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맛보기] 추미애 압승과 ‘문재인의 1469만표’

by김성곤 기자
2016.08.27 21:11:26

더민주 전대 추미애 압승으로 문재인 대세론 현실
‘문재인 한계론’ 차기 대선 문재인 내세우면 필패
‘문재인 선전론’ 차기 대선 문재인 대권재수 필수
문재인·안철수,·제3후보, 단일화 샅바싸움 되풀이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홍보물(사진=문재인 페이스북)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8.27 전당대회에서 추미애 의원이 예상대로 승리했습니다. 과반을 넘는 압승입니다. 이른바 문재인 대세론이 현실화된 것입니다. 더민주는 지난 대선에서 1469만여표(48.02%)를 얻은 문재인 전 대표를 다시 한 번 차기 대선후보로 내세울 가능성이 매우 커졌습니다. 그러나 문재인의 득표력에 대한 논란은 여전합니다. 내년 대선에서 1469만여표의 실패는 되풀이될까요?

‘1469만2632표’

문재인 전 대표가 2012년 대선에서 얻은 국민적 지지입니다. 직전 대선 때보다 득표율(75.8%)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대선 유권자수가 크게 늘기는 했지만 그래도 문재인의 득표는 기록적인 것이었습니다. 97년 대선 김대중 전 대통령(1032만6275표)의 당선 때보다 무려 437만표 정도가 더 많습니다. 2002년 대선의 승자 노무현 전 대통령(1201만4277표)보다도 268만표 가량 많습니다. 오죽하면 2007년 대선에서 압승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받은 표보다도 1149만2389표보다 320만표나 더 많습니다. 역대 대통령 당선자인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보다 더 많은 표를 얻고도 패배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1577만3128표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108만496표 차이의 패배였습니다.

‘득표율 48.02%’

문재인이 지난 대선에서 받은 득표율입니다. 절반에 약간 못미치는 수준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역대 대통령 당선자보다 높거나 비슷한 수치라는 점입니다. 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의 득표율은 40.27%에 불과합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의 득표율은 48.91%,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의 득표율은 48.67%입니다. 절반 이하인 48%대로 문재인이 얻었던 것과 유사한 수준입니다. 문재인은 50% 육박하는 지지를 얻고도 왜 대선에서 패배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51.55%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신기한 것은 반올림하면 51.6%입니다. 박근혜는 87년 대선 이후 어떤 정치인도 이룩하지 못한, 사상 최초로 50% 이상의 득표라는 전인미답의 고지에 올랐습니다.

◇1469만표 ‘밖에’ 못 얻었다 vs 1469만표 ‘만큼이나’ 얻었다

2012년 대선 결과는 차기 대선을 앞둔 야권이 정리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다시 말해 문재인이 얻었던 1469만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문제입니다. 여기에는 극과 극의 평가가 공존합니다. 마치 컵에 있는 똑같은 물의 양을 놓고 ‘반이나’ 남았다 또는 ‘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선 ‘문재인 한계론’입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극심한 레임덕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 대선은 야권이 정권을 탈환할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문재인이 야권 단일후보로 나섰기 때문에 1469만표밖에 얻지 못했다는 시각입니다. 과거 노무현은 권영길의 독자출마에도 대선에서 승리했는데 문재인은 진보진영의 모든 후보가 사퇴한 가운데서도 무기력하게 패배했다는 것입니다. 대선 패배는 바로 문재인이라는 상품성의 문제라는 분석입니다. 문재인이 ‘친노 패권주의’라는 부정적 프레임을 극복하지 못한 채 중원공략이나 외연확장이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문재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야권의 단일후보로 나섰다면 더 많은 표를 얻었을 것이라는 가정입니다. 그랬다면 박근혜의 대선승리를 막고 정권교체를 달성할 수 있었다는 평가입니다.

‘문재인 선전론’이라는 정반대의 시각도 있습니다. 그나마 문재인이 야권단일후보로 나섰기 때문에 1469만표라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댓글부정을 주도한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만 없었다면 결과는 바뀔 수도 있었다고 진단입니다. 결과적으로 문재인이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그마나 선방했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보수·진보가 일대일 구도로 치열하게 맞붙었던 적이 유일했던 만큼 진보진영 전체의 역량 부족이라는 것입니다. 문재인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선전했고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마중물은 남겼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단일화 과정에서 안철수가 후보직을 내던지다시피 하면서 판을 깨버리는 오판만 하지 않았다면 대선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관측도 상당합니다. 안철수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어부지리의 결과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2012년 대선결과 해석 따라 달라지는 야권단일화 방정식



지난 대선 결과를 문재인 한계론 또는 문재인 선전론 중 어느 쪽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야권의 차기 대선전략은 180도 달라집니다.

지난 대선을 ‘문재인 한계론’으로 본다면 문재인이 또다시 나선다면 차기 대선 필패입니다. 문재인 대세론이 야권 안팎에서 거론되지만 이는 패배의 아이콘이었던 이회창 대세론의 또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대선후보가 되는 과정은 어렵지 않더라도 본선 경쟁력은 여전히 회의적이라는 것입니다. 문재인을 최종 후보로 낼 경우 또 한 번의 패배만을 기록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입니다. 그렇다면 문재인은 대선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야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차라리 킹메이커를 자임하고 본인보다 본선 경쟁력이 더 우수한 야권후보를 지원해야 합니다. 안철수, 손학규, 박원순, 안희정, 김부겸, 이재명 등 적지 않은 야권주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능할까요? 그럴리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 문재인 본인이 출마를 접는다 해도 그를 대선후보로 밀어올리고 있는 수많은 세력과 지지자의 바람을 외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지난 대선을 ‘문재인 선전론’으로 해석한다면 이번만큼은 문재인이 나서야 합니다. 마치 92년 대선 패배 이후 정계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정계복귀했던 DJ의 사례처럼 대권재수는 불가피하다는 논리입니다. 1469만이라는 어마어마한 국민적 지지를 확인한 야권의 정치인은 문재인이 유일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야권의 유력 차기 주자 중 유독 문재인을 향한 비난과 비판이 집중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여권 입장에서 문재인이 가장 위협적인 야권의 차기 주자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지는 게 마땅합니다. 그가 나서야 정권탈환의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러나 안철수와 호남세력 등을 중심으로 다른 주자들이 쉽게 동의해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4.13 총선을 앞두고 야권의 일부 세력은 친노 패권주의에 반발해서 딴살림을 차렸습니다. 바로 국민의당입니다. 패배할 것이 뻔한 후보를 내세우지 말자는 게 그들의 논리입니다. 이번만큼은 다른 전략을 취해야 정권탈환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총선과 대선은 다르다’ 野분열 다자구도서 승리 어려워

어찌보면 문재인을 둘러싼 논란은 지엽말단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되든 야권의 대선후보 선출이 얼마만큼의 역동성과 공정성을 가질 것인가라는 점입니다. 역대 대선에서 가장 극적인 대선후보 선출은 3차례 정도 있습니다. DJ가 승리한 71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 노풍이 거셌던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 이명박·박근혜의 피말리는 접전이 이어졌던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입니다.

내년 대선국면에서 야권은 이러한 역동적인 경선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비관적입니다. 야권은 새누리당의 재집권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뭉쳐서 이른바 빅텐트론에 입각해 원샷 대선후보 경선을 치러내야만 대선승리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모두 각각 별도의 대선후보 경선을 치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렇다면 이변이 없는 한 더민주는 문재인, 국민의당은 안철수를 대선후보 선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2012년 대선의 판박이입니다. 서로가 양보하라고 외치는 지루한 샅바싸움이 불보듯 뻔합니다. 게다가 더민주나 국민의당 외곽에서 손학규를 중심으로 야권 성향의 제3후보가 탄생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이 경우 단일화의 과정은 더욱 지루하고 복잡해집니다.

물론 새누리당이 계파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대선국면에서 분열한다면 야권주자들은 다자구도 필승론에 기대어 완주를 고집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20대 총선에서 야권은 분열된 상황에서도 승리를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착시현상입니다. 더민주의 제1당 등극이나 국민의당의 약진은 야권이 파이나 경쟁력을 키웠다기보다는 새누리당의 자중지란에 따른 결과로 보는 게 더 타당합니다.

결과적으로 대선과 총선은 다릅니다. 야권이 분열된 상황에서 승리는 쉽지 않습니다. 거의 불가능합니다. 19년 전이지만 97년 대선 당시 ‘국가부도 위기’라는 IMF 사태 속에서 여권후보는 이회창, 이인제로 분열됐지만 당시 DJ는 약 39만표 차이의 진땀승을 거뒀습니다. 여권은 97년 대선패배에서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새누리당은 전신인 한나라당까지 포함해 20년 가까이 큰 틀의 분열없이 유지돼왔습니다. 2007년 대선 때 이회창의 출마와 박근혜에 대한 러브콜, 18대 공천 친박학살, 19대 공천 친이학살, 세종시 수정안 정국 때 이명박·박근혜 전면전 등 분열의 위기는 적지 않았지만 결국 갈등을 봉합했습니다. 비슷한 기간 현 야권의 끝도없는 분열과 이합집산은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아직 대선까지는 1년 4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정치는 생물입니다. 예측불허의 변수가 한둘이 아닙니다. 내년 봄이면 큰 틀의 정계개편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야권이 아름다운 단일화를 통해 최종후보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성사가 된다면 문재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문재인이 더민주 대선후보가 된다고 하더라도 야권이 분열돼 있다면 지난 대선에서 얻었던 1469만여표를 얻을 가능성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문재인이 지난 대선에서 얻었던 1469만여표는 차기 대선 승리를 위한 보증수표가 될까요 아니면 퇴장이 필수적인 레드카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