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환법 철회에도 들끓는 홍콩…"中 '양제'보다 '일국'"

by김인경 기자
2019.06.18 10:32:10

시진핑 체제 이후 후 홍콩의 중국화 요구
정치·언론 통제 가중화에 경제성장도 '주춤'
송환법보다는 中에 대한 불만이 핵심…혼란 불가피

[베이징=이데일리 김인경 특파원] 홍콩 입법회가 ‘범죄인 인도법안(일명 송환법)’ 처리를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혔지만 홍콩 시민들의 분노는 여전히 뜨겁다. 범죄인 인도법안은 분노의 계기일 뿐, 진짜 홍콩이 화난 이유 중심에는 중국 시진핑 지도부를 향한 ‘불신’이 반영돼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1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홍콩 시민들은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다’라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에 나섰다.

이 자리에 참여한 시민은 주최 측 추산 200만명. 경찰추산도 33만8000명에 이른다. 지난 9일 주최측이 100만명이 참석했다고 추산한 집회에서 경찰은 26만명이 참여했다고 집계했는데, 이날 집회는 참석자가 그보다 늘었다는 걸 인정한 셈이다.

매체들은 범죄인 인도 법안 입법 시도를 철회한 상황에서도 시민들이 뛰쳐나온 것은 중국과의 일체화를 추진하는 시진핑 정부에 대한 반발을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한다.

중국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넘겨받으며 최소 50년간 고도의 자치와 사법독립, 언론의 자유 등을 약속했다.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였던 덩샤오핑의 아이디어 ‘일국양제(한국가 두체제)’에 근거를 둔 것이다.

하지만 2012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공산당 최고 반열에 오르며 ‘양제’보다는 ‘일국’에 방점이 찍히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중국의 꿈(中國夢)을 강조하는 시 주석은 홍콩이나 마카오, 대만에도 중화사상을 요구했고 홍콩 내 반발의 기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2014년 홍콩 시민들은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79일간 도로를 점거한 민주화 시민 ‘우산혁명’을 벌였지만, 이 시위는 당국에 의해 진압됐고 홍콩 정부는 중국 중앙정책을 충실이 이행하는 구도로 변했다. 홍콩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민주파는 2016년 선거에서 70개 의석 중 20석을 차지했지만 그 중 6명이 정치적 이유로 의원 자격을 박탈당하며 의회의 ‘친중국화’는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언론의 자유도 차츰 줄어들었다. 2015년 지난 2015년 중국 지도부에 대해 비판하는 책을 출판·판매해온 코즈웨이베이서점 관계자들은 잇따라 중국에 끌려간 후, 구금돼 조사를 받았다.

홍콩의 경제 위축도 중앙정부에 대한 불만을 확산시켰다. 홍콩의 지난 1분기 성장률은 0.5%로 2009년 3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대신 선전이나 상하이 등 중국 도시들이 빠르게 성장하며 ‘금융 허브’ 지위에 대한 불안감까지 가중됐다. 이에 범죄인 인도 법안까지 나오며 홍콩 주민 4명 중 한 명이 거리로 뛰쳐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소식통을 인용해 범죄인 인도 법안은 ‘자연사’했다고 보도했다. 보통 논란이 되는 법안의 입법회(국회) 심의는 2년가량 걸리는데, 현 입법회 임기가 내년 7월이면 끝나 입법 재추진이 어렵기 때문이다.

또 17일엔 ‘우산 혁명’을 이끈 주역인 조슈아 웡이 구치소에서 풀려났다. 지난달 16일 법정모욕 등 혐의로 징역 2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됐지만 당초 예상보다 한 달 빨리 조기 석방된 것이다. 현지 언론들은 “웡의 석방은 당국이 시위대에 보내는 화해의 손짓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홍콩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 중앙정부와 친중파 홍콩 입법부를 향한 불만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시민들은 캐리 람 행정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며 다음 달 1일 홍콩 반환 22주년에도 거리로 뛰쳐나오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홍콩 시민들은 이미 국제사회라는 아군을 얻었고 홍콩 내 중국의 일당 독재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200만명에 이르는 홍콩 시민들이 지난 16일(현지시간) 홍콩 도심을 가득 메우고 ‘범죄인 인도 법안 완전 철회’와 ‘캐리람 행정장관 사퇴’ 등을 요구하고 있다.[AFPBB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