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리포트)꿈의 자동차

by정명수 기자
2005.10.24 16:22:47

[이데일리 정명수기자] "공해 물질을 전혀 배출하지 않는 자동차, 석유 자원의 고갈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자동차." 그야말로 꿈의 자동차 입니다. 산업부 정명수 기자는 이런 자동차가 더 이상 꿈이 아니고, 이미 현실이 됐다고 말합니다. 지난주 동경 모터쇼를 둘러보고 온 정 기자의 `꿈의 자동차`(Dream Car) 시승기 입니다.

솔직히 기가 좀 죽었습니다. 지난 19일부터 시작된 동경 모터쇼를 둘러본 소감입니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우리나라 자동차 메이커들이 미국 등 세계 시장에서 "잘 하고 있다"는 뉴스만 전해드렸던 저로서는 약간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강렬한 자극도 받았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미래 자동차 시장을 향해 일본 자동차 업계는 저만큼 앞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동경 모터쇼 언론 공개에 앞서 혼다자동차의 초청을 받아 자동차 테마파크인 `트윈 링 모테기`를 방문했습니다. 트윈 링 모테기는 동경에서 2시간 거리에 있었는데, 국제 규격의 자동차 경주 트렉과 자동차 박물관, 각종 놀이 시설 등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혼다측에서는 내년 우리 시장에 선보일 최고급 세단 레전드를 비롯해서 시가 1억원이 넘는 스포츠카 등을 기자들이 직접 운전해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런 차들을 타고, 자동차 경주로를 달릴 때까지만 해도 그저 "재밌네. 잘 만들었네" 정도의 감흥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혼다가 천문학적인 개발비를 들여 만든 연료전지차 FCX를 보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5명이 타면 다소 빠듯한 정도의 크기 밖에 안되는 FCX에는 혼다의 기술력이 집대성 돼 있었습니다. 혼다의 기술 전문가와 통역을 대동하고 FCX에 올라 탔습니다. 운전석 오른 쪽 연료 계기판에는 수소(H2)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붙어있었습니다. 휘발유가 아니라 수소를 연료로 한다는 표시인 것이죠.

자동차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이 끝나자, 통역은 "엔진을 켜시죠"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뒷좌석에 앉아있던 혼다 기술자는 "통상의 휘발유 엔진이 아니므로, 엔진을 켠다는 표현이 맞는 것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스위치를 ON한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는 뜻입니다.

연료전지차의 기본 개념은 이렇습니다. 수소(H2)와 산소(O2)가 만나서 물(H2O)을 만들 때 에너지가 나오는데 이것을 전기 에너지로 해서 전기 모터를 돌리게 됩니다. 다시 말해 휘발유를 채워넣듯이 연료탱크에 압축수소를 충전하고,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할 때 만들어지는 전기로 자동차를 굴리는 것이죠. 연료전지차의 부산물은 순수한 물이기 때문에 공해가 전혀 없습니다.

FCX는 보통 LPG 자동차보다도 조용했습니다. 소음이 어느 정도냐고 묻자, 혼다 기술자는 "60데시벨 정도"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대화를 나눌 때 발생되는 소음 수준입니다.

"혹시 수소를 연료로 하기 때문에 폭발 위험은 없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답은 "휘발유 차와 안정성은 거의 같다. 충돌 테스트도, 정면, 측면, 후면을 동일하게 시행한다. 폭발 위험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소 연료를 충전하는데 불편함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혼다 관계자는 "동경에 수소 충전소가 10곳이 있는데, 자동차 업계가 협의회를 만들어서 수소 충전소의 표준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했습니다.



`아, 일본은 연료전지차 실용화를 위한 기반 시설 연구까지 진행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약이 오를 지경이었습니다.

자동차 가격을 물어봤습니다. 혼다의 대표적인 승용차 어코드 100대 가격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돈으로 20억원이 넘는 돈입니다. 기술적으로는 사실상 개발이 끝났지만, 차량 가격을 낮춰야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혼다는 1990년 연료전지차 개발을 시작해서 3년전 상용화를 노린 자동차를 처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일본에 7대, 미국에 20여대가 시운전 중입니다. 공공기관과 연구기관에서 이 차를 1년간 렌트하는 비용이 우리 돈으로 대당 2억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넌지시 "개발비가 얼마나 들었느냐"고 물었더니, "대외비"라고 했습니다. 차량 가격이 20억원 정도니, 그보다 수백배, 수천배 개발비가 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혼다 내부적으로는 수소 충전소 확충과 연료전지 효율을 높이는 등의 과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는 2020년에 일반 판매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가을비가 보슬보스 내리는 가운데 FCX의 시운전을 마쳤습니다. 배기관에서는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빗물과 엉킨 수증기는 배기관에서 물이 되어 똑똑 떨어졌는데요, 컵에 받아 마셔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의 극성스러운 미래차 개발 경쟁은 동경 모터쇼 행사장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시장에서는 판매 실적 면에서 현대자동차에 위협받고 있는 마츠다같은 메이커에서도 수소를 연료로 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내놨습니다. 도요타, 닛산 등 일본의 탑 메이커들은 전시장의 절반 이상을 연료전지차와 하이브리드 자동차로 도배하다시피 했습니다.

혼다의 FCX도 제가 시승했던 자동차의 모습이 아닌, 날렵한 스포츠카 형태의 컨셉트카로 바뀌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은 `현재의 승부`만큼이나 `미래의 승부`에 대해서도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안방에서 열리는 모터쇼에 최첨단 미래차를 집중 전시, 기술력의 우위를 한껏 자랑한 것이죠. 미국과 유럽 메이커들도 미래차를 선보였지만, 일본의 미래차에 비하면 초라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어땠느냐구요. 아쉽게도 우리 자동차 메이커들은 미래차 분야에서는 전시차종을 하나도 내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연료전지차나 하이브리드 자동차 연구를 게을리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기술력과 방대한 연구비 조달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동경 모터쇼는 `미래의 승부`를 위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가"라는 어려운 숙제를 던졌습니다. 현재의 `작은 승리`에 도취하기에는 경쟁자들의 실력이 너무 막강합니다.

`Power of Dream` 혼다 자동차의 슬로건 입니다. 지금 미래를 꿈꾸지 않으면 미래의 힘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미래는 꿈꾸는 자들의 것이고, 그 꿈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자들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