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주가는 급등하는데..속타는 기관

by한상복 기자
2002.10.18 15:10:13

[edaily 한상복기자] 주가가 큰 폭의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가운데 기관투자가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주가가 많이 빠지면 로스컷 물량을 내놓을 수 밖에 없고, 어느 정도 오른 뒤에야 사자 주문을 내는 식의 "뒷북치기" 매매 패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자괴감 때문이다.

한마디로 싼 값에 팔았다가 비싼 값에 되사야하는 처지다. 주요 기관들은 이달들어 주가가 크게 빠지자, 깊은 곳에 숨겨 놓았던 우량주까지 대거 내놓으면서 주식비중을 조절했다.

반면 발빠른 개인 투자자들은 증시가 폭락, 기관이 로스컷 물량을 내놓을 때 위험을 감수하고 베팅을 한 뒤, 지수가 상승하면 자금을 회수하는 기민한 대응을 통해 주머니를 불리고 있다. 폭락과 급등이 교차하는 변동성 장세에서는 개인이 기관보다 한발 앞서가고 있는 셈.

외국인의 경우 우리 증시보다는 미국 증시의 움직임에 맞춰 기계적으로 물량을 조절하거나 단타성 매매를 하고 있어 기관에 비해 부담이 덜한 형편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남의 돈을 굴리는 기관의 특성상, 뒷북치기는 숙명이지만 프로그램 매매나 ETF 같은 다양한 수단이 속속 나오고 있는 만큼, 기관의 여력도 차츰 늘어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지수가 800선을 돌파해 상승추세가 굳어진다면 기관이 증시를 받치는데 한몫을 톡톡히 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주요 기관투자가들은 지난 10월9일, 주가지수가 전일의 634.84에서 619.94로 크게 떨어지자 일제히 로스컷 물량을 내놓으면서 주식비중 조절에 나섰다. 이날 순매도한 물량(프로그램 포함)은 1179억원.

이어 그 다음날(10월10일) 지수 600선이 무너지면서 584.04로 쳐박히자 902억원의 순매도 물량을 쏟아냈다. 지수가 587.51로 소폭 상승한 11일에도 오히려 1314억원의 순매도 물량이 출회됐다.

그 이후 15일에는 순매수로 돌아섰다가 16일, 1142억원을 순매도한 다음, 순매수 쪽으로 포지션을 바꾸었다. 오늘은 오후 1시50분 현재 406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지수가 하락하자, 수세에 몰린 투신권이 가장 많은 물량을 던졌다. 투신권은 9일부터 16일까지 주식을 대거 처분하면서 4427억원의 대규모 물량을 쏟아냈다. 이 중에는 프로그램 매도도 포함되지만, 환매 압박 등에 대비한 상당량의 로스컷 물량이 출회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반면 개인은 지수 600선이 무너진 10일, 2815억원 규모를 순매수한데 이어 다음날에도 384억원을 사들였다. 14일 이후에는 주가가 상승하자, 연일 매도를 때리는 "치고 빠지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한마디로 개인이 기관의 "육중한 몸집"을 파고 들며 단타매매를 통해 짭잘한 수익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외국인 역시 이 기간중 매도 우위 포지션을 지켜왔으나 지수가 크게 상승한 14일 이후로는 매수 쪽으로 돌아선 느낌이다. 외국인은 미국 증시에 따라 춤추는 경향이 짙은데다 단타매매가 많은 만큼, 일관된 특성을 유추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어제(17일)도 852억원 규모를 순매도했다.

조재훈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지수가 큰 변동폭을 보일 때는 과감한 개인들이 기관보다 먼저 나서는 경향이 IMF 위기 때나 9.11 테러 때에도 나타났다"면서 "기관의 경우 남의 돈으로 주식을 운용해야 하는 입장인 만큼 민첩하게 움직이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조 위원은 "기관이라고 해서 추세를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펀드의 구조 자체가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힘들다"며 "그러나 현재의 상승이 추세화될 경우 지수 관련주 반등이 중소형 우량주와 테마주로 이어지면서 기관에 긍정적인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세중 동원증권 책임연구원은 "변동성이 심한 장세에서는 기관의 대응이 늦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숙명"이라면서 "기관에 돈을 맡기는 고객 특성이나 기관 자체가 보수적이므로 노련한 개인 투자자에 비해 둔하게 움직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그러나 "ETF 같은 새로운 수단이 등장해 기관의 운신폭을 넓혀주고 있는데다, 향후 주가가 상승추세를 뚜렷하게 보일 경우 투신권 등에 신규 자금이 속속 유입돼 활황장을 주도하도록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