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노인은 야간·고속도로 운전 못한다"…'조건부 면허' 도입 시동

by박기주 기자
2021.06.06 15:39:37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4년 간 44% 급증
경찰청,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 세부 도입방안' 연구용역
특정 연령·질환자, 운전에 제한두는 제도
美·獨 등서도 도입…시간·공간 제한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앞으로 고령 운전자들은 야간이나 고속도로 등 특정 조건에선 운전을 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경찰이 매년 증가하는 고령 운전자의 사고를 막기 위해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급증세…경찰, ‘조건부 운전면허’ 연구용역 공고

6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은 최근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 세부 도입방안 연구’를 위한 연구용역 공고를 내고 해당 연구를 진행할 연구진 모집에 나섰다.

경찰청 관계자는 “최근 고령 운전자 사고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특정 연령 이상에 대해 조건부 운전면허를 발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재 진행하는 연구용역은 조건부 면허 도입을 위한 기초공사가 될 것”이라며 “연구 결과를 토대로 시스템 마련에 나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연내 연구용역을 마친 후 연령, 질환 등 조건부 운전면허 발급 대상을 구체적으로 정해 2024년부터 제도 도입에 나서기로 했다.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는 고연령, 특정 질환 등에 의해 안전운전 능력이 떨어진 운전자에게 특정 조건에서만 운전을 허용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이에 해당하는 운전자는 야간운전이나, 고속도로 운전, 일정 속도 이상 운전 등이 금지될 수 있다. 또한 긴급제동장치나 차로이탈방지장치 등 운전보조장치(ADAS)를 장착한 차량만 운전하게 될 수도 있다. 매년 증가하는 고령 운전자의 사고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른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 도입에 경찰이 시동을 걸었다. 해당 제도가 도입되면 고령 운전자들은 야간 혹은 고속도로 등 특정 조건에서는 운전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삼성화재 부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경찰청 교통사고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19년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는 3만3239건으로 2015년보다 44%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치사율)는 2.9명으로, 비고령 운전자(1.7명)에 비해 약 8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한국 사회의 고령화가 빨라지면서 고령운전자 숫자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만큼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다만 전면적인 면허 취소는 고령자 등의 이동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만큼 조건부 면허를 통해 사고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조준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신체적·인지적 노화와 운전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 등으로 교통상황에 대한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운전자는 운전면허를 취소하기 보다 교통안전을 담보하는 범위 내에서 운전자 이동권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며 “발급 기준은 경찰과 의료계 등 의견을 수렴해 개인별 맞춤형 운전조건을 부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청 전경(사진=이데일리DB)
◇야간, 고속도로 운전 등 조건 수립에 초점…선진국은 이미 시행


조건부 운전면허 도입을 위해 진행되는 이번 연구용역에서는 이를 적용할 대상을 정할 기준과 어떤 조건에서 운전을 제한할 지 등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연령 뿐만 아니라 교통사고에 취약한 질환 등을 분석하고, 운전가능한 시간과 공간(고속도로 등), 첨단안전장치 부착 등 다양한 조건을 검토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조건부 운전면허 부과대상자 선정을 위한 실효성 있는 평가방법까지 연구를 통해 확인할 방침이다.

이 제도는 이미 선진국에서는 실질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과 독일, 네덜란드, 호주, 뉴질랜드 등에선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만 운전을 할 수 있는 면허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고, 이중 일부에서는 속도와 차량의 조건까지 제한하고 있다.

여론도 우호적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2184명 중 1635명(74.9%)이 ‘조전부 운전면허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 10월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고 2023년까지 고령자 교통사고 피해자를 절반으로 감축하는 내용을 담은 ‘고령자 교통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후 정부는 고령 운전자 면허 자진반납에 관한 인센티브 제도 등을 강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