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가고 홀로 남은 김상조…미완성 개혁 완수할까(종합)

by김상윤 기자
2018.11.11 14:39:35

장하성 자리 내려놓자 컬러링 바꿔
비지스의 <잊지 말아 주세요> 선곡
떠나버린 '소울메이트' 아쉬움 표현
공정거래법 개편안 '8부 능선' 넘어
홀로 남아 '공정경제' 개혁 성공할까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장하성(오른쪽)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해 6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현안간담회’에서 인사를 나누고고 있다.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우리의 지난 사랑을 잊으면 안 됩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당신을 기억합니다~(Don‘t forget to remember me. And the love that used to be. I still remember you)~♬’.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3개월마다 컬러링을 바꾼다. ‘올드팝’ 마니아인 그는 컬러링을 통해 본인의 심정이나 정책의지를 표현한다. 지난해 12월 기자간담회에서는 알 스튜어트의 <베르사이유 궁전(Al Stewart-The Palace of Versailles)>를 들려주면서 재벌개혁은 ‘혁명’이 아니라 ‘진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메시지를 던졌다.

지난 10일 김 위원장은 영국 3형제 락밴드인 비지스(Bee Gees)의 <잊지 말아 주세요(Don‘t forget to remember)>로 컬러링을 바꿨다. 1969년 일시 해체한 비지스는 맞형인 배리 깁(barry Gibb)이 이곡을 발표한다. 사랑하는 사랑을 잊지 못하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 곡이지만, 팀 해체 이후 쌍둥이 동생들(모리스 깁, 로빈 깁)을 위해 부른 곡이라는 평가도 있다.

김 위원장이 이 노래로 컬러링을 바꾼 것은 지난 9일 청와대 정책실장 자리에서 내려온 장하성 교수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장 교수와 김 위원장은 사석에서 ‘소울 메이트’라고 부를 만큼 참여연대 시절부터 20여년간 동지적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인연은 1999년 고(故)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의 소개로 시작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관심이 많던 김 위원장은 당시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인 장 교수를 만나 ‘재벌개혁’에 나선다. 김 위원장의 신념과 능력을 눈여겨본 장 교수는 경제민주화위원회를 경제개혁센터로 바꾼 뒤 자리를 김 위원장에 물려줬다. 이 센터가 김 위원장이 취임 전까지 주도한 경제개혁연대의 전신인 셈이다.



시민단체시절부터 이어져온 ‘든든한 후원자’ 역할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어졌다. 장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핵심인 ‘J노믹스’를 총괄했고, 김 위원장은 ‘공정경제’ 구축을 맡아왔다. ‘소득주도 성장’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 교수가 늘 갈등 관계를 유지한 것과 달리, 장 교수는 김 위원장을 아낌없이 밀어줬다. ‘재벌 개혁’을 속도내야 한다는 여당과 시민단체의 반발에도 김 위원장이 꿋꿋하게 ‘우보천리(牛步千里)’ 방식으로 재벌 개혁 속도 조절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장 교수의 든든한 후원 덕분이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김동연 경제부총리(가운데)와 장하성 정책실장(왼쪽),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현안간담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삼두마차 중 김 부총리와 장 전 정책실장이 자리를 내려놓으면서 이제 김 위원장만 홀로 남게 됐다. 김 위원장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후보자와 김수현 정책실장과도 호흡 해왔지만, 장 전 정책실장과 끈끈한 관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다. 김&장을 타깃했던 비판이 이젠 김 위원장으로 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변함없이 지지하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에서 열린 ‘공정경제 전략회의’에서 “공정경제는 상대적으로 중요성이라든지 정부가 하고 있는 노력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면서 “공정경제 남은 과제들은 대부분 입법과제들인데 정기국회에 서로 함께 처리를 하는 것으로 여야정 상설협의체에서 그렇게 협의를 했다. 입법 과제들까지도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시기 바란다”며 김 위원장의 개혁에 대해 간접적으로 지지를 보냈다.

김 위원장의 개혁은 ‘우보천리’로 진행 중이다. 38년 만에 시도하는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은 이제 ‘8부 능선’을 넘었다. 지난 9일 규제개혁위원회 심의에서 만장일치로 원안이 그래도 통과됐다. 규개위는 부기(참고) 의견으로 “정보교환행위 담합 규율과 관련해 중복 규제에 대한 염려가 있으니 입법의도가 명확히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담았을 뿐 원안에 대해서는 ‘문제없음’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제 공정거래법 개편은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이달 중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공정거래법 개편은 김 위원장의 개혁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은 보수와 진보 양측으로 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한쪽은 ‘기업을 옥죈다’는, 다른 한쪽은 ‘너무 느슨하다’는 비판이다. 이는 공정거래법 개편 자체가 보수와 진보 양측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담겼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작고 소중한 성공 경험의 축적을 통해 과거로 회귀할 수 없는 변화를 만들겠다’는 김 위원장의 평소 철학이 담긴 셈이다. 김 위원장과 오랜시간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한 인사는 “삼두마차 중 두명이 사실상 낙마했기 때문에 이젠 문재인에 대한 비판의 칼이 김상조 위원장에게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개혁을 추진하는 게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