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기자의 괴식기]오뚜기가 엄마의 손맛을 훔쳤다

by이성웅 기자
2018.11.10 09:30:00

미역국과 라면의 만남, 오뚜기 '쇠고기 미역국 라면'
어마어마한 미역 양으로 미역국 느낌 고스란히
참기름 두방울 넣고 밥 말아 먹으면 집밥 느낌

발음에 주의하지 않으면 자칫 욕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괴식기(怪食記·괴상한 음식을 먹어본 기록)’입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또 새로운 먹을거리가 나오죠. 배달음식부터 가정간편식(HMR)까지 새로운 맛은 넘쳐나는데 시간과 돈은 한정돼 있습니다. 대한민국 평균에 조금 못 미치는 입맛을 지닌 기자가 맛은 궁금한데, 직접 시도하기엔 꺼려지는 ‘괴랄(怪辣·괴이하고 악랄)한’ 음식 맛보기에 도전합니다.

두 번째 괴식기의 주인공 ‘오뚜기 쇠고기 미역국 라면’.(사진=이성웅 기자)
[이데일리 이성웅 기자] 자취를 하다보면 집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 아플 때와 숙취에 시달릴 때가 그렇다.

숙취 역시 일종의 고통이니 일맥상통한다. 전날 치열한 ‘멸망전’을 치루면 아침에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서 눈을 뜬다. 주방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가 물을 마시고 있노라면, 뒤통수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어머니의 격한 ‘등짝 스매싱’을 체험하면 그제야 아직 살아있음을 깨닫는다.

두통과 속 쓰림을 간신히 누르고 다시 잠을 청할라치면, “밥 먹어!”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죄인은 군말 없이 식탁에 앉는다.

식탁엔 갓 끓인 북엇국이나 콩나물 등을 넣고 심심하게 끓인 라면이 올려져있다. 선호하는 해장음식은 꾸덕한 카르보나라 파스타인데….

흡사 술 마신 다음날 필자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사진은 ‘거지짤’로 유명한 배우 손현주.(자료=MBC 베스트극장 캡처)
그래도 한술 두술 뜨다보면 어느새 국물까지 ‘원 샷’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다 먹고 냉수 한잔 마시면 자신도 모르게 ‘어휴, 살겠다’라는 말이 나온다.

바로 그런 어머니의 해장국이 그리워지는 어느 아침이었다. 자취방에 뭔가 해장국을 끓일 재료는 없고, 기운도 없다.

주방 대신 집에서 30초 거리 편의점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간다. 라면이나 끓여 먹을 요량으로 라면 코너를 살피다 모 제품에 눈길이 갔다. 오늘의 주인공 ‘오뚜기 쇠고기 미역국 라면’ 되시겠다.

출시는 지난 9월이었지만, 그동안은 눈에 잘 안 들어오던 제품이었다. 간혹 가다 인터넷에서 맛있다는 후기를 접하기도 했고, 해장도 할 겸 도전해보기로 했다.

숙취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이 맛을 전해야겠다는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포장을 뜯으니 구성품은 단출하다. 면과 건더기 수프, 액상 수프다. 면은 일반적인 봉지라면의 그것보다 절반 수준 굵기다. 쌀가루가 10% 첨가된 면이라는데, 얇아서 그런지 물이 끓으면 면을 넣고 2분만 더 끓이면 된다고 적혀있다.

면이 가늘다. 경쟁사 농심의 ‘사리곰탕’ 수준. (사진=이성웅 기자)
건더기 수프는 정말 제품명에 충실하게 ‘건쇠고기’와 ‘건미역’이 들어있다. 총 중량 115g 중에 건미역이 11.2%이니 13g 정도가 미역인 셈이다. 통상 미역국 1인분에 건미역 5~10g 정도를 불려 사용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최고의 식재료답다.



건더기 스프를 열자 나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건미역. (사진=이성웅 기자)
참고로 자취하는 사람들 멋모르고 미역국 끓여보겠다고, 건미역 사서 대충 뜯어 불렸다간 집이 미역 양식장으로 변하는 놀라운 체험을 할 수 있다.

액상수프는 아주 짙은 암녹색이다. 향을 맡자마자 라면의 맛이 연상되면서 실망감이 들었다. 횟집에서 나오는 미역국의 맛이 떠올랐다. ‘고향의 맛’이라고 쓰고 ‘글루탐산모노나트륨’이라고 읽는 물질을 듬뿍 집어넣은 그 맛이다. 글루탐산모노나트륨=MSG. 물론 MSG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김이 샜을 뿐.

암녹색 액상 수프의 향에서 ‘고향의 맛’이 연상된다.(사진=이성웅 기자)
이 라면은 다른 라면들과 조리법이 조금 다르다. 물에 건더기 수프를 바로 넣고 끓인다. 미역이 빠른 시간 안에 불게 하기 위해서다. 건더기 수프를 넣은 물을 끓이기 시작한 후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미역의 ‘번식력(?)’에 놀랐다. 불과 30초도 안 지났는데, 양이 어마어마하게 불어났다.

물에 건더기 수프를 넣고 끓이기 시작한 지 불과 30초 만에 미역이 냄비를 뒤덮는다.(사진=이성웅 기자)
물이 끓고 면을 집어넣은 뒤 액상수프를 넣자, 암녹색은 온데간데없고 국물이 뽀얗게 변한다. 정확히 2분을 기다리고 그릇에 라면을 담았다.

맛을 보기 전 향을 맡았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고향의 향’이 전혀 안 난다. 거의 집에서 끓인 미역국과 흡사하다.

완성된 라면은 얼핏 그냥 집에서 끓인 미역국에 밥을 말아놓은 형상이다. 김치는 필수.(사진=이성웅 기자)
미역과 면을 한 번에 집고 후후 불어 한입 맛을 본다. 짠 음식을 싫어하는 입맛에 딱 적당한 정도의 간, 바다 내음 물씬 풍기는 미역, 적당한 굵기의 면발까지 취향저격이다.

그런데 잠시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답이 나왔다. 바로 참기름을 꺼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두 방울만 넣는다. 맛의 퍼즐이 이제야 완성됐다.

참기름 두 방울을 넣자, 풍미가 살아나며 맛의 퍼즐이 맞춰진다.(사진=이성웅 기자)
포장지에 적힌 ‘밥을 말아먹으면 맛있다’는 설명에 면을 어느 정도 먹다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넣어 돌렸다. 오뚜기와 CJ의 콜래보레이션이다.

밥을 말아 김치 한 점을 척 걸친 뒤 다시 한술 떴다. 이렇게 완벽한 조합의 해장음식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오뚜기 라면에 ‘오뚜기밥’ 대신 CJ ‘햇반’.(사진=이성웅 기자)
그런데, 먹다보니 분명 ‘쇠고기’ 미역국인데, 쇠고기 찾기가 힘들다. 간신히 한 조각 찾아 따로 맛을 보았는데, 미미한 수준이다. 그렇지만 전혀 문제될 것은 없다. 진짜 씹히는 쇠고기를 원한다면 라면을 먹어선 안 된다.

어머니의 해장국을 먹을 때처럼 국물까지 모두 없애자 ‘해장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말아 김치와 한입 먹으니 일주일 전 먹은 술까지 내려가는 듯하다.(사진=이성웅 기자)
한 가지 아쉬운 점. 실제 미역국엔 미역의 줄기 부분도 있고, 잎 부분도 있어 다채로운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만약 이 라면을 먹으면서 그러한 풍부한 식감을 느끼고 싶다면, 별도로 구입한 건미역을 추가로 넣을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