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베팅사이트 선방…문학동네·민음사 웃었다[2022노벨문학상]

by김미경 기자
2022.10.07 12:10:00

6일 스웨덴 한림원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자전소설’로 젠더·계급 탐구 아니 에르노 선정
프랑스 대표 작가…여성으론 17번째
‘남자의 자리’ ‘사건’ ‘단순한 열정’ 등 대표작
국내굴지 출판사 최근 3년간 15권 번역 출간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82)가 자택 앞에서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REUTERS/연합뉴스).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영국 온라인 도박사이트가 올해는 선방했다. 영국의 대표 온라인 베팅사이트인 나이서오즈(nicer odds)가 올해 노벨문학상 유력 수상 후보로 거론했던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82)가 수상하면서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근 몇 년 동안 전혀 의외의 인물이 선정, 이들의 예측이 빗나가면서 일각에선 예전만 못하다는 푸념의 목소리도 나왔다.

나이서오즈는 노벨문학상 발표를 앞둔 지난 6일 기준 올해 수상확률이 가장 높은 작가로 미셸 우엘벡(배당률 6배)을 꼽았다. 2위 앤 카슨(5~7.5배)에 이어 아니 에르노가 7.5~8배 배당률로 3위에 점쳤다. 배당률이 낮을수록 수상 가능성을 높게 본다는 뜻이다.

올해 수상자인 에르노는 3위에 올라 꽤 높은 적중률을 자랑했다. 최근 미국 문학전문 웹사이트 ‘리터러리 허브’가 베팅 업체들을 분석한 결과에도, 미셸 우엘벡(배당률 7배)과 살만 루슈디(8배), 응구기 와 티옹오(10배), 아니 에르노(12배)의 수상에 베팅한 사람들이 많았다.
6일 기준 영국 대표 온라인 베팅사이트인 나이서오즈 배당률 순위(사진=나이서오즈 캡처 이미지).
스웨덴 한림원 후보 명단 비밀에 부쳐

수많은 호사가와 도박사들의 베팅 예측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는 노벨문학상을 운영하는 한림원이 후보 명단을 절대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의 부커상처럼 롱리스트(1차 후보), 쇼트리스트(최종 후보)로 추리는 방식과 달리, 평가 과정이 철저히 비밀리에 싸여 있어 수상 직전까지 공식적인 후보조차 알 수 없다. 매년 수상작 발표를 앞두고 오르내리는 ‘유력’ 후보 명단은 거의 이들 사이트에서 실시간 매겨지는 베팅의 상위 목록들이다.

1886년 설립한 래드브록스는 매년 1년간 전 세계의 서평과 블로그, 트위터 등을 추적한 정보로 임의 상정한 배당률을 공개하는데, 최근 의외 인물의 잇따른 수상 전까지는 그 적중률이 높기로 유명했다. 래드브록스는 2006년 오르한 파무크, 2015년 스베틀라나 알레기예비치 수상을 맞혔으며,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2011), 모옌(2012), 패트릭 모디아노(2014) 등 수상자가 래드브록스 배당률 순위 5위 안에 들었다. 2018년 노벨문학상(2018년은 미투(Me Too) 파문으로 시상하지 않고 2019년 당해 수상자와 함께 발표)을 수상한 올가 토카르추크는 나이서오즈 순위 3위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 이례적 수상자가 나오면서 예측은 대개 빗나갔다. 미국의 팝 가수 밥 딜런(2016년) 수상이 그랬고, 지난해 수상자 탄자니아 출신 영국 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당시 명단에조차 없었다. 2020년 수상자인 루이즈 글릭(미국·시인)은 배당률이 25대 1이었다. 업계에선 “어디까지나 베팅 업체의 배당률에 따른 가능성 순위일 뿐”이라면서도 노벨상이 발표되는 이맘때만 되면 베팅사이트에 주목하게 된다.



국내 출간된 에르노의 에세이 ‘사건’(민음사)과 소설 ‘그들의 말 혹은 침묵’(민음사), ‘집착’(문학동네), ‘탐닉’(문학동네), 선집 ‘카사노바 호텔’(문학동네)의 책표지(사진=민음사·문학동네 제공).
에르노 책 국내 10여권 출간…수혜 입을 듯

국내 출판업계는 노벨문학상 특수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는 쓰지 않는다’는 집필 철칙으로 자전적인 소설을 통해 시대와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왔던 아니 에르노는 매년 수상 후보에 올랐던 작가다. 국내에서는 ‘사건’(민음사), ‘그들의 말 혹은 침묵’(민음사), ‘탐닉’(문학동네), ‘집착’(문학동네), ‘남자의 자리’(1984Books/일구팔사북스), ‘단순한 열정’(문학동네), ‘세월’(1984Books/일구팔사북스), 선집 ‘카사노바 호텔’(문학동네) 등 최근 3년간 15권이 경쟁적으로 번역 출간돼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에르노는 계급·젠더 불균형을 예리하게 포착, 사회, 역사, 문학과 개인 간의 관계를 예리한 감각으로 관찰하며 지난 50년간 자전적이면서 사회학적인 작품을 선보여왔다. 선정적이고 사실적인 내면의 고백은 때론 논란이 되는 문제작을 낳았다.

2001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단순한 열정’은 유명작가이자 문학교수의 불륜이라는 선정성과 함께 에르노의 실제 불륜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출판 당시 평단과 독자층에 큰 충격을 안기면서 그해 최고의 화제작이 된 작품이다. 2021년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레벤느망’의 원작 ‘사건’은 프랑스에서 낙태가 불법이던 1975년 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끝내기 위해 선택해야 했던 잔혹한 방법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에르노의 자전적 소설이다. 자전적 이야기를 사회와 연결시킨 작품들에 이미 매료된 국내 독자들이 많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스웨덴 한림원은 6일 오후 8시(한국시간) 에르노를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한림원은 선정 이유로 “에르노는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통해 탐구한 작가”라며 “그는 작품을 통해 젠더, 언어, 계급적 측면에서 첨예한 불균형으로 점철된 삶을 다각도에서 지속적으로 고찰, 길고도 고된 과정을 통해 작품세계를 개척해왔다”고 평했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프랑스 출신 작가 아니 에르노(82)가 선정됐다(사진=노벨위원회 트위터 캡처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