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하고 세금 내는데 재난지원금은 왜"…외국인 차별 논란

by손의연 기자
2020.04.05 14:40:02

보편적 재난기본소득인데…외국인만 빼놓은 경기도
정부·서울시는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만` 지원키로
"국내서 경제활동하고 세금 내는데…우리도 취약계층"
안산, 첫 외국인에 지급…他지자체들도 여론 눈치보기

[이데일리 하상렬 손의연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시민들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지만 국내에 합법적으로 들어와 경제활동을 하고 세금을 납부하고 있는 일부 외국인이 지급대상에서 자신들의 배제됐다는데 대해 반발하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이주민 차별·배제하는 재난지원금 정책 국가인권위 진정 공동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5일 시민사회단체에 따르면 경기도를 시작으로 정부와 각 지자체가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외국인들은 지원대상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처음 1인당 10만원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한 경기도는 경기도민 모두를 대상으로 하지만 외국인은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도 관계자는 “전에 시작한 청년기본소득 사업과 같은 선상으로 한 정책”이라며 “외국인은 법적 권리에서 제한받을 수 있다는 조항도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출입국관리법 제31조에 따라 외국인 등록을 한 사람, 서울시에 주소지를 둔 사람,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과 혼인 또는 직계존비속 관계에 있는 사람 등 세 가지 항목에 모두 해당하는 외국인은 재난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해당 기준을 다 충족하는 외국인은 사실상 한국인과 결혼을 한 경우라 서울 거주 외국인 상당수가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이주민 단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장은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들은 투표도 할 수 있는 현실에서 이들까지 지급 대상에서 배제했는데 애초에 외국인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라며 “외국인을 사회구성원으로 의식하지 않은 처사”라고 밝혔다.



이에 이주인권연대 등은 지난 2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을 내기도 했다. 수원이주민센터, 경기지역이주노동자공동대책위원회 등도 경기도 발표 이후 “생활 속에서 세금을 내고 주민세, 자동차세,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의 다양한 모든 종류의 세금을 내고 있지만 아동보육비, 아동수당, 노인수당, 청년기본수당 등에서 이주민은 제외돼 있다”며 “재난 상황에 보호받아야 할 소수자를 배제한 것은 차별이자 인권 침해”라고 반발했다. 스리랑카에서 온 이주노동자 A씨는 “작년 연말정산에 100만원 이상 세금을 더 냈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돈도 못 벌고 있다”라며 “세금도 내고 있고 재난에 고통받는 것도 마찬가지인 만큼 동일하게 지원해 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대한민국에서 거소등록(주민등록)을 하고 경제활동을 하고 세금을 내고 있는 외국인들에 대해서도 정부에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코로나 19 관련 지원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이 글은 5일 기준 1만 2000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이주민 단체들은 세금을 내며 경제활동을 내는 외국인이 이번 정책에서 제외되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취약계층을 위한다는 취지를 생각해봤을 때도 이주노동자 등이 배제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경기도 안산시는 지자체 최초로 등록 외국인과 외국국적 동포에 한해 생활안정지원금으로 내국인이 받는 금액의 70% 수준인 7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달 2일 기준으로 안산시에 주소를 둔 이주민 모두가 대상이다. 안산시 관계자는 “안산시민의 10% 정도가 외국인인 점 등 도시 특성을 고려했다”면서 “행정안전부 보통교부세 수요금액 산정 시 외국인의 경우 내국인의 70% 수준으로 산정하는 것을 고려해 7만원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지자체 경우 여론 반발을 의식해 이같은 결정을 하긴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한 지자체 의회 관계자는 “경기도 발표 이후 각 지자체들에 재난기본소득을 달라는 민원이 쏟아지다시피 한 것으로 안다”라며 “아직 대부분 구체적인 방안 등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외국인을 포함시키자고 하면 반발하는 여론이 많을 것으로 예상돼 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섭 이주공동행동 집행위원은 “이재명 경기도지사나 박원순 서울시장을 뽑은 사람 중 영주권이 있는 이주민도 있지만 이주민은 힘이 별로 없어 정책에서 이들을 배제하는 결과가 나온 것 아닌가 싶다”면서 “내국인 국적자와 가족관계를 이루지 않은 외국인은 기존의 사회보장체계에서도 많이 배제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근본적인 문제는 기존의 사회보장 관련법에 지원받을 수 있는 외국인의 범위가 좁게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