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우선주의엔 弱달러가 좋긴 한데"…트럼프의 딜레마

by이정훈 기자
2017.01.22 15:23:07

`미국 우선주의` 기치 올린 트럼프
"세금보단 弱달러정책이 더 손쉬워"
취임사에서도 감세-세제개혁 언급 회피
弱달러 고수땐 금리인상 후폭풍 우려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가 20일(현지시간) 취임식을 마치고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첫 발을 뗐다. 16분간에 걸친 그의 취임연설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있으며 이로써 미국 경제정책에도 일대 변화가 일 것임을 분명히 했다.

새 대통령 트럼프는 “무역과 조세, 이민,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혜택이 미국에게 갈 수 있도록 의사결정이 내려질 것이며 해외 경쟁자들을 무력화함으로써 미국을 보호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한 “그런 보호가 미국에 커다란 번영과 힘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도 했다. `보호`라는 단어는 `보호주의`와는 분명 다른 뜻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거의 동의어로 쓰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 직후 “우리는 미국산(産)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단순한 두 가지 원칙에 따를 것”이라고 강조했으니 말이다.

실제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뒤 취임하기 전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포드와 피아트 크라이슬러, 제너럴모터스(GM), 도요타 등 많은 자동차업체들을 회유하고 압박해 미국내에 공장을 유지하거나 아예 멕시코에 지으려는 공장을 미국에 짓도록 만들었다. 특히 트럼프는 지금까지 `불리 펄핏(Bully Pulpit·여론을 주도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만 했다면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이 된 지금부터는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더 큰 힘을 갖게 됐다.

그런 점에서 미국 기업들의 수출을 늘리고 미국의 경제적 이득을 크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동안 그가 입에 올렸던 징벌적인 고율의 수입관세나 국경세(공화당이 제안한 대안은 현금흐름세)를 실제 도입하기보다는 외환시장을 움직여 교역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더 손쉽게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다. 실제 대통령 취임 직전 트럼프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달러화 가치가 너무 비싸다. 그런 강(强)달러가 우리 경제를 죽이고 있다”며 20여년에 걸친 미국 정부의 강달러 정책을 단번에 뒤엎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를 두고 초대 재무장관 내정자인 스티븐 므누신은 “단기적으로 수출에 악영향을 줄 위험이 있긴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강한 달러는 우리에게 중요하며 이는 미국이 전세계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투자환경을 가졌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해명했지만 사실 이같은 약(弱)달러 옹호 발언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신조에 잘 들어맞는 것이다.



이는 지난 1971년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맡던 존 코널리가 달러화 약세에 반발하는 주변 국가들에게 ‘달러화는 우리 돈이지만, 당신들의 문제(The dollar is our currency, but your problem)’라는 발언을 떠올리게 하는 스탠스다. 또한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마이클 블루멘탈 재무장관이 “더 싼 달러화는 미국 경쟁력을 높이고 무역수지 적자를 축소시킬 것”이라고 했던 것과도 동일한 맥락이다. 사실 1990년대부터 달러화가 등락을 보였지만 이는 미국보다는 다른 국가들에게 더 큰 혼란이었다. 1967년 파운드화가 단기간에 2.80달러에서 2.40%까지 급락하자 당시 영국 총리였던 해롤드 윌슨이 “파운드는 절하됐지만 여러분들의 주머니에 있는 파운드화가 싸진 것은 아니다”며 영국민들을 설득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실 달러대비 유로화 가치가 1.1달러든 1.2달러든 유럽여행을 하지 않는 미국인들에게는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미국 기업들에게는 다른 얘기가 된다. 여러 국가에서 영업하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나 가죽을 수입해 신발이나 가방을 만드는 제조업체들이나 마찬가지로 달러화 가치는 단순한 변수가 아니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처럼 달러화를 강세로 만든 주범을 중국으로 몰아 세운다. 중국 당국이 무분별하게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리다보니 달러화가 강해졌다는 논리다. 최근 중국은 오히려 위안화 가치 절하를 막기 위해 1조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고를 탕진할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지만 트럼프는 이들 두고도 “미국인들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잠시 그러는 것일 뿐”이라고 곡해하고 있다.

결국 미국 우선주의를 달성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우선적으로 달러화 가치를 낮추려 할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국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게 만드는 유인책이 될 수 있다. 그렉 발리어리 호라이즌 인베스트먼트 수석 스트래티지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금융시장이 듣고 싶어하던 감세나 세제 개혁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일단 달러화 약세정책을 쓴 뒤 감세 등 세제 문제는 최대한 행동을 뒤로 미룰 것”이라고 점쳤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달러화 약세유도정책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달러화를 약세로 유도할 경우 미국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높아지고 인플레이션도 상승할 것이다. 이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을 앞당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공개된 점도표에 따르면 정책위원들은 올해말까지 세 차례 정도 더 25bp(0.25%포인트)씩 기준금리 인상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블룸버그 분석에 따르면 시장은 0.50~075% 수준인 기준금리가 두 차례 정도 더 인상되는 수준까지 가격에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에도 집권 8년간 실업률이 5.4%까지 떨어졌고 경제 성장률은 3.5%에 이르렀지만 이 때문에 기준금리를 19%까지 공격적으로 인상했다. 이 때문에 치솟던 인플레이션을 겨우 3.5%까지 끌어내렸다. 그러나 이는 레이건 집권 1기 내내 강달러를 야기했고 주식시장도 25%나 하락하는 약세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데이빗 로젠버그 클러스킨 세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사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임기중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가 3배나 뛴 것도 연준의 유동성 확대 덕분”이라며 “레이건 행정부 때에도 연준 정책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충분히 알지 못했다”며 트럼프의 약달러 정책이 오히려 시장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