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용두사미' 수사권조정, 檢 개혁은 사라졌다

by박기주 기자
2020.08.09 13:58:22

형사소송법·검찰청법 시행령 입법예고
검사 직접수사 범위 좁혀둔 상위 법, 시행령에선 대폭 완화
'견제와 균형'이라는 검찰개혁 취지 사라진 셈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올해 초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에 한 획을 긋는 법안이 통과됐다. 바로 검경 수사권조정 법안(형사소송법, 검찰청법 개정)이다. 그동안 검찰의 지휘를 받았던 경찰을 수사권을 갖는 조직으로 만들고, 양 기관의 관계를 지휘가 아닌 협력관계로 규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경찰 역시 100% 만족하는 수준의 법안은 아니었지만,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면서 발생했던 표적수사 논란 등을 불식할 수 있는, 견제와 균형의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뒀다. 한 기관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게 되면 불합리한 수사를 막을 수 없지만, 법 개정으로 견제의 수단이 생겼다는 것이다.

지난 7일 이런 큰 기대를 모았던 수사권조정법안의 세부 내용을 규정한 하위법령(대통령령)이 입법예고됐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검찰개혁’이라는 수사권조정의 취지를 찾기는 어려웠다. 법 개정 전 체제와 다를 것 없이 검사가 직접수사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규정이 곳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입법예고안을 본 한 일선 경찰관은 “70년 고생해서 겨우 집 한 채(수사권 확보)를 마련한 줄 알고 있었는데 아직 (검찰이 주인인) 월세 임차인인 것만 같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박지원(왼쪽부터) 국정원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을 위한 권력기관 개혁 당정청 협의에서 기념촬영을 마치고 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애초 개정법에서는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등 6개 범죄에 대해서만 검사가 직접 수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런데 시행령에서는 마약범죄가 경제범죄에, 사이버범죄가 대형참사에 포함된다고 명시했다. 단순히 생각해도 연관성이 커 보이지 않지만 이렇게 검사의 힘이 닿을 수 있는 곳은 넓어졌다.

또한 ‘압수·수색·검증 영장이 발부된 경우엔 제외’라는 예외 조항을 통해 검사가 수사를 시작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 그런데 영장은 범죄 혐의가 확실해서 발부되는 것도 있지만, 증거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의심사항 정도로도 영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즉, 검사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사안이든 수사를 시작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듯 여러 논란이 예상되는 시행령의 해석 권한을 법무부 단독주관으로 뒀다는 점이다. 기관 간 의견이 충돌할 경우 검찰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큰 셈이다. 66년 만에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검찰이라는 거대 권력기관을 견제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지만, 검사가 얼마든지 수사를 할 수 있게 된 이상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 됐다.

시행령을 만들기 위한 논의는 지난 6개월간 긴 시간 동안 진행됐다. 그런데 지금 문제가 되는 조항들은 크게 논의된 바가 없었고, 지난달 중순 이후 갑자기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은 ‘보이지 않는 손’까지 언급하며 법무부의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최근 추미애 장관이 이끌고 있는 법무부는 ‘검찰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윤석열 검찰총장과 연일 각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핵심법안인 수사권조정 시행령에서는 검찰의 힘을 빼놓기보단 그대로 유지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춘’ 무기가 사라지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검경 수사권조정은 정부를 위한 것도, 경찰을 위한 것도 아니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통해 과도한 수사로 피해를 입는 무고한 국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앞으로 법 시행까지 5개월간 공청회와 토론회 등 여러 의견이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논의과정이 권력기관 간의 힘 싸움이 되기보단 국민에게 돌아갈 편익을 고려하는 시간이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