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①남중수 “민영화로 경쟁체제 결실…타산업과 융합, 제2도약 이뤄야"

by김현아 기자
2022.08.21 16:30:33

KT 민영화 20주년 인터뷰
남중수 전 KT 사장(전 대림대 총장)
민영화 20년됐지만, 외부환경이 우호적이진 않아
고객과 사회와 함께 성장중…주가 상승세 괄목할 성과
'이사회 중심 경영, 직언도 감내하는 리더십' 필요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남중수 전 KT 사장(전 대림대 총장·서울대공과대학 객원교수). 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김대중 정부 시절 시작된 KT 민영화. 2002년 5월 25일 정부가 가지고 있던 잔여지분 전량(28.3%)을 매각하면서 국내 최대통신업체인 KT의 민영화가 이뤄졌다. 그해 8월 20일, 이용경 민영 1기 사장이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민영화 시대가 열렸다. 그 후로 20년, 강산이 두 번 변한 현재, KT 민영화는 성공했을까.

이데일리는 당시 KT 재무실장(전무)으로서 민영화 업무를 주도했고, 이후 민영 KT의 2대·3대 대표이사(CEO) 사장을 지낸 남중수 전 KT 사장(전 대림대 총장·서울대공과대학 객원교수·경영학 박사)을 만나 KT 민영화 20주년의 의미와 미래 KT의 비전에 대해 조언을 들었다. 민영화 당시 기대했던 20년 뒤 KT의 모습과 현재 모습을 그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남 전 사장은 “민영화를 안 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경쟁력이 더 떨어진 기업이 돼 있었을 것”이라며 “아마 사라졌을 수도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급변하는 IT같은 첨단분야에서 공기업은 존속하기 어렵다. 그리고 경쟁과 민영화는 동전의 앞뒤와 같다. 경쟁을 도입하면서 공기업 상태로 있다면 재벌 기업과 경쟁하긴 불가능하지 않나. 민영화가 10년만 일찍 됐어도 KT의 글로벌 한 경쟁력은 차원이 달랐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KT민영화로 통신시장 경쟁체제 열어

당시 KT 민영화는 일대 사건이었다. 경쟁사들이나 정부 고위 관료 중에서도 필수설비(전주·관로) 독점에 따른 경쟁구도 왜곡이나 헐값 매각을 이유로 반대하는 측이 적지 않았다. SK텔레콤이 2002년 5월 18일과 20일, 21일에 걸쳐 주식 9.55%와 EB(교환사채)1.79%를 확보하면서 한때 민영 KT의 1대 주주(11.34%)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양사 지분스왑으로 KT는 특정기업의 지배 우려를 없앴고, SKT는 경영간섭에 대한 걱정을 덜었다. SK텔레콤 보유 KT 지분 9.64%(1조5172억원)와 KT보유 SK텔레콤 지분 9.27%(1조8518억원)을 스왑하는 것이었다. 한국이동통신에서 출발한 SKT 역시 KT에서 완전독립했다. KT 민영화를 계기로 통신시장 경쟁체제가 도입된 셈이다.

남 전 사장에따르면 KT는 1981년 공사 창립 직후부터 경영합리화 계획을 세워 민영화를 준비했다. 민영화 전담반을 만들어 여러 차례 요금조정, 어려운 구조조정 같은 경영혁신 작업, 신규서비스 도입, 한솔PCS 인수 등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오랜 기간 주식 매각을 진행했고 ADR(미국예탁증권) 발행을 통해 외국 주주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 SK, LG 그룹 등을 만난 것도 남 전 사장이었다. 그는 “비우호적인 국내외 환경하에서 마지막 매각 작업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도와준 정부 등 이해관계자, 협력기업, 임직원, 협력해준 노동조합 등 안보이게 많은 역할을 한 분 들에게 감사한다”고 전했다.

민영화 20년됐지만, 외부환경이 우호적이진 않아

하지만 그는 “민영화의 성과는 짧은 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문화와 제도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KT의 지배구조가 안정돼 경영 본질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기업이 되길 기대한다. 쉽진 않지만, 제 역할이 아쉽고 책임도 많이 느낀다. 구성원들도 이 부분 중요성에 대해 인식을 공감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주인이 정부에서 민간으로 바뀐 지 20년이 지났지만, 온전한 민영 기업이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무엇이 아쉬운 걸까. 남 전 사장은 “아직도 민영화된 공기업이라는 모순된 표현이 말해주듯이 흔들리지 않게 경영안정을 기할 수 있도록 외부 환경이 우호적이 아니라는 점”이라고 언급했다. “민간기업은 오너가 있는 기업만으로 인식하는데, KT와 같은 전문경영체제도 민간기업으로서 큰 역할을 한다는 의미”라고 힘줘 말했다.

한국경제를 이끄는 기업들을 보면 삼성, SK, 현대차 같은 가업을 승계하는 오너기업 체제와 네이버, 카카오 같은 스타트업(초기벤처)창업에서 출발한 전문경영체제와 함께 KT와 포스코처럼 정부 지분을 팔아 이후 전문경영체제를 꾸린 기업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공기업이 민영화되면서 민간기업들과 경쟁하는 기업들에 대해선 사회적인 인식이 떨어지고 정부가 바뀔 때마다 지배구조가 흔들려왔다.

고객과 사회와 함께 성장…주가 상승세 괄목할 성과

민영화 이후 KT가 잘하고 있는 점으로는 ‘좀 더디긴 하지만 고객과 사회에 역할을 하면서 발전하고 있는 점’을 꼽았다. 얼마 전 KT의 시가총액은 9년여 만에 10조원을 회복했는데, 이는 2020년 3월 1만7250원(시가총액 4조5042억원)과 비교하면 급격한 상승이다. 다만, 2002년 8월 이용경 사장 취임 당시 주가 4만881원(당시 기업가치 11조원 이상)와 비교하면 현재 주가 (3만8000원 내외)는 하락한 셈이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든다.

이에 대해 남 전 사장은 “전 세계적으로 통신사업자 주가가 어려운 상황에서 선방했다”면서 “특히 최근 상승세는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일반적으로 주가는 ‘성장지표’가 중요한데, 통신산업은 전통적인 규제산업이라 어려움이 있다. 현 구현모 CEO 체제하에서 비규제산업(AI, DX, 미디어 등)으로 넓혀가면서 성장 모멘텀을 확보해 현재의 주가 상승을 이끌어 낸 것 같다”고 부연했다.

남중수 사장 시절 ‘원더경영’ 메시지. 사진=이데일리 DB




남 전 사장은 2005년 ‘원더(wonder)경영’을 언급하며 ‘고객에게 감동을 넘어 놀라운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경영 방침을 선포한 바 있다. 2008년에는 IPTV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직접 맡아 유선 매출의 하락 속에서 현재 KT의 먹을거리가 된 미디어·콘텐츠 사업의 기반을 닦았다. 그런데 구현모 현 대표이사는 금융사업(BC카드, 케이뱅크), AI사업, 클라우드 사업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디지털플랫폼기업(디지코)’ KT를 외치고 있다.

그는 “기존에 KT가 투자해 놓은 자산(IPTV/미디어, 5G, AI 등)을 십분 활용하고 비규제산업으로 다각화를 잘 전개하고 있다. 미래의 성장성에 대해 현재의 주가 상승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비슷한 성격의 기업인 포스코가 철강 외에 건설, 정보통신, 자원개발(포스코인터내셔날) 등 타 산업 분야도 진출하는 등 사업다각화에 성공한 반면, KT의 타 산업 진출은 아직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이후 어떤 점을 보완하면 좋을까.

남 전 사장은 “포스코는 제조업, KT는 통신서비스업이라서 KT는 국가 경제적으로 제조업 글로벌화 추세를 타지 못했다. 향후 비통신 사업을 적극 키우고, 글로벌화를 강화한다면 강한 성장 모멘텀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구현모 대표가 연초 주주총회에서 언급한 사업형 지주회사로의 전환에 대해서는 “엄밀히 보면 현재도 사업형 지주회사 체제”라면서 “순수 지주회사화는 여러 가지 형식과 법률적인 문제를 따져 봐야 한다. 단, 지주회사화의 목적이 각 사업부문별로 독립경영을 통해 성과를 높이는 것인 만큼 이를 달성하도록 형태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남 전 사장은 그러면서 “글로벌 진출과 함께, 융합시대에 다른 기업이나 산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상호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남중수 전 KT 사장


‘이사회 중심 경영, 직언 감내하는 리더십’ 필요


민영화 이후 KT의 역대 CEO로는 이용경, 남중수 전 사장처럼 KT 출신들도 있지만, 정보통신부 장관 출신인 이석채,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 출신의 황창규 전 회장들처럼 외부에서 온 분들도 있다. 그리고 이상철 전 KTF·KT CEO는 LG그룹이 통신3사(LG텔레콤·LG파워콤·데이콤)을 통합했을 때 통합법인(LG유플러스)초대 CEO였고, 이계철 전 한국전기통신공사 사장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윤종록 전 KT 부사장은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으로 활동했다. KT는 국내 정보통신기술(ICT)계의 전문가 양성소이자 집합소였다.

남 전 사장 역시 민영 KT의 대표이사를 지낼 때, 사무실 안 금고 속에 봉투 하나를 넣어 두었다. 그 안에는 CEO가 될 만한 내부 임원들, 될 덕목이 부족한 내부 임원들, 외부에서 CEO가 될 만한 분들, 아닌 분들에 대한 20명 여의 명단을 적어 놓았다. KT 민영화의 취지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전문경영체제를 안정시키는 것이었던 만큼, CEO 유고시 이사회가 후임 CEO를 선임시 참고할 수 있도록 CEO successin program, 즉 차기 CEO를 잘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KT의 지배구조는 CEO 임기가 한차례 끝나는 3년마다 흔들린다. 직원들은 민영화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심지어 KT에서는 상무급 이상 임원이 되려면 정치권에 한, 두 명쯤 인연을 맺어야 한다는 말까지 있다. KT의 지배구조 안정화와 우수한 전문경영체제 수립을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그는 이사회 중심 경영과 임직원들의 직언(直言·옳고 그른 것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기탄없이 말하는 것)에 귀 기울이는 적극적인 소통을 언급했다. 남 전 사장은 “외국 유명 글로벌 업체의 경우 전적으로 이사회 중심으로 회사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적임자를 선임해 본질 경영에 전념해서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으로 임기를 보장한다”면서 “정치권을 포함해 외부에선 흔들지 말고 회사 발전을 위해 경영에 집중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했다.

또 “포스코는 오랫동안 정부의 일관적인 후원을 바탕으로 박태준 회장의 리더십 아래 민간 재벌회사 못지않게 외풍에 덜 흔들리고 지속 가능한 경영체제를 유지해 왔다”면서 “KT는 민영화된 지 20년으로 짧아서 안정화가 덜 돼 있다. 아쉬움과 책임감을 느낀다. 정치권 개입 없이 이사회 중심으로 적임자를 CEO로 선정해 노력하면 당연히 경쟁력 더 뛰어난 회사로 발전한다고 확신한다”고 힘줘 말했다.

무엇보다 직원들과 소통하는 리더십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그는 CEO 시절, CEO가 잘못하는 줄 알고도 직언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직무유기로 징계한다고 직원들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는 “전문 경영체제인 KT CEO에게 직언을 감내하는 리더십이 더 중요한 이유는 CEO가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조직내에서 진정한 소통을 만들어 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 전 사장은 “요즘 MZ세대와 소통은 제가 CEO 역할을 하던 15년~20년 전과 많이 다르다. 정보격차가 없으며 오히려 역전됐다. ‘철인의 시대는 사라졌다’는 말처럼 혼자서 의사 결정하는 시대는 지났다. 함께 소통하는 리더십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직언을 했는데 CEO가 수용 못 한다면 이는 CEO 책임”이라면서 “시대가 달라져도 필요한 리더십은 경청이고, 젊은이들과 호흡하는 공감 능력, 미래를 보는 비전과 비판을 수용하는 자세다. 당장 듣기 싫은 얘기라도, 애정이 없으면 직언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어렵지만 그런 자세로 하면 소통은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남중수 전 KT 사장은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 학사, 듀크대 경영학 석사, 매사추세츠대 경영학 박사 △체신부 장관 비서관(1981)△한국통신 경영계획과장(1982) 한국통신 사업협력실장겸 SK텔레콤 비상임이사(1998)△한국통신 IMT사업추진본부장(2000)△KT 재무실장(2001)△KTF 대표이사(2003)△KT대표이사(2005, 2008)△대림대총장(2013)△현 서울대공과대학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