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봉의 중국 비즈니스 도전기]38회:돈 약속-이준구와 이소룡

by김일중 기자
2017.09.26 10:12:28



고교 시절 바둑 배울 때 생각이 난다. 교실 앞자리 자리에 앉아 있는 친구들의 머리가 바둑알로 보일 때가 있었다. 하숙집 방에 누워 잠을 청하려하면 천정에 바둑알이 보인다. 복기(復棋)하는 바둑 프로선수들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노래 가사도 있지 않은가? 앉으나 서나 00 생각! 하여튼 100억 원이 아른거려 너무 기분 좋은 상태가 지속됐다. 중국에서 날린 돈을 만회하고도 남을 수 있는 사업이 분명하다.

2000년 9월15일부터 10월1일까지 개최되는 제 27회 시드니 올림픽! 대한민국이 종주국인 태권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남녀 각각 4체급, 8개의 금메달이 걸려있는 종목이 된 것이다. 전 세계 8천만 명에 달하는 태권도 인구의 지도자들이 거의 다 참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호주의 태권도 열풍도 엄청났다. 태권도 경기장 앞에는 어김없이 엄청난 장사진이 펼쳐졌다. 미리 입장권을 사지 못한 이들이 현장에서 표를 구매하려고 줄을 서 있다. 태권도 수련을 하다 왔는지 태권도복을 입고 배낭을 걸친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흡족했다.

100여 명이 넘는 한국인 사범, 관장들과의 만남은 사업을 떠나서 나를 설레게 했다. 북미, 유럽은 물론 남미와 아프리카, 중동에서 온 이들과의 대화는 너무 소중했다. 그들이 외국에 나가게 된 계기에서부터 자리를 잡을 때까지 겪었던 애환이 구구절절했다. 태권도가 정식 종목이 된 사실 만으로도 그들의 기쁨과 자부심은 대단했다.



사실 88서울올림픽에서 주최국인 대한민국이 태권도를 추천했을 때부터 얼마나 말이 많았는지 모른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가장 반대하는 나라가 일본과 중국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경제력을 앞세운 일본을 보자. 유도, 검도 다음으로 국기나 마찬가지인 가라테가 있지 않은가? 태권도라는 말이 정착되기 전 우리나라에도 당수, 공수도, 합기도라는 이름 등으로 가라테를 수련한 사범이나 관장들이 도장을 운영했다. 중국은 더하다. 이소룡의 인기만 봐도 알만하다. 태극권, 당랑권, 절권도, 소림사, 무당파, 영춘권, 궁푸 등 등 무술에 관한한 중국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의 태권도가 시범 종목에서 정식 종목으로 인정받는 대회가 바로 시드니 올림픽이었다. 우리 세계태권도연맹을 이끌었던 주요 임원들의 노고를 치하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을 떠난 분도 있지만 건재하신 분들도 있다.

이준구! 여기서 미국 땅에 태권도의 이름을 널리 알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준리, 이준구 사범이다. 시드니에도 미국 올림픽 대표단 임원 자격으로 왔다. 호주 태권도협회에서 마련한 요트 파티에 참석해 보니 그의 위상을 충분히 짐작할 만했다. 요트 파티, 한마디로 멋있었다. 사진, 동영상을 남길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요즘 같으면 스마트폰이 다 해결할 일 아닌가? 오페라 하우스를 바라보며 하버 브리지 밑을 통과할 때의 기분은 너무 황홀했다. 철갑상어 알,연어 회에 멋진 포도주, 그리고 재즈! 미국을 비롯한 호주, 독일, 영국 등 선진국에서 태권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니 그 나라에 진출했던 태권도 사범들이 자기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이준구 사범이다.

1932년 충남 아산 출신인 그는 어릴 때 동네 여자애들에게도 맞고 다닐 정도였다. 해방 직후인 16세 때 더 이상 맞고 살수는 없다는 각오로 견지동에 있는 청도관에서 가라테를 배우기 시작했다. 태권도라는 명칭은 50년 중반에야 최홍희장군 때부터 사용하게 된다. 1957년 미국으로 건너가 학비를 벌기 위해 텍사스 스테이지 칼리지 내에 ‘코리아 가라테’라는 이름으로 태권도 클럽을 열었다. 1962년엔 워싱턴에 ‘준리태권도’ 차린 후 그의 성공가도는 눈부셨다. 그에게 태권도를 배운 미국의 국회의원 만해도 탐 폴리 하원의장 등 350여 명에 달한다. 특히 이소룡과 무하마드 알리에게도 태권도를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이민자 203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인슈타인, 키신저 등과 함께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한국인이다.

그와 헤어지기 전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음 물었다. “우리 도장엔 검은 띠를 따기 위한 두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부모님은 물론 선후배, 친구 사이의 예의 바른 생활을 해야 한다. 한마디 인성이 좋아야 한다. 둘째는 학교에서 우등생이 되지 않으면 검은 띠를 딸 수 없다.” 현재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인성 교육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