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發 무역전쟁…中 이어 EU·日 정조준

by방성훈 기자
2019.04.14 22:33:35

美-EU 무역전쟁 격화 조짐…“눈에는 눈, 이에는 이”
美-日, 무역협상 돌입…무역적자 해소·농수산물 개방 압박
트럼프, 수입車 관세 만지작…협상·재선 두마리 토끼 노림수
IMF "트럼프 수입車 관세…미중 무역전쟁보다 충격 클수도"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에 이어 유럽연합(EU)과도 무역전쟁을 벌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과의 무역협상에서도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어느 정도 목표한 바를 이룰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이번엔 ‘미국 최우선주의(America First)’ 칼끝을 동맹국들을 향해 돌린 것이다.

특히 EU와 일본을 동시에 압박하기 위한 수입 자동차 관세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협상력을 높이는 전략인 동시에 내년 재선을 염두에 둔 행보로 풀이된다. 이에 한국, 캐나다, 멕시코 등 미국과 이미 협상을 마친 국가들은 물론, 세계 무역흐름이 뒤바뀔 수 있다는 우려에 교역 상대국들 모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 더선 등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이날 미국이 EU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산 수입품에 보복 관세를 물리기로 했다. 위원회의 한 소식통은 블룸버그에 102억유로(약 13조1000억원) 규모의 관세 부과 목록 초안을 작성했다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품목들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도 EU가 오는 17일 200억유로(약 25조7000억원) 규모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목록을 공개하고, 공공 의견 수렴 절차에 돌입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EU 회원국들은 오는 15일 미국과의 무역전쟁 관련 회의를 진행하고 최종 입장을 정할 예정이다. 이후 미국과 협상을 개시할 전망이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는 (미국이 일으킨) 무역전쟁 때문”이라며 “정치적 실수이자 경제적 실수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EU의 보복 결정은 앞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 8일 항공기 제조업체 에어버스에 대한 EU 보조금 지급을 문제 삼아 100억달러(약 11조4200억원) 상당 EU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고 경고한데 따른 대응이다. 미국은 피해금액이 세계무역기구(WTO) 산정 연 112억달러(약 12조8000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인 9일 트위터를 통해 “EU는 수년 간 무역에서 미국을 이용했다. 그것은 곧 중단될 것이다”라며 사실상 무역전쟁을 선포했다. 10일에도 “악랄한 무역파트너”라고 비난했다.

미국은 오는 15~16일 일본과도 무역협상에 돌입한다. 일본은 지난 2년 동안 테이블에 앉는 것을 피해왔지만, 미중 무역협상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됐다.

미국은 중국과의 협상 때와 마찬가지로 무역적자를 걸고 넘어지며 일본 농수산물 시장 개방을 요구할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는 600억달러(약 68조2200억원)다.



일본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EU와의 경제동반자협정(EPA)을 체결한 뒤, 일본 식품시장에서 미국의 입지는 좁아졌다. 일본의 미국산 농수산물 수입은 TPP 체결 이후 22%가량 줄었다.

정치적·외교적으로 미국과 전략적 동맹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해야 하는 일본 입장에선 미국 측의 요구를 거부하기 힘들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에 따라 어디까지 문을 열게 될 것인지가 핵심이다. TPP 국가들과 동등한 수준이라면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그 이상을 요구한다면 오는 7월 총선을 앞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입장에서도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을 떠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일본이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미국의 TPP 복귀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앞서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에선 TPP를 사실상 주도했지만,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탈퇴를 선언했다.

아베신조(왼쪽)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미국은 특히 수입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에 최고 25% 관세 부과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며 EU와 일본을 압박하고 있다. 내년 대선에 대비해 중국, EU, 일본과의 무역협상 성과를 치적으로 내세우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수입차에 관세를 부과하면 EU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독일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다급해진 EU는 지난해 7월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을 대표로 미국에 보냈고,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관세를 유예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이후에도 미국 상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수입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이 미국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조사를 끝낸 상무부는 지난 2월17일 “자동차 수입이 미국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일본도 자동차 관세와 관련해선 EU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아베 총리는 지난 2년 동안 중국과 북한을 빌미로 미국과 전략적 동맹 관계를 유지하며 충돌을 피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도 무역협상에선 예외가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지난해 8월 일본산 철강 및 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한데 이어, 최근엔 일본산 자동차에 25% 추가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일본과의 교역 문제가 언급될 때마다 “일본은 미국에 수백만 대의 자동차를 수출하면서 미국 자동차는 수입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되풀이했다.

기타 고피나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전날 로이터통신에 “트럼프 대통령이 검토중인 자동차 관세 부과는 현재 진행 중인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보다 세계 경제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