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고소한 이야기] 식품계 반도체 '지방'의 재해석

by류성 기자
2023.10.11 09:00:54

박정용 참기름 전문가. 쿠엔즈버킷 대표
프랑스 미식에서 찾아 본 지방에 대한 두 가지 입장



[박정용 참기름 전문가. 쿠엔즈버킷 대표] 미식이라 하면 흔히 프랑스 요리를 떠올린다. 어떤 연유로 프랑스 요리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미식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오랜 역사에 걸쳐서 정복 당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요리는 만들어졌다. 강력한 중앙집권화로 구축된 귀족 문화의 허영에, 유입된 이주민들의 다양한 음식문화 토양이 더해지면서 발달하였다.

이 시대 프랑스 귀족 요리사들은 “누가 더 호화로운 요리를 만드느냐?”가 화두였다. 이 시대를 칭하는 프랑스 미식의 사조가 ‘오뜨 퀴진’이다. ‘오뜨 퀴진’은 16~17세기 각종 향료가 수입되던 프랑스 황금 시기에 발달한 음식 문화로 상류층에 어울리는 최고급 코스요리다.

동물성 지방에 향신료가 잔뜩 들어간 소스의 무거운 요리라고 표현된다. 프랑스 요리는 무겁고 화려한 요리인 ‘오뜨 퀴진’에 대한 반작용으로 ‘누벨 퀴진’의 시대로 변화를 맞게 된다. 기존의 ‘오뜨 퀴진’ 보다 소스에서 동물성 지방을 들어내고, 과다한 향료를 줄이면서 맛이 산뜻해지고 가벼워졌다. 식재료도 고기요리 중심에서 채소와 어류 사용을 늘리는 등 건강을 중시한 요리 흐름이 반영됐다.

여기에 덧붙여 이탈리아의 빠르고 간단한 음식과 일본 가이세키 요리에도 영향 받는다. 지방의 관점에서 ‘오뜨 퀴진’과 ‘누벨 퀴진’을 평가한다면, ‘오뜨 퀴진’과 ‘누벨 퀴진’은 지방의 과다한 사용과 절제된 사용의 시대로 극명하게 구분된다. 향료나 메인 재료들의 차이점이 아니라 동물성 지방의 양을 줄이고, 질이 높은 버터와 올리브유를 사용하게 된 것이 이처럼 큰 사조의 변화를 이끌었다. 그 변화의 한복판에는 지방이 있다.



흔히 지방은 음식을 만들 때 부재료로 여겨진다. 프라이팬에 고기나 생선을 튀길 때 바닥에 늘어 붙게 하지 않기 위한 용도나, 빵을 구울 때 겉에 바르는 정도로만 인식한다. 하지만 음식에서 지방은 풍미를 운반하는 중요한 전달체다.

일단 식품에서 독특한 맛을 부여하는 화학물질은 대부분 지용성이다. 또한 맛을 느끼는데 꼭 필요한 향을 오랫동안 보관하는 물질도 지방이다. 지방을 많이 쓸수록 지방에 포함된 화학물질의 맛이 풍부해지고 입에 넣고 씹을 때 풍부한 향이 입 안에 퍼지게 된다.

‘오뜨 퀴진’에서 많은 지방을 사용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지방은 또한 음식의 맛을 내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마이야르 반응’을 도와준다. 마이야르 반응은 모든 식품에 열이 가해질 때 일어나는 카라멜화 현상이다. 빵의 겉면이 열에 의해 갈색으로 익으면 구수한 맛이 강해지는 변화가 스테이크, 가재, 새우에서도 똑같이 만들어진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오뜨 퀴진’에 반작용으로 생겨난 ‘누벨 퀴진’은 왜 지방의 사용량을 줄이고 품질을 높이게 되었을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지방, 소금, 단 맛을 좋아한다. 지방은 소금, 단 맛을 잘 품어내면서도 과한 맛을 부드럽게 하고 식욕을 자극하는 풍미를 계속 입 안에서 만들어 낸다.

‘오뜨 퀴진’에서 코스요리를 통해 가미되는 지방 뿐 아니라 소금, 설탕은 건강을 해칠 정도였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소금, 설탕을 줄이는 방법으로 먼저 선택한 것이 지방의 양을 줄이는 것이었다. 여기에 소금, 설탕의 사용 대신 레몬즙, 식초가 가미된 요리가 늘어나면서 레몬즙, 식초와 잘 어울리는 식물성 오일의 사용도 늘어났다.

이 추세가 정착되면서 사람들은 천연재료의 맛과 향을 그대로 느끼게 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지방도 동물성 지방이 아니라 식물성 지방이면서 레몬즙, 식초와 잘 어울리는 친수성 높은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를 일반적으로 사용하게 됐다. 프랑스 미식의 역사에서 지방이 양에서 질로 자연스럽게 진화하는 과정이 보여지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