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용의 軍界一學]'새 수장 맞이' 방위사업청과 국방과학연구소

by김관용 기자
2020.12.27 14:05:33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방위사업청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방위사업의 투명화·효율화·전문화를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기관입니다. 기존 국방부 조달본부와 합동참모본부, 국방과학연구소(ADD) 등에 산재해 있던 국방 조달 관련 조직을 통합해 설립됐습니다.

설립 초기에는 주로 군 장성들이 청장이 됐습니다. 김정일 초대 청장은 육군 소장 출신으로 국방부 조달본부장과 방위사업청 개청 준비단장을 거쳐 청 개청과 함께 1대 청장에 취임했습니다.

2대 이선희 전 청장은 공군 준장 출신으로 국방부 고등훈련기사업단장을 거쳐 방위사업청장에 임명됐습니다. 양치규 3대 청장 역시 군 출신으로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 이후 방위사업청장이 됐습니다.

변무근 4대 청장은 해군교육사령관까지 지낸 3성 장군 출신입니다. 변 전 청장을 끝으로 군 장성 출신들의 방위사업청장 행(行)은 막을 내렸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문민통제를 위해 정통 관료 출신들을 청 수장으로 임명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조달청장을 역임한 장수만 청장과 노대래 청장이 잇달아 청장에 임명됐습니다. 7대 청장 역시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의 이용걸 청장이 발탁됐습니다.

8대 청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 동기동창으로 알려진 장명진 청장이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했던 그는 정년 퇴임 이후 방위사업청장에 발탁됐습니다. 9대 청장이었던 전제국 청장은 첫 민간 국방 공무원 출신 인사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후 왕정홍 10대 청장은 감사원에서 평생 공직 생활을 한 인물입니다.

방위사업청 청사 [사진=방위사업청]
첫 내부 승진 방위사업청장

지난 23일 11대 청장에 발탁된 강은호 청장은 행정고시 33회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2006년 방위사업청 개청 때부터 방위사업청 공무원으로 일했습니다. 이후 유도무기사업부장, 방산기술통제관, 기획조정관, 지휘정찰사업부장, 사업관리본부장, 기반전력사업본부장을 역임했습니다.

특히 그는 2019년 12월 방위사업청의 2인자인 차장 자리에 까지 올랐습니다. 일반직고위공무원 가급으로 정부부처 실장급 자리인 방위사업청 차장은 주로 산업통상자원부나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오는 자리였습니다. 이들 파견 공무원들은 방위사업청 차장으로 있다가 공직을 마무리하거나 운좋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중책을 맡기도 합니다.

강 청장은 이들을 제치고 차장이 됐습니다. 관료 출신으로 방위사업청 개청 이후 내부 승진한 정순목, 김철수 차장 이후 세 번째 입니다. 그런데 강 차장은 지난 10월 돌연 사표를 제출합니다. 국방과학연구소 소장직에 지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강 청장이 국방과학연구소 소장직에 응모하기 전부터 퇴직 공직자 취업 심사를 받기까지 이런저런 말들이 나왔습니다. 특히 연구소 내부 반발은 극에 달했습니다.

정식 승인 노조도 아닌 연구원들은 성명을 통해 “연구개발 영역과 다른 제한된 경험을 갖고 있는 인사를 국방과학연구소장으로 선임한다면 이 피해는 막대하다”면서 “비전문가인 낙하산 인사가 기관장이 된다면 전문가 집단인 종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선임해준 권력에만 충성할 것이 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강 청장은 국방과학연구소 소장 취업을 위해 인사혁신처의 심사까지 받았지만 돌연 방위사업청장에 낙점됐습니다. 내부 반발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강태원 부소장, 소장 승진 유력시



이에 따라 그와 경쟁했던 강태원 현 국방과학연구소 부소장의 소장 승진이 유력시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차기 소장 후보로 압축됐기 때문입니다.

사실 강 부소장이 ‘코드 인사’나 ‘보은 인사’에 더 가까운 인물입니다. 공군 예비역 대령 출신인 강 부소장은 국방과학 전공이 아닌 정보통신(IT) 관련 박사 학위 소지자로, 10여년 가까이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근무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강금원 회장의 인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강 부소장은 지난 2017년에도 소장직에 응모했는데, 그 때도 낙하산 논란이 있었습니다. 당시 신임 소장 공모를 진행하면서 별 이유도 없이 응시원서 접수 기간을 두 번이나 연장하는가 하면, 모집 요강도 군 출신 자격 기준을 예비역 장성급에서 영관급으로 낮췄습니다.

이 때문에 현 정부에 포진한 참여정부 인맥이 강 부소장을 적극 밀고 있다는 얘기들이 나돌았습니다. 결국 남세규 부소장이 소장으로 승진하긴 했지만, 대외 활동은 강 부소장이 전담하다시피 했습니다. 역할이 뒤바뀌었다는 지적이 제기된 이유입니다.

국방과학연구소 [출처=연합뉴스]
여전한 정부 주도 무기체계 연구개발

국방과학연구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1970년 8월 국립연구소로 설립됐습니다. 연구개발 인력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같은 해 12월 법률에 따라 법인체로 변경됐습니다. 연구소는 중요사항을 심의·결정하기 위해 이사회를 두고 있는데, 이사회 이사장은 국방부 장관, 부이사장은 방위사업청장입니다.

당초 국방과학연구소는 국방부 장관의 감독을 받다가, 2006년 방위사업을 전담하는 방위사업청이 신설됨에 따라 연구소 업무에 관한 국방부 장관의 감독 권한이 방위사업청장에게 위임됐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에 대한 관리·감독 업무가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으로 이원화 된 것입니다.

하지만 방위사업청이 국방과학연구소에 대한 관리·감독을 위해 2009년 ‘방위사업청 산하 출연기관 업무감독 규정’을 신설하면서 사실상 방위사업청이 국방과학연구소에 대한 관리·감독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의 인사, 조직, 예산 등 주요 업무에 대한 감사도 방위사업청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방과학연구소는 4000여명에 가까운 거대 조직과 무기체계 연구 개발 전문성을 앞세워 방위사업청과 대립했습니다. 방위사업청은 개청 당시 ‘국방과학연구소 개발-방산업체 생산’이라는 낡은 방위산업 구조를 개편하겠다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똑같은 보고를 했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지금과 같은 정부 주도와 업체 주도가 혼합된 방위 사업구조의 문제점은 무기개발의 권한과 책임이 분산돼 복합 무기 체계가 주류를 이루는 최근의 개발 동향과 유리돼 있으며 실패해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합니다. 게다가 이같은 구조는 가격상승으로 이어져 수출 역시 어려워집니다.

ADD 재구조화 지지부진

하지만 방위사업청은 전문성이 결여돼 있어 사업 관리를 국방과학연구소에 위임해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방과학연구소 역시 실패 확률이 낮은 일반무기체계 사업관리를 통해 국방 연구개발(R&D)의 성공률을 높이고 개발 과정의 실패와 비용 초과를 업체에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은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해 “실패가 용인되지 않으면 쉽게 성공할 수 있는 단기 실적 과제에 매달리고 성공률이 90%가 넘는다고 자랑하게 되는데, 그것은 원천기술을 고도화해 나가는 연구와는 맞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일반무기체계 연구개발을 민간업체에 이양하고 국방과학연구소는 핵심기술이나 신기술, 비닉·비익 무기체계 연구개발을 전담하도록 하는 재구조화 작업은 지지부진한 모양새입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핵심·전용(비닉무기)기술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연구원 비율은 전체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나머지 인력은 여전히 일반무기체계 연구개발 등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군 밀착형 연구개발 등을 수행할 지상·해양·항공무기 조직 역시 직제상으로만 부설기관화하고 실질적인 변화가 없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업체가 소유한 핵심기술의 기술성숙도(TRL)가 낮거나 업체주관의 경우 체계통합 경험이 미비해 국방과학연구소 주관에 비해 전력화 시기 충족가능성이 낮다는 등의 이유를 댑니다. 그러면서도 연구인력이 부족하다며 기본설계와 상세설계, 성능입증 등 기본업무를 민간업체에 떠넘기고 계약·일정·비용관리 등 사업관리 업무에 치중하고 있다는게 감사원 판단입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지난 2018년 1월 테스크포스(TF)를 꾸려 국방과학연구소 재구조화 방안을 마련한 후 현재 시범운영 중입니다. 방위사업청 뿐만 아니라 국방과학연구소 모두 수장이 바뀝니다. 새로운 리더십 아래 이제는 실질적인 개혁이 이뤄지길 기대합니다.