년 8월 중순 서울남부지법은 조씨의 준항고를 받아들여 압수수색을 취소하는 결정을 했다. 검찰이 곧장 재항고했고, 대법원은 3년여 만인 지난해 7월 재항고를 기각해 압수수색 취소를 확정했다.

조씨는 준항고 결정 이후인 2020년 4월 “위법한 압수수색으로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봤다”며 4억 12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박씨 등이 자동차, 컴퓨터 등의 압수물품 전체를 임의로 A씨 아내나 장씨 측에 전달해 막대한 재산상 손해를 입었다. 또 불법 압수수색에 대한 위자료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는 “박씨가 작성한 양도 확인서에 따라 양도된 만큼 문제없다”고 맞섰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2부(재판장 정현석)는 지난달 21일 “조씨가 지인들에게 양도한 건 신체와 승용차 압수물과 임의제출 압수물에 한정된 것”이라며 “국가가 조씨에게 위자료 2000만원을 포함해 54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구체적으로 조씨의 주거지와 사무실 압수수색 과정에서 영장을 제시하지 않았고, 집행 일시·장소 등을 조씨에게 통지하지 않았다면 주거지와 사무실 압수수색 후 조씨가 돌려받지 물품들에 대해 국가의 배상 책임이 있다고 결론 냈다. 법원이 배상 대상으로 판단한 압수 물품은 △루이비통 등 명품 구두 4켤레(약 1100만원) △라이카 카메라(약 220만원) △에르메스 넥타이 20개(약 660만원) △현금 125만원 등이었다.

재판부는 “당시 압수수색은 수사기관이 수사권을 남용해 수사자료 유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부당한 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서 헌법과 형사소송법상 규정을 대부분 지키지 않아 불법성이 매우 크다”며 “조씨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와 재산상 손해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국가와 조씨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