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남은 ‘美거부권 행사’…LG엔솔·SK이노 막판 ‘신경전’

by김정유 기자
2021.03.07 16:04:24

ITC 최종 의견서 공개 “SK이노, LG엔솔 22개 영업비밀 침해”
탄력받은 LG엔솔 컨콜 열고 공세 “진정성 있게 합의 나서라”
SK이노는 강한 유감 표시, “美행정부에 거부권 강력 요청”
美국회 통한 움직임도 활발, “바이든 신정부, 예단키 어려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096770)간 전기차 배터리(이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분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승소 판결로 일단 승기는 LG에너지솔루션이 잡았지만, SK이노베이션의 마지막 저항도 만만치 않다. 특히 시한이 약 한 달밖에 남지 않은 미국 행정부의 거부권 행사 여부를 두고 양사간 막판 신경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모습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ITC 판결대로 영업비밀 침해부터 인정하라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SK이노베이션은 ITC 판결에 유감을 표시하며 거부권 확보를 위해 다각도로 접근하는 상황이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4일(현지시간) ITC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간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 관련 최종 의견서를 공개하면서 양사간 신경전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ITC는 SK이노베이션이 △BOM(원자재부품명세서) 정보 △선분산 슬러리 △음극·양극 믹싱 및 레시피 △더블 레이어 코팅 △배터리 파우치 실링 △지그 포메이션(셀 활성화 관련 영업비밀 자료) △양극 포일 △전해질 △SOC(충전율) 추정 △드림 코스트(특정 자동차 플랫폼 관련 가격 및 기술을 포함한 영업비밀 자료) 등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 22개를 침해했다고 최종 의견서에 적시했다.

ITC의 최종 의견서가 공개되자마자 LG에너지솔루션 측은 원문을 모두 공개하며, SK이노베이션에게 포화를 날렸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5일 긴급 컨퍼런스콜을 열고, SK이노베이션을 향해 “ITC 판결을 존중하라”며 날을 세웠다. 한웅재 LG에너지솔루션 법무실장(전무)은 컨퍼런스콜에서 “협상의 문은 열려 있지만, 지난달 10일 ITC 최종 판결 후 지금까지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협상 관련 제안을 받은 게 하나도 없다”며 “SK이노베이션이 진정성 있는 자세로 합의에 나서지 않으면 원칙대로 우리가 정한 길을 가면 된다. 합의가 안될 경우 징벌적 배상까지 포함하면 배상금 규모가 어느 정도가 될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ITC 최종 판결까지 끝난 마당에 현재 양사간 분쟁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다. 미국 대통령은 ITC 판결 후 60일 이내에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한다. 거부권 행사 시한은 다음달 11일까지로 불과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 같은 거부권 행사 문제에 대해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행사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본다. 장승세 LG에너지솔루션 경영전략총괄 전무는 “단순히 거부권의 가능성을 숫자로 예단할 수는 없지만, 공익적 부분까지 심도 있게 심사한 결정이고 이런 부분들이 수입금지 유예기간(포드·폭스바겐 대상)을 주는 형태로 나온 것”이라며 “아마 미국 무역대표부나 백악관에서도 이 같은 부분을 충분히 고려해서 판단할 것으로 본다”고 언급했다.



반면 막판 수세에 몰린 SK이노베이션은 ITC 최종 의견서가 공개된 당일에도 판결 내용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실체적 검증이 없었던 만큼 거부권 행사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영업비밀 침해를 명분으로 소송을 제기한 LG에너지솔루션은 침해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ITC 의견서 어디에도 이번 사안의 본질인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면서 “SK이노베이션은 이처럼 ITC 결정이 내포하는 문제점을 대통령 검토 절차에서 적극적인 소명하고 거부권 행사를 강력하게 요청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거부권 행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전방위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주엔 미국 백악관 직속 무역대표부에 ITC 판결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는 의견서를 전달했다. 동시에 미국 국회의원들을 통한 거부권 확보 움직임도 적극 전개 중이다. 실제 지난 3일 라파엘 워녹 미국 조지아주 상원의원은 폴리 트로텐버그 교통부 차관 후보 청문회장에서 “ITC 결정은 SK이노베이션이 26억달러를 투자해 건설 중인 조지아주 공장 운영과 2600여명의 일자리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 과정에서 정책 목표인 녹색교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한 분석을 요구한다”고 언급했다. 조지아주는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는 지역으로,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막판 로비를 펼치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현재 미국 무역대표부는 양사로부터 거부권 행사를 포함한 모든 의견을 수렴하는 상황이다. LG에너지솔루션도 지난주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을 만나 ITC 결정이 번복되면 안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ITC 최종 의견서까지 외부에 공개된 상황에서 SK이노베이션은 거부권 행사에 모든 것을 걸 수 밖에 없는 만큼 행사 시한까지 양사간 신경전도 더 뜨거워 질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가 극초기인 만큼 거부권 행사 여부를 예단하기 힘들어 양사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 조지아주 커머스시의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전경. (사진=SK이노베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