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로금리 5년 더 가나…연준 변신이 몰고올 변화는(종합)

by김정남 기자
2020.08.28 10:33:01

'거대한 비둘기' 파월, 인플레 용인 시사
"美 정책금리, 최소 5년 제로 유지할듯"
예상밖 증시 약세 압력…대형 기술주 하락
인플레 '오버슈팅' 주목…장기금리 상승
커브 스티프닝에 죽쑤던 은행주 일제히↑
일각서 "연준 AIT 모호, 시간 더 필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7일(현지시간) 원격회의 형식으로 열린 연례 경제심포지엄 ‘잭슨홀 미팅’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제공)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평균물가목표제(Average Inflation Target·AIT)’ 도입을 공식화하면서 그 여파에 관심이 집중된다. 미국 경제가 너무 낮은 물가에 신음하고 있는 만큼 초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를 끌어올리겠다는 게 요지다. 연준이 최소 5년은 정책금리 인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인플레이션 파이터’ 중앙은행의 전통을 공식적으로 깨뜨리는 큰 정책 변화다. 이에 따라 증시 초강세 등 최근 금융시장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연준, 더이상 ‘인플레 파이터’ 아니다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27일(현지시간) 공식 성명을 내고 AIT 채택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연준은 “장기간에 걸쳐 평균 2.0%의 물가상승률 달성을 추구할 것”이라면서도 “지속적으로 2.0%를 밑돈 후에는 즉각 일정 기간 2.0%를 웃도는 물가상승률을 목표로 하는 게 적절한 통화정책”이라고 말했다. 연준의 물가상승률 목표치인 연 2.0%를 넘어도 이를 용인하겠다는, 다시 말해 2.0%를 하회했던 기간만큼 2.0%를 웃돌아도 평균만 2.0%로 맞추겠다는 것이다.

연준의 현재 정책금리는 제로(0.00~0.25%) 수준이다. 연준의 팬데믹발(發) 무제한 양적완화 이후 요즘 월가에는 ‘인플레이션의 도래’ 논쟁이 활발해지고 있는데, 이날 발표는 당분간은 물가상승률이 2.0%를 넘어도 정책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장기 제로금리’ 서막이 열린 것이다. 제이슨 퍼먼 전 백악관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에 “정책금리가 5년간 제로 수준을 유지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원격으로 열린 잭슨홀 미팅 연설에서 “지속적으로 너무 낮은 물가는 경제에 심각한 위험을 줄 수 있다”며 “(이번 정책은) 연준 통화정책 체제를 업데이트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미국 경제 상황을 두고 “장기간 물가 전망에서 반갑지 않은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파월 의장은 ‘거대한 비둘기’였다는 게 월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게다가 그는 ‘평균 2.0%’를 정확하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팬데믹이 길어지는 등 실물경제 악재가 길어질 경우 초저금리를 예상보다 길게 가져갈 수 있다는 의지로 읽힌다. 뉴욕타임스(NYT)는 “오랜 기간 저금리 시대의 토대를 구축했다”고 했다.



경제전문매체 CNBC는 “앞으로 실업률이 하락해도 물가가 상승하지 않는다면 연준이 금리를 올릴 가능성은 작아졌다”고 분석했다.

장기시장금리 급등 주목…증시 여파는

관심은 추후 금융시장의 변화다. 이날 투자자들은 오전 일찍 나온 파월 의장의 언급을 소화했다.

주목할 점은 시장이 물가 반등의 가능성에 방점을 찍었다는 점이다. 뉴욕채권시장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채권금리는 AIT 도입 발표 이후 ‘장기 초저금리’에 무게를 두며 일제히 하락했는데, 그 이후 인플레이션 ‘오버슈팅’에 눈을 돌리며 가파르게 올랐다.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이날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0.754%로 상승(채권가격 하락) 마감했다. 6월16일 이후 두달여 만의 최고치다. 최근 장기시장금리의 상승 탄력에 불을 지른 모양새였다. 피터 부크바르 블리클리 파이낸셜 수석투자책임자는 “채권시장은 파월 의장이 높은 인플레이션을 원한다는 점을 봤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채권수익률곡선은 가팔라졌다(커브 스티프닝).

이날 증시에서 팬데믹 이후 폭락했던 은행주가 반등한 대신 연일 최고치 기록을 쓰는 기술주가 하락한 것 역시 눈여겨볼 대목이다. 높은 장기 인플레이션 전망이 투영된 것으로 읽혀서다.

JP모건체이스의 주가는 3.26% 급등한 주당 102.35달러에 마감했다. 씨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웰스파고의 경우 각각 1.71%, 1.92%, 2.29% 올랐다. 반면 넷플릭스와 페이스북는 각각 3.88%, 3.52% 급락했으며, 아마존은 1.22% 떨어졌다. 애플과 알파벳(구글 모회사)의 경우 각각 1.20%, 0.95% 내렸다.

크로스마크 글로벌 인베스트먼트의 빅토르 페르난데스 최고시장전략가는 “기술주에서 다른 주들로 투자자들이 이동하는 것일 수 있다”며 “우리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채권금리가 예상보다 더 오를 경우 증시 초강세장이 조정에 접어들 수 있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연준 AIT 모호, 재료 소화 시간 더 필요”

다만 연준의 이날 발표가 다소 모호했던 측면이 있는 만큼 시장이 재료들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관측도 있다.

이날 금값은 예상 밖 하락했다. 12월 인도분 금은 전거래일 대비 온스당 1% 내린 1932.6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인플레이션은 금값 강세의 주요 재료다. 물가 급등으로 인한 화폐가치 하락기에는 실물자산의 인기가 높아지는데, 금은 그 중에서도 인플레이션 헤지 상품으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월가의 한 인사는 “AIT 제도 자체가 생소한 것”이라며 “그 여파를 더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