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속전속결' 우크라 영토 병합…핵전쟁 공포 커진다(종합)

by김정남 기자
2022.09.28 11:22:17

러 병합 주민투표 압도적 찬성…가결 확실
투표 강요 논란 속 러 영토 병합 서두를듯
러, 핵 사용 강행까지 시사…확전 공포감
서방 진영 '맹비난'…미, 유엔 결의안 제출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의 영토 편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점령지 정부들이 일제히 주민투표를 강행한 결과 압도적인 찬성률을 보였다. 8년 전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병합할 일주일이 채 안 걸렸던 것처럼 ‘속전속결’로 추진할 전망이다. 러시아는 편입한 영토 방어를 위해 핵 사용 가능성까지 공언한 상태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을 이를 ‘사기’ ‘가짜’라며 규탄하고 나섰다. 국제법을 위반한 우크라이나 주권 침해라는 것이다. 핵 무기까지 거론될 정도의 러시아와 서방 진영간 치킨게임은 당분간 더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AFP 제공)


러 병합 주민투표서 압도적 찬성률

27일(현지시간) 로이터, AP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 동남부의 자포리자주와 헤르손주 등 4개주 러시아 점령지 정부들은 이날까지 닷새간 러시아 병합 주민투표를 치렀다.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은 지난 2014년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에서 각각 친러시아 진영이 선포한 공화국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이들의 독립을 승인했다. 자포리자주와 헤르손주는 러시아가 2월 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영토 대부분을 점령 당했다. 이번 투표는 4개주의 편입을 공식화하기 위한 절차다.

4개주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개표 결과 4개 지역 모두 예상대로 90% 안팎의 압도적인 찬성률을 보였다. DPR과 LPR의 경우 각각 99.23%, 98.42%의 잠정 지지율을 기록했고, 자포리자주(93.11%)와 헤르손주(87.05%) 역시 높은 찬성률을 나타냈다. 최종 결과는 닷새 안에 확정된다. 영토 편입안은 최종 가결될 게 확실하다. USA투데이는 “러시아가 이번 투표의 승자라는 것은 놀랄 게 전혀 없다”며 “헤르손주가 87%대에 불과했다는 게 유일한 이변이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후속 편입 절차를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하원이 이날 밤 합병안을 발의하고 28일 이를 의결한 뒤, 29일 상원이 이를 승인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참고할 만한 사례는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최남단 흑해와 접해 있는 크림반도를 병합했을 때다. 러시아는 당시 모든 절차를 끝내는데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2014년 3월 17일 주민투표 이튿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합병 조약을 체결하며 영토 편입을 공식화했고, 이후 의회 비준과 합병 문서 서명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이번 역시 비슷하게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당초 러시아는 합병 주민투표를 오는 11월 추진할 것으로 알려져 왔다. 구체적으로는 11월 4일 ‘국민 통합의 날’이다. 그러나 최근 우크라이나군의 영토 수복 공세가 격화하면서 헤르손주 등이 위협을 받자, 주민투표 시기를 한 달 이상 앞당겼다.

이번 병합은 추후 우크라이나 전쟁의 성격이 바뀌는 분기점이라는 점에서 더 주목된다. 러시아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고 러시아계 주민을 보호하는 ‘특별군사작전’ 수행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자국 영토를 방어한다는 차원이어서, 러시아 입장에서는 ‘진짜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미 군 동원령을 내리면서 핵 무기 사용 강행까지 시사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확전 양상을 띠게 될 것으로 점쳐진다.

서방 진영 ‘맹비난’…핵전쟁 공포감↑

이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은 러시아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러시아 점령지 주민투표에 대해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차원에서 규탄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안보리에 제출하기로 했다.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미국은 러시아가 병합을 시도하는 어떠한 영토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가짜 주민투표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상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4개주의 투표는 러시아군이 현지를 사실상 지배하는 가운데 점령지 선관위가 주민들을 방문해 투표를 강요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비밀 투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트위터를 통해 “주민투표는 가짜”라며 “노골적인 국제법 위반”이라고 썼다.

미국은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11억달러(약 1조6000억원) 규모의 군사 지원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익명의 당국자를 인용해 “미국은 우크라이나군을 지원하기 위해 군사 원조를 할 예정”이라며 “며칠 안에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150억달러가 넘는 지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